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을 때라 더 눈길이 갔는지 모르겠다. 얀 볼커르스의 <터키 과자>(현대문학, 2016). 네덜란드 문학의 거장이라지만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고, 작품 또한 그러하다. 게다가 1969년작. 언젯적 작품이냐란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발견'은 발견인지라 조금 늦어지는 점심을 기다리며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연결고리가 없지는 않다.

 

"1969년 발행 당시 숨김없는 정사 장면과 직설 화법으로 네덜란드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파격적인 베스트셀러로, 빌럼 헤르만스, 하리 뮐리스, 헤라르트 레버와 함께 네덜란드 문단의 ‘위대한 네 문호’로 꼽히는 얀 볼커르스의 대표작이다. 네덜란드 사회의 개방적인 성 담론의 시발점이자, 네덜란드 현대문학의 근간이 되는 작품인 동시에 세계문학사에서 ‘네덜란드어로 쓰인 최고의 문학’, ‘20세기 성애 문학의 고전’이라 평가받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한편, <터키 과자>를 원작으로 하여 폴 버호벤 감독이 제작한 영화 <사랑을 위한 죽음>은 1973년 제46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보지는 못했지만 <사랑을 위한 죽음>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도 들어 있다. 찾아서 볼 만하다는 것. 영화 소개에 원작이 얀 볼커르스의 <터키 과일>이라고 돼 있다. 'Turks Fruit'이란 원제를  옮겨서 그런 듯한데, 갑자기 이게 과자인지 과일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보니 우리도 예전에 많이 먹던 과일 젤리다.

 

 

이걸 우리가 '터키 과자'라고 부르지는 않을 거 같은데, 정말로 그렇다면 원제는 <터키 젤리>여야 하지 않을까도 싶다. 과자와 과일 사이에 있는 어떤 것. 소설이나 영화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 보면 알 수 있겠다.

 

얀 볼커르스는 네덜란드 4대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되지만, 우리에겐 도움이 안 되는 정보다. 나머지 3인의 작가, 즉 빌럼 헤르만스, 하리 뮐리스, 헤라르트 레버, 아무도 소개된 바 없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문학이 소개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따로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그만큼 좀 생소하달까.

 

 

찾아보니 영화로도 만들어진 <디너>(은행나무, 2012)의 작가 헤르만 코흐가 네덜란드의 국민 작가라고 한다.

 

 

장르문학 쪽의 작가들이 아무래도 국내에 소개되기 쉬운 성싶은데, '살인자 시리즈'의 로베르트 반 훌릭 같은 경우가 그렇다. 국내에도 그의 독자층이 있는 것일까?

 

 

아, 드디어 한 명 생각났다. 세스 노터봄.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의식>과 <필립과 다른 사람들>을 포함해서 몇 작품이 번역돼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네덜란드 문학의 계보랄까 하는 것은 그려지지 않는다. 검색해보면 대략적인 정보는 알 수 있겠지만 당장은 그렇다는 말이다. <터키 과자>가 계기가 돼서 주요 작가들이 더 소개되면 그때 가서 네덜란드 문학만의 독자성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봐야겠다.

 

 

하반기에는 주로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의 현대문학을 강의할 계획인데, 따로 '문학속의 정념'을 다루는 강의에 <터기 과자>를 포함시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믿고 보는) 버호벤의 영화도 구해봐야겠다...

 

16. 06.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