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정은 빈민정이라고도 해서 부자들이 지배하는 과두정과는 반대되는 정치체제다(플라톤은 <국가>에서 네 가지 나쁜 정치체제 가운데 과두정이 타락하여 민주정이 된다고 말한다. 부자들의 지배에 빈민들이 항거하여 등장하게 되는 게 민주정이다). 이게 정치 상식이지만 우리의 경험칙과는 뭔가 잘 맞지 않는데(이번 총선에서도 결국 새누리당이 아무리 못해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다수당이 될 거라는 전망을 보라. 어떤 이유에서건 민주선거의 결과가 늘 '부자 천국, 서민 지옥'당의 승리로 끝난다는 역설이 우리의 경험 아닌가), 그 경험칙을 해명해주는 책이 나와서 '이주의 발견'으로 꼽는다. 대럴 웨스트의 <부자들은 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가>(원더박스, 2016)다.

 

"정치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갈수록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전세계 억만장자들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분석, 논의하고 대안을 살펴본 최초의 단행본이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국정운영연구실 부실장 겸 기술혁신연구실장인 저자 대럴 M. 웨스트는 방대한 자료를 통해 그들의 활동이 사회에 야기하는 문제와 금권정치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해부한다. '에어백이 장착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위해서 언론 매체 보도를 통한 투명성 제고와 의회의 법규 개정, 소득 불평등에 대한 인식 변화, 공정한 조세정책, 기회 다원주의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룬 '최초의 단행본'이라고 하는데, 조금 초점은 다를지라도 같이 읽어볼 수 있는 책이 없지는 않다. 토머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갈라파고스, 2012)가 대표적이다(두 권 다 번역본 제목은 원제를 직역한 게 아니라 문제의식을 압축한 것이다). 다시 환기하자면, "왜 가난한 사람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기업인들의 이익을 늘리는 정책에 몰두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걸까? 캔자스를 비롯한 낙후된 지역이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부자들의 정당 공화당을 지지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우파의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정치조작의 과정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관련서가 없지 않은 게 아니라 적잖다. 제이콥 해커와 폴 피어슨의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21세기북스, 2012), 크리스 레만의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21세기북스, 2012)도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 아닌가. 거기에 더 보탤 만한 <가진 자, 가지지 못한 자>(파이카, 2011)의 저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부자들은 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사랑하는 이유야 복잡할 것도 없다.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거나, 그 이익을 쉽게 관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부유층은 당신이나 나와는 다른 사람들인가?”라고 대럴 웨스트는 묻는다. 그들이 우리와 다르든 다르지 않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들은 때로는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정부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 분열과 일확천금의 문화를 조장하면서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결코 남 얘기로 읽을 수 없는 책들이지만, 그래도 우리 현실을 다룬 한국판도 나오길 기대한다. 그나저나 총선 전망은 (아무리 그게 '현실'이고 익숙하다곤 해도) 미리부터 우울하군...

 

16. 03. 15.

 

 

P.S. 아직 예판중인 책이지만 최근 화제작은 단연 <필리버스터>(이김, 2016)이다(이주에 나온다고 하니 이 또한 '이주의 발견'이다). 출판사 이김의 첫 책인데(일인출판사가 아니라 이인출판사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와 김의 출판사). 제목대로 지난번 필리버스터의 총결산이다. "2016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9일간 이어진 제340회 국회(임시회) 본회의는 테러방지법안 반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진행되었다. 192시간 27분의 필리버스터 속기록 전문을 편집 없이 엮어내었다." 반응을 보면 필리버스터에 대한 열광이 출판 쪽으로도 옮겨올 기세인데, 이러한 반향이 찻잔속의 폭풍이 아니라 선거혁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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