재작년 5월에 모스크바 통신문에 올렸던 걸 옮겨놓는다. 원래 제목은 '키노와 류베와 오쿠자바'이지만, 잡다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그냥 '모스크바의 5월'이라고 해둔다. 원래는 지난달에 정리를 해두었어야 마땅했지만,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비가 오는 날씨가 문득 비가 자주 오던 그해 모스크바의 5월을 떠올리게 했다.

5월 9일은 (분위기로 보아) 러시아 최대의 국경일이다. 다름아닌 승전기념일인데, 1945년 5월 9일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공식적으로 항복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작년 2005년에 승전 6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된 바 있다. 사진은 1945년의 베를린). 당시 소련은 미국, 영국 등과 함께 연합군에 속해 있었다. 2차 대전을 다룬 대부분의 전쟁영화들은 주로 미-영연합군과 독일이 대치했던 서부전선에서의 참상과 전쟁영웅들을 주로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낳은 것은 독일과 소련이 격전을 벌인 동부전선이었다(최대 격전지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묘사한 영화와 책들이 국내에도 소개돼 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2천만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희생됐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생중계된) 공식 행사는 우리의 국군의 날 행사와 비슷하게 진행됐는데, 크레믈린 광장에 도열한 각 부대 장병들에게 국방장관이 “59주년 전승기념일을 축하한다”고 하면, 매번 장병들이 “우라, 우라, 우라”(만세삼창)으로 화답하는 식이었다. 장관의 축하가 끝나고 푸틴 대통령에게 경과를 보고하자, 이어서 푸틴의 치사가 이어졌고, 그 이후엔 열병과 행진이 시작됐다.

바로 그제(7일) 푸틴의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기 때문에, 크렘믈린 광장에서의 사열과 열병이 이틀만에 또 진행된 셈. 크렘믈린의 대통령궁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취임식은 황제의 대관식을 방불케 했는데(사실, 러시아 대통령은 임기제 ‘황제’이다), 열병식이 벌어진 장소는 영화 <시베리아의 이발사>(<러브 오브 시베리아>로 개봉)에서 황제 알렉산드르 3세로 분한 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사관학교 졸업생들의 열병을 받던 그 장소였다.

공휴일이 휴일인 토요일이나 일요일과 겹치는 경우 러시아에서는 다음 월요일도 자동적으로 휴일이 된다. 그래서 내일(10일)까지가 휴일인 셈인데, 지난 메이 데이 이후 승전기념일을 전후한 대략 10일간이 러시아에서는 거의 연휴인 듯싶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 기간 동안에 여행일정을 많이 잡기도 하며, 학교 부근은 정말 조용하고 한산하다. 물론 지난 목요일에 내가 다니는 필팍(인문대학) 건물 앞에 있는 승전기념탑(혹은 전몰용사 추모탑) 앞에서는 참전용사들도 참여한 기념식과 헌화식이 치러졌다. 망치와 낫이 그려진 구소련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군복과 정장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앞장을 서고, 젊은 학생들이 뒤를 따랐으며, 장엄한 군가들이 울려퍼졌다.

 

 



내가 처음 들은 노래는 <모래시계> 주제가로 잘 알려진, 유리 감자토프의 시에 곡을 붙여서 이오시프 코브존이 부른 '백학'이었다(이 이름을 딴 한국식당도 모스크바 강변에 있다). 알다시피, 이 노래는 2차 대전시 전사한 전우들이 백학이 되어 하늘을 날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오늘 낮에 나에게도 얼굴이 낯익은 (아마 국내에도 다녀간 듯) 러시아의 젊고 유명한 테너 가수가 전쟁가요/가곡만을 부르는 콘서트가 국영 '러시아'방송을 통해 방영됐는데, 이 노래를 들으며 눈시울을 적시는 청중들도 여럿 있었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용사들이,
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 버린 듯하여

그들은 그 옛적부터 지금까지
날아만 갔어, 그리고 우리를 불렀어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슬픔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잊은 건 아닐까.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에 지친 학의 무리
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무리 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새,
그 자리가 혹 내 자리는 아닐는지.

그날이 오면 학들과 더불어
나는 회청색의 그 어스름 속을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 둔 그대들 모두를 
천상 아래 새처럼 목놓아 부르면서.

노래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면, 지난주 발음교정 수업시간에 유명한 그룹 <류베(Lyube)>의 노래를 들은 것이 계기가 돼(나는 이름만 듣고 있었는데), 문구점에서 그들의 MP3음반을 샀다. 내가 산 1집에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발표한 6개의 앨범이 들어가 있었는데(총 6시간 42분 분량), 이 선집 시리즈는 올해 새로 나온 것이다(값을 120루블=6천원). 그리고 마침 지금 <제1방송>에서는 류베의 콘서트를 방영하고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5xSOK7ODLSM).

활동 경력이 15년쯤 된 듯한 중견밴드인데, 악기를 연주하는 멤버들은 6명이고, 솔리스트로 보컬을 맡고 있는 니콜라이 라스토르구예프는 공식적으로 ‘러시아 인민 예술가’로 돼 있다(그들의 명성을 알게 한다). 그는 짧게 친 머리에(소위 ‘깍두기 머리’) 큰 키는 아니고 덩치가 좋은, 그러면서 단단해 보이는 체구의 아저씨이다(룸메이트는 버스기사처럼 생겼다고 했다). 나는 이런 밴드가 맘에 든다.

 

 



류베의 앨범과 같이 산 건, 나온 지 몇 년 된 듯한 <키노(Kino)>의 선집 디스크 중 제3집이다(한국에서 많이 듣던 노래들도 다 들어가 있다). 역시 MP3이고, 87년부터 90년까지의 공연실황들을 주로 담고 있으며, 영화에 출연해서 부른 노래들도 들어가 있다. 영화세미나 시간에 빅토르 최가 반항적인 대학생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잠깐 보기도 했다. 지금은 요절했지만, 그는 그룹 키노를 이끌던 리더로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교포 3세쯤 될까? 키노의 노래 대부분은 그가 작사/작곡한 것이다). 빅토르 최의 키노는 내가 학부에 다닐 때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였다(http://www.youtube.com/watch?v=PNZYPqdtNnU).

70년대를 대표하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은 비소츠키나 오쿠자바(발음은 ‘아꾸자바’) 같은 ‘음유시인’들이었는데(이들은 현재 공식적으로 20세기 문학사에 편입돼 있다. 어제의 전야제에 이어서 오늘부터 ‘오쿠자바 탄생 80주년 기념 페스티발’이 한 보름간 열린다), 사정을 잘은 모르지만, 이런 러시아식 록밴드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건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인 80년대 중반부터이지 않을까 싶고, 키노는 당대 최고의 밴드였다(물론 국내에도 소개된 지는 오래됐다). 이제는 ‘전설’만이 남았을 뿐인데, 그들의 노래가 사랑 받는 한 그 전설은 그래도 영원히 ‘현재적’일 것이다. 아르바트거리에 남아있는 추모의 벽처럼(온갖 페인트의 헌사가 바쳐진 이 낡은 벽만은 재건축 불허라고 한다).

요즘은 이들의 노래를 하루에 몇 시간씩 틀어놓는다. 고급스런 러시아 발레나 오페라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이런 대중음악이다. 물론 요즘 미국식으로 ‘팝’화된 러시아 미소년/미소녀들의 노래까지 좋아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난 좀 구닥다리가 좋다(아코디언이 들어간 밴드를 좋아한다). 해서, 노래가 맘에 들면, 가사를 프린트하기도 하고. 또 맘에 드는 가수들을 ‘발견’할 때까지는 아마도 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 ‘러시아식’이라고 했는데, 나는 하드록과 현란한 기계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대신에 노래에 서정과 절규가 적절히 배합돼 있는 걸 좋아한다(클래식보다는 뱃노래를 좋아한다). 대중음악의 경우에도 언제나 더 오래 남는 건 기교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거기에 잘 맞는 건 러시아나 북유럽의 밴드들 같다(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에 나오는 핀란드 밴드들!). 아, 수업시간에 들었던 류베의 노래가 지금 나오고 있다. “내 이름을 조용히 불러줘.”(빠자비 미냐 찌하 빠 이미니 “Pozovi menja tikho po imeni” http://www.youtube.com/watch?v=LTlmDzyQpJU) 같이 듣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여기까지 쓰고서는 1호선 취스뜨이 쁘루드이역에 있는 '소브레멘닉'(‘동시대인’이란 뜻) 극장에 가서 연극 <뇌우>를 보고 왔다. ‘취스뜨이 쁘루드이’는 ‘깨끗한 연못’이란 뜻인데, 전철역에서 극장으로 10분쯤 걸어가야 하는 길 오른편에는 공원과 함께 (연못이라고 하기엔) 좀 큰 연못이 있고, 수상 공연장 같은 것도 있다. 소브레멘닉에서는 지난 4월 중순에도 러시아에 온 이후 최초로 연극관람을 했었는데, 그때 본 프로그램은 폴란드의 영화감독 안제이 바이다가 연출한 <악령>이었다(객석이 꽉 찼었다).

물론 카뮈가 각색한 대본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는데, 사실 기대를 갖고 본 이 연극이 기대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줄거리 따라가기 바쁜 연극이었다. 배역들도 내가 읽은 원작과는 너무 다르고), 그동안 연극 관람에 큰 흥미를 갖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스트롭스키 원작의 <뇌우>는 TV에서도 한번 소개가 됐고, 러시아 선생님의 권유도 있어서 관람하게 된 것.

제목은 <뇌우>이지만 주제와 인물들만 원작에서 따온 2막의 ‘판타지’극이었는데, 여성 연출가가 여러 장면에서 안무까지 도입하여 새롭게 시도한 공연이었다. 오스트롭스키는 19세기 러시아 최대의 드라마작가로서 <뇌우>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데(열린책들에서 나온 <러시아희곡1>에 번역돼 있다), 볼가강 주변 소도시의 상인집안에서 엄한 시어머니를 둔 며느리 카테리나가 장사를 떠난 남편 몰래 정부와 바람을 피웠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남편에게 자백하고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작품에 나오는 ‘뇌우’는 억압적인 사회적 규범을 상징하는데, 카테리나는 이 뇌우 소리를 두려워했었다. 조금 다르게 이해하면, 이 드라마는 여성의 ‘볼랴’에 대한 공포를 주제로 하고 있다.

‘볼랴’는 ‘자유(의지)’란 뜻인데, 그걸 여기서는 ‘여성적 욕망’으로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다(그리고, 언제나 여성의 욕망은 남성의 욕망보다 더 크다! 어느 남자가 바늘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는가?). 이 볼랴는 여성 자신에게도 낯선 어떤 것이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여성성은 여성 자신에게도 타자이다?). 거기에 대응하는 적합한 우리말은 ‘자유부인’이라는 조어에서의 ‘자유’이다. 그것은 사회의 상징적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제한되고(거세되고), 금지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아들의 어머니로서 시어머니-여성은 (자신의 욕망이기도 했던) 며느리-여성의 욕망을 억압하고 감시하며 통제한다! 때문에, <뇌우>와 <자유부인> 모두에서 여주인공이 사회적인 응징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회적 응징의 반복적인 무대화는 거꾸로, 이 여성적 ‘볼랴’ 혹은 ‘자유’에 대한 사회의 신경증적 불안을 무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사를 알아듣긴 힘들어도 전반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따라가는 건 문제가 없었는데, 보고 난 인상은 너무 어중간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정격 공연이 아닌, ‘파격’ 공연인 바에야 더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더 파격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공연은 몇몇 새로운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도저도 아닌 식이 돼 버렸다. 게다가 2막은 1막에 비해서 긴장도 떨어지고, ‘뇌우’의 상징성도 거의 사용되지 않은 가운데 짧게 끝나버려서 왜 굳이 제목이 ‘뇌우’인지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 내막에 대해서 오래 궁금해 할 여유는 없었고, 나와 룸메이트는 주연배우들의 인사가 끝나자 극장문을 나섰다. 나는 레프 도진의 <바냐 아저씨>나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얼마전 읽은 공연평에 의하면, 한국에도 다녀간 바 있는 도진은 생전에 ‘거장’이 되었다).

러시아에서의 대부분의 공연은 저녁 7시에 시작한다. <뇌우>도 마찬가지였고, 막간의 중간 휴식 15분 정도를 빼면, 2시간 20분쯤 되는 공연이었던 듯싶다(<악령>은 3시간이었다). 오늘은 전승기념일이라 그런지 공연 시작 전 잠시 동안 관객 전체가 기립하여 방송에 나오는 구령에 따라 묵념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러시아에선 러시아식으로 하는 수밖에!). 그런 거 저런 거 빼면, 2시간 10분쯤? 9시 45분쯤 극장문을 나섰는데, 해가 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 막 어둠이 내리고 있었는데, 더불어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스크바의 5월은 싱그럽다. 봄비에 실려서 가로수 냄새와 풀 냄새까지 코끝에 스친다(봄비가 내리는 광화문을 나는 좋아했었는데…). 보슬비를 맞으며 걸어가는데, 왼편의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이제 막 어느 밴드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가 귀에 익었다 싶었더니 류베의 노래였다. ‘혹시나’ 싶었지만, 류베는 아니었고,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젊은 밴드가 류베의 대표곡 하나를 부르고 있었다. “안개 저 너머에”라는 발라드. 푸른 바다에서 배를 타고 안개 저 너머에 있는 고향으로 귀향하고 있는 한 사내를 노래하고 있다. 아직은 멀었지만, 나도 푸른 하늘, 구름 저편에 있는 고향으로 귀향할 날이 올 것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 TV에서는 두 곳에서 오쿠자바 특집방송이다(사진은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오쿠자바 동상). 한 곳(‘문화방송’)에서는 생전의 오쿠자바의 공연 장면과 회고 등을 내보내고 있고, 다른 한곳(렌티브이)에서는 오늘부터 시작된 오쿠자바 페스티발을 녹화해서 보내주고 있다. 한 음유시인을 기억하는 야외 공연장에는 남녀노소 만 여명 이상이 질서정연하게 모여 있다.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데 있어서 러시아 사람들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프랑스 사람들과 한번 비교해 봐야겠지만). 다음주에는 오쿠자바 음반도 하나 사야겠다. 이 참에 당신(들)도 한번 구해보시기를. 키노와 류베와 오쿠자바(그리고 비소츠키)를…



04. 5. 9./ 06.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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