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화의 이해'라는 강의시간에 러시아 감독 파벨 룽긴의 <택시 블루스>(1990, 110분)를 보았다. 오늘이 '메이데이'이기도 해서 '영화'를 보는 걸로 기분을 좀 내고자 했지만(러시아는 5월 1일부터 승전기념일인 9일까지 대부분의 직장이 짧은 휴가를 갖는다), 영화의 주조음은 '블루스'여서, 그러니까 어둡고 음울한 영화여서 수강생들이 기대만큼의 '기분'을 내지는 못했을 듯하다. 하지만, 에인젠슈테인의 <10월>(1927)을 보는 것보다는 나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만일을 대비해서 화질도 좀 떨어지는 <택시 블루스> 외에 <10월>을 나는 여분으로 들고 갔었던 것.   

'파벨 룽긴'이라고 통상 표기되지만(영화잡지나 감독사전들에서도 그렇게 표기되고 있다), 러시아어를 음역한 영어식 표기는 'Pavel Lugin'이며, '파벨 룬긴'이라고 표기하는 게 맞다. 한데, 감독은 늦깎이 데뷔작이었던 프랑스와 구소련의 합작 영화 <택시 블루스>로 칸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는 아예 프랑스로 건너가버린다(그러니까 러시아의 '프랑스통' 감독이다). 그래서 얻게 된 그의 프랑스식 이름은 'Pavel Lounguine'이다. 아마도 이 이름이 다시 우리말로 옮겨지면서 '룬긴'이 '룽긴'으로 탈바꿈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1949년생인 룽긴은 간단한 소개에 따르면, "번역가인 어머니와 극작가인 아버지 덕분에 그는 어릴 때부터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던 언어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극작가였다. 번역가인 어머니와 극작가인 아버지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프랑스에 유학하여 본격적인 영화감독 공부를 하던 중 자작 시나리오 <택시 블루스>로 데뷔, 이제 칸느의 영광과 함께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감독이 되었다."  

"소련에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처럼 촛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고 일갈하며 등장한 룽긴은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의 혼란기 '소련'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투박하고 거칠며 암울한 현실이 그의 영화 속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가 직접 각본을 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영화는 달리는 영업용 택시를 통해 보여지는 모스크바의 어느 변두리 모습으로 시작된다. 택시 안에는 술에 취한 젊은이들이 온갖 술주정을 부리는 등 운전수를 귀찮게 한다. 결국 그들은 택시 요금조차 내지 않고 도망가 버리고 그들을 놓쳐버린 택시 운전사 쉴리코프는 그 주동자인 로샤를 찾아내지만 그가 빈털털이인 것을 알고 그의 색소폰을 빼앗는다. 그는 색스폰을 가지고 암시장을 헤맨 끝에 악기가 무척 비싼 것임을 알고 악기를 로샤에게 돌려주는 대신 술주정뱅이인 로샤를 그의 밑에 두고 일을 시키기로 한다.

-결국 로사는 쉴리코프와 기묘한 동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삶의 가치관이 대조적인 소련인 쉴리코프와 유태인인 로샤는 색다른 우정을 쌓아간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색스폰 연주에 몰두하게 된 로사는 차츰 그 연주의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하는데 어느날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든다. 그곳에 순회공연을 온 미국연주단의 눈에 그의 음악성이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결국 로샤는 그 미국 연수단의 일원으로 특채되고 함께 연주를 하게 되며 얼마가지 않아 대중에게도 인기있는 뮤지션이 될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하지만, 로샤가 유명해지면서 쉴리코프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로사는 결국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뒤늦게 로사의 천재성을 인정하게 된 쉴리코프에게는 조롱만을 남겨놓은 채.  

 

 

한겨레 신문  2006. 04. 20 유윤성 프로그래머가 추천하는 7편

뿌리 (파벨 룽긴, 러시아)

시종일관 흥겹고 떠들썩한 이 영화는 <택시 블루스>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러시아 감독 파벨 룽긴의 최신작이다. 영화의 주인공 에딕은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고향의 친척들을 찾아주는 알선업자다. 그런데 그들이 찾고 있는 고향과 그곳의 사람들은 과거의 끔찍한 사건으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이에 에딕은 근처 마을 사람들을 매수하여 가짜 친척 노릇을 하게끔 사기극을 꾸민다. 잠시 동안의 재회로 끝날 것 같았던 가짜 친척들과 의뢰인들 사이에 진짜 애정이 싹트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 사회의 가치관 상실 및 도덕적 타락의 상황을 집요하게 파헤쳐왔던 룽긴 감독은 <뿌리>에서 좀더 유연하고 넉넉하며 성숙한 시선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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