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고전'으로 재간된 볼테르의 <관용론>(한길사, 2016)을 고른다. 2001년에 학술명저번역총서로 나왔던 책이 이번에 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다시 나왔다. 거기에 지난해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옴므리브르, 2015)란 제목으로 다른 번역본이 나온 바 있어서 선택지는 두 종이다. 1763년작.

 

"<관용론>은 계몽사상가로 유명한 볼테르가 18세기 유럽을 휩쓸던 종교 전쟁의 광풍에 희생된 한 가장(家長)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관용’의 개념을 역설한 책이다. 볼테르는 이 책에서 탐사보도 성격의 글쓰기와 시각 자료의 적극적인 활용 등 오늘날 저널리즘의 표본을 보여주며 당시 막 세상에 빛을 비추던 계몽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사상 등을 효과적으로 제시해 종교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프랑스혁명을 앞당기는 데 공헌했다."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는 원제에다 '칼라스'란 이름을 더 집어넣었는데, "종교 전쟁의 광풍에 희생된 한 가장"의 이름이 바로 칼라스다. 종교적 광기와 맹신이란 게 어떤 것이었나. '장 칼라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장 칼라스는 툴루즈에서 도매상을 하며 자상한 아버지이자 성실한 가장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신교도이지만 종교적 편협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둘째 아들이 가톨릭교로 개종했지만 용인했으며, 열렬한 가톨릭 신자인 하녀에게 자식들을 모두 맡길 정도였다. 그러던 1762년 5월 9일, 장남인 마르크 앙투안 칼라스가 삶을 비관한 나머지 목을 매고 자살한다. 이 사건을 접하고 모여든 군중들 가운데 누군가가 칼라스의 장남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가족이 뜻을 모아 그를 살해했다고 소리쳤다. 근거 없는 소문과 의구심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 마침내 신교도에게 적대적이며 맹신적이었던 당시 툴루즈 시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툴루즈 법원은 여론에 휩쓸려 칼라스 가족을 체포했다. 이후 거듭되는 가혹한 심문에도 장 칼라스는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맹신과 편견에 빠진 일부 재판관들은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장 칼라스만 수레바퀴에 매달아 죽을 때까지 매질과 고문을 하는 사형을 집행했다."

 

'관용'으로 번역된 단어가 한때 유행한 '똘레랑스'다. 그리고 그 유행의 출처가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 1995)였다. 볼테르의 <관용론>을 읽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까지 읽으면 관용(똘레랑스)의 의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 중년 독자라면 다들 알 만한 사실이지만, 젊은 세대 독자들을 위해서 적었다...   

 

16.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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