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린 코리건의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책세상, 2016)는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의 독자라면 필독할 만한 책이다. 단순히 전공자가 쓴 책이라기보다는 <위대한 개츠비>를 '가장 위대한 미국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열독자가 쓴 찬가다. 저자가 영문학자에 문학비평가이기도 해서 이 찬가가 작품분석과 해석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게 여느 찬가와 다를 따름이다.

 

 

오랜만에 나도 문학 열강을 듣는 기분으로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감염이 되었는지 피츠제럴드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구입했고, 심지어 이미 두어 권 갖고 있는 영어판 <위대한 개츠비>도 또 구입했다. 한데 좀 낭패다 싶은 대목과 만났다. 소설의 결말에 대한 해석 부분이다. 저자는 "이 소설이 물과 익사의 심상에 매달린다는 점"을 여러 근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주장하면서 그 피날레로 마지막 단락을 예로 든다.  

"개츠비는 녹색의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절정의 순간과 같은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한테서 달아났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 내일은 우리가 더 빨리 달리고, 더 길게 팔을 뻗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맑은 아침에---"(64쪽)

정확하게는 소설의 끝에서 두번째 단락이다(마지막 문장은 "그래서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들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리면서도."인데, 피츠제럴드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눈에 띄는 것은, 눈에 띄어야 하는 것은 마지막의 긴 줄표이다. "어떤 평론가들은 마지막 문장의 불필요하게 긴 줄표에 충격을 받았다."고 할 정도다(인용문에서는 짧은 줄 세개를 붙여 놓았지만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봐달라). 이에 대해서 "몇몇 평론가는 이 터무니없이 긴 줄표가 개츠비가 소유한 선착장 끄트머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고 주장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독자라면, 그리고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눈썰미 있게 본 관객이라면 기억하듯이, 1장 끝 무렵에 개츠비가 해협 너머의 데이지의 저택 선착장(녹색의 불빛)을 향해 팔을 뻗던 장소가 바로 개츠비의 선착장이다. 모린 코리건도 이러한 해석에 가세한다. 익사하지 않기 위해 계속 헤엄을 친다는 것은 비단 이 작품에서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는 피츠제럴드 자신의 인생관이었다. 물론 그러다 언젠가는 기운이 빠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날'이 올 것이다. "개츠비가 수영장에서 죽은 바로 그날처럼 우리가 선착장에 끄트머리에 도달하고 떨어져 물에 빠져 죽는 그날이." 

"이런 독법에 따른다면, <개츠비>의 마지막 부분에 피츠제럴드가 선착장만큼이나 긴 줄표를 심어둔 것은 어쩌면 미국 문학사상 최초의 그래픽노블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64-65쪽)

 

전문가들의 과잉해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우리로선 그렇게 과잉해석할 여지도 없다는 점. 왜냐하면 이 긴 줄표가 번역본들에서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수조사는 하지 못하고 책장에 있는 <개츠비>들을 눈에 띄는 대로 확인해본 결과 대부분 긴 줄표를 평범한 말줄임표로 대체하고 있었다(문학동네판만은 못 찾아서 바로 확인하지 못했다). 이 '선착장'이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내가 갖고 있는 몇 권의 영문판에서도 긴 줄표 대신에 짧은 줄표가 쓰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맑은 아침에---"가 "그러다 보면 어느 맑은 아침에-"로 바뀐 것. 애초에 그렇게 된 판본을 우리말로 옮겼으니 한국어판 역자나 편집자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순전히 이 긴 줄표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른 영어판을 구해야 할까 잠시 생각해봤지만(이건 줄표 하나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선착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막상 긴 줄표로 되어 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 채 책을 주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내가 염두에 둔 건 스크리브너판이다. 애초에 <위대한 개츠비>를 펴낸 출판사).   

 

여하튼 내가 비평을 가리켜서 '다시 읽게끔 하는 것'이라고 할 때 뜻한 바는 바로 이런 사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16. 02. 10.

 

 

P.S. 지나는 김에 번역서에서 누락된 곳 하나. "위대한 미국 소설의 지원자들을 한번 모아보자. <모비딕> <보이지 않는 인간>, <주홍글씨>, <허클베리 핀>, <앵무새 죽이기>."(21쪽) 무엇이 빠졌나?(말이 나온 김에 지적하자면, '지원자들'은 '후보자들'로, <주홍글씨>는 <주홍글자>로 옮기는 게 낫겠다.) 물론 이 목록만 가지고는 알 수 없지만, 같은 목록이 한번 더 나오므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계급을 다룬 미국의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 사실, 그 분야 고전들(<모비딕><허클베리 핀>, <앵무새 죽이기>, <보이지 않는 사람>, <빌러비드>) 가운데 인종 대신 계급을 중시한 작품으로는 유일하다."(26쪽) 

여기서도 '그 분야 고전들'은 '미국문학의 정전들'로 옮기고,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통일시켜주는 게 낫겠다. 그렇다, 빠진 작품은 <빌러비드>다. 21쪽에서 <빌러비드>가 누락되었다. <보이지 않는 인간>이나 <빌러비드>나 모두 인종 문제를 다룬 대표적 작품이다. 반면 <개츠비>는 계급 문제를 다룬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게 저자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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