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의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은 지난해 12월에 '막차'로 출간된 책들이다. 그래도 새해의 기분을 좀 내기 위해 첫번째 책만큼은 2006년에 나온 책으로 꼽는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의 <자서전>(미메시스, 2006)이 그것이다. 원저는 'An Autobiography'(1943).

건축 분야에 문외한인지라(나는 아직 전세집에 산다) 나로선 저자의 이름이 생소한데,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구겐하임 미술관'이 그의 작품이란 소개를 보고서야 대충 지명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위의 사진 참조). 그는 "70여 년 동안 천여 점에 달하는 건축 작품을 남긴 라이트는 많은 건축가들이 20세기 최고의 건축가로 손꼽는 인물"이며, "이러한 평가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현재 그에 관련된 논문과 저작만도 2천여 편에 달한다"고 한다.

소개를 좀더 따라가보면, "그는 살아 있을 때부터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탁월한 디자인과 독창적인 이론에 있어서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인생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처럼 파란만장하였기 때문이다. 책은 이 위대한 건축가가 자신의 삶과 사랑, 그리고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적어나간 기록으로, 건축이 자연과 소통하고 융합해야 한다는 그의 '유기적 건축 이론'과 혁신적인 양식들이 과연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라이트 자신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그의 건축과 생애와 관련된 다양한 사진 자료가 함께 실려 있으며, 라이트의 작품들을 연도순으로 정리한 별책을 첨부하여 그의 작품 세계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설명보다 사실,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위대한 건축가는ㅡ필연적으로ㅡ위대한 시인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순간과 나날과 시대의 독창적인 해설가여야 한다"는 라이트의 말이다. 자신이 '건축업자'나 '건축기술자'가 아니라 '건축가'라는 걸 단 두 문장으로 압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저자'로서의 자격도 충분하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그의 자서전은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1장이 '가족과 친구들', 2장이 '일', 그리고 3장이 '자유'이다. 92세의 장수를 누리기도 했지만, 그만하면 남부럽지 않은 생애이다.

Annunciation Greek Orthodox Church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하나 정도만 잠시 감상해보자. 수태고지 그리스 정교사원(Annunciation Greek Orthodox Church)이라고 돼 있는데, 1956년작이고 위스콘신주의 와우와토사(Wauwatosa)에 있다고 한다. 세상은 넒고 사람뿐만 아니라 건축도 가지가지라는 걸 새삼 알게 해준다.

 

 

 

 

로이드 라이트에 대해서는 작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자연을 품은 공간 디자이너>(살림)라는 문고본 소개서가 이미 나와 있다. 검색해 보면 품절된 책이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태림문화사, 1998)란 소개서도 있고. 교양을 조금 더 확대하자면, 20세기 건축에 대한 안내서들을 몇 권 꼽아볼 수 있겠다. 클라시커 시리즈의 <20세기 건축>(해냄, 2002)부터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생각의나무, 2005)까지. 나는 주로 '사유의 건축'에 관심이 있지만, 언젠가 전세살이를 좀 면하게 되면 이런 건축'작품'들에 대한 견문도 넓혀보아야겠다.

 

 

 

 

한편, 로이드 라이트가 미국 최고의 건축가라면, 스페인이 자랑하는 최고의 건축가는 단연 안토니 가우디(1852-1926)이고, 이 가우디만큼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그의 건축들만큼이나 특이한 '가우디'란 이름부터가 기억을 용이하게 할 뿐더러 이미 그에 관한 다수의 책들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건축관련서를 읽는다면, 가장 먼저 손에 들어볼 만한 책들인데 이 분야 번역서들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평은 들은 바 있어서 미뤄두고 있었다. 건축 분야에도 주변에 전문 리뷰어가 있었으면 싶다.

  

 

 

 

한편, 철학이란 게 '생각의 집짓기' 혹은 '개념의 건축술'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만큼 '건축과 철학'이란 주제는 유구한 주제이다. 보드리야르의 <건축과 철학>(동문선, 2003), 데리다 등이 쓴 <공간의 논리>(현대건축사, 2001), 그리고 라이크만의 <들루즈건축>(접힘과펼침, 2004) 등이 그것인데, 공통점은 모두 번역이 미덥지 못하다는 것. 그간에 건축 분야의 책들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생각의 집짓기'란 표현을 처음 본 건  김윤식 문학선으로 나온 <작은 생각의 집짓기>(나남, 1985)에서였다. 대학 1학년 때 읽은 듯한데, 그맘때 읽은 책들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건 박이문의 <시와 과학>(일조각, 1975). 철학과 사르트르에 대한 열정을 나는 그에게서 배웠다(이를 테면, '이문유치원' 혹은 '이문초등학교'?). 

지난 연말에 읽은 박이문 선생의 '자서전격' 저작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미다스북스, 2005)에 실린 저작 목록을 보니까 시집을 제외한 30여권의 책들 가운데 적어도 20권 이상의 책들을 사서 읽었다(나중에 박이문론을 써도 되겠다). 그런데, 이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철학적 여정의 피날레는 '둥지의 철학'이 될 거라고 한다. 아직 저자의 구상이 최종적인 형태로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경우에 '둥지로서의 철학'이 실용주의적 처세술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혹은 우리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 모두 '새'가 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새-되기? 새됐어?). 혹은 (애독자로서) 우려된다. 허무주의자의 '행복'이 부럽지 않은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어쨌든 건축가의 자서전을 제일 처음 꼽은 것은 새해를 설계하는 시기에 세기의 건축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설계했었나 들여다보는 것도 유익한 참고가 될 듯해서이다.

그리고 두번째 책은 미국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의 <낯선 육체>(새움, 2006). 아직 알라딘에는 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올라와 있지 않지만, "알폰소 링기스는 현상학과 실존주의, 현대철학, 윤리학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발표하고 있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이 사실을 내게 알려준 건 책을 간행한 새움출판사쪽이다(표지만 봐서는 무슨 '사진집'류가 아닌가 착각하겠다). 보도자료를 보내주셨는데, 반갑게도 나의 관심분야와 맞아떨어지는 책이기도 해서 주저없이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

'알폰소 링기스'란 이름이 다소 생소한데, 조금 검색해보다가 나는 무릎을 쳤다. 레비니스의 <전체성과 무한>(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등의 영역자인 것이다! 소개에 따르면 그는 "레비나스의 윤리학을 미국에 소개하고 탁월하게 주해한 선구자로 그의 사유를 계승 발전시킨 학자이다. 링기스는 또한 메를로-퐁티, 클로소프스키 등의 주요 저서들을 영역하고, 그들의 이론을 심화시키는 한편 비판적으로 경쟁하면서, 현대를 사는 육체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사유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낯선 육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링기스의 저서로 삶정치(biopolitics)에 대항하는 정체성에 대한 면밀한 탐구를 담고 있다."(나는 '생체정치'라고 옮기는 'biopoltics'에 관한 책으론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도 근간 예정인 걸로 안다. 조만간 '생체정치'는 국내 인문학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니 한번 읽어봄 직하지 않은가.

 

 

 

 

세번째 책은 베른트 하인리히의 <까마귀의 마음>(에코리브르, 2005). 지난 연말에 나온 책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책인데(표지가), 600쪽이 넘는 분량이니까 '까마귀'를 제목에 달고 있는 책들 가운데 가장 두껍지 않을까 싶다(일단 그게 마음에 든다). 저자는 미국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라고 하며, 책은 그의 대표작이라고(그의 책으론 <숲에 사는 즐거움>, <동물들의 겨울나기>가 더 소개돼 있다). 

소개를 잠시 옮겨본다: "하인리히는 미국 동북부 메인 주 숲속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동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사색하며 지내는 현장 학자이다. 특히 이 책의 주인공인 '도래까마귀'는 1980년대부터 근 20년간 저자가 여러 개체들을 자식처럼 길들이며 함께 지내왔던 새이다. 저자는 인간의 기준으로 동물의 생태를 섣불리 몇몇 개념으로 추상화하기보다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일궈나가는 동물들의 생활상과 행동 하나하나를 충실히 묘사해간다. 600쪽에 달하는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은 그런 실증적인 관찰과 체험의 기록이다. 그런 단단한 기초 위에서 저자는 비로소 조심스럽게 자신이 관찰한 한 숭고한 새의 마음의 세계, 즉 그들의 의식과 지능, 다른 포식동물과의 공생, 놀이, 인간과의 우정, 가족애를 긍정한다." 요컨대, 까마귀란 종의 '평전'쯤 되겠다.

저자가 동물행동학자'라고 돼 있는데, 사실 '동물행동학'의 역사가 그리 오래된 건 아니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콘라트 로렌츠, 니코 틴버겐, 폰 프리슈가 그 원조들이기 때문이다. 이 중 대중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는 역시나 <야생거위와 보낸 일년>(한문화, 2004)의 저자 로렌츠이며(창가시고기 연구로 유명한 틴버겐은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이자 저술가 데즈몬드 모리스의 스승이기도 하다. 프리슈의 전공은 꿀벌들의 의사소통 수단인 춤, 즉 벌춤), '야생거위'에 대한 그의 연구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조류의 '각인' 행동을 발견함으로써 유명해졌는데, 그걸 이용해서 그는 거위들의 '어미' 행세를 했다. 사진은 '자녀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는 '어미' 로렌츠). 한편, <핀치의 부리>(이끌리오, 2002)는 생태학과 진화론에 걸친 저작이지만, 새를 다룬 책들 가운데 가장 명망이 높은 책이므로 같이 되새겨둔다.

이솝우화의 단골손님이기도 하지만, 문학에서 '까마귀'와 관련해서 내게 떠오르는 이름은 카프카와 포우, 두 작가이다. 카프카란 이름이 체코어로 '까마귀'를 뜻하기도 한다는 카프카(그 경우엔 '까프카'라고 해야겠다)와 "Nevermore!"란 후렴구가 유명한 시 '까마귀(The Raven)'(1848)의 저자 포우 말이다. <까마귀>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And the raven, never flitting, still is sitting, still is sitting
On the pallid bust of Pallas just above my chamber door;
And his eyes have all the seeming of a demon's that is dreaming,
And the lamp-light o'er him streaming throws his shadow on the floor;
And my soul from out that shadow that lies floating on the floor
Shall be lifted - nevermore!

그러고도 갈가마귀는 날아가지 않고 아직도 앉아 있었네.
나의 침실문 바로 위 팔라스의 창백한 흉상 위에 아직도 앉아 있었네.
그의 두 눈을 꿈꾸고 있는 악마의 온갖 표정을 담고-
새를 흝어내리고 있는 등잔불빛이 마루 위에 그의 그림자를 던져주는데
마루 위에 누운 채 떠돌아다니는 나의 영혼은 그 그림자를 떠나서는
두 번 다시 들리우지 못하리라- "이젠 끝이야"




 

 

한데, 책소개는 아직 덜 끝났다. 포우 얘기도 나온 김에 꼽는 책은 '미국 정신의 르네상스를 이끈 우정'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이레, 2005). 두 사람의 이름은 지난주에 정현종 시인의 글들을 읽다가도 만날 수 있었는데, 사실 나는 <자연>의 저자이면서 초월주의/초절주의 운동가/철학자 에머슨과 <월든>과 <시민 불복종>의 저자 소로우 간에 어떤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신간의 제목이 눈에 띈 건 그런 배경 때문이다.   

소개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초월주의 운동을 이끌던 에머슨은 1837년 자신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하버드 대학에 다니던 스물한 살의 고학생 소로우를 만난다. 서로의 환경은 매우 달랐지만 소로우와 에머슨은 곧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소로우가 마흔네 살에 죽을 때까지 우정을 지켰다. 에머슨은 소로우가 탁월함을 발휘할 수 있게끔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에머슨과 소로우 간의 25년에 걸친 '비밀스런 우정'이 탄생하게 되었고, 책은 그걸 기록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소로우와 에머슨의 교우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정신사의 두 영웅의 모습을 추적한다. 그가 밝히는 이 둘의 관계는 보통의 친구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쟁과 협력이 있는가 하면, 사랑과 질투의 시선도 교묘하게 교차한다. 언제나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했던 에머슨이 소로우의 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일화, 에머슨이 영국강연 여행을 떠난 9개월 동안 그의 집에서 리디안과 아이들을 돌보는 에머슨의 역할을 하면서 소로우가 겪었던 심리적 갈등도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니까 시간이 나면 일독해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꼽는 책은 저명한 SF작가 아서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옹기장이, 2005). 원저는 'Rendezvous with Rama'(1973)이며, 발표 당시 휴고상, 네뷸러 상, 존 캠벨 기념상, 주피터상 등 주요 SF 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번역본은 이번에 재출간되었다). 그렇긴 하나 '장르소설'을 잘 읽지 않는 그의 소설들을 나는 읽어본 바 없고, 다만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았을 뿐이다.

사실 아서 클라크의 책을 꼽은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건 그가 <스타십 트루퍼스>의 저자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3대 과학소설 작가로 꼽힌다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떠올려주었기 때문이다. 아시모프의 대표작은 <파운데이션>이라고들 하지만, 내가 재미있게 읽은 건 그의 자서전, 즉 <아이작 아시모프 자서전>(작가정신, 1995)이다. 1995년 연말에 출간된 그 책을 나는 딱 10년전, 그러니까 1996년 정초에 읽었다(2권짜리를 읽었는데, 미진하게 끝나길래 출판사에다 '이게 끝이냐, 혹 잘라먹은 거 아니냐?'란 항의성 전화까지 한 적이 있다. 출판사 답변은 '그게 다예요'였고, 관심에 감사하다며 다른 책을 한권 보내왔었다.) 그 자서전이 현재는 절판된 듯하여 아쉽다(내 책은 아직 버리지 않았으니까 어디 박스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여하튼 시간이 되시는 분들이라면 이 '3대 작가'들의 세계에 한번쯤 빠져보시길.

 

 

 

 

하지만, SF로 죽일 시간은 부족하면서 한편으론 '진지함'은 남아도시는 분들은  수전 그린필드의 <미래>(지호, 2005)나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미래>(사이언스북스, 2005)를 일독해보시길. 전자는 원제가 'Tomorrow's People'(2003)이고(부제는 "내일의 과학은 우리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후자는 원제가 'The Future of Life'(2002)이다. 한해의 시작때면, 올 한해뿐만 아니라 더 먼 장래까지도 한번쯤 내다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런 인지상'정(情)'에 '지(知)'를 보태는 데 참고할 만한 책들이겠다. 비슷한 성격의 책으론 보다 중립적인 것으로는 존 브록만(브로크만)이 엮은 <앞으로 50년>(생각의나무, 2002)도 있다.

오늘자 한겨레 책-지성 섹션에는 이 브로크만과 관련한 기사가 표제를 장식했는데, '새해 아침의 생각'으로 던져진 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위험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이고, 이건 <디제라티, 디지털 시대의 파워엘리트>(황금가지, 1999), <제3의 문화>(대영사, 1996)의 저자/편집자로 유명하다는 과학저술가이자 편집자, 그리고 '세계물음센터'(www.edge.org)의 운영자인 브로크만이 1997년부터 연례행사로 벌이고 있는 연말 이벤트의 일환이라고 한다. 올해가 10번째인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몇몇 스타 과학자들의 대답을 옮겨와본다(*최근에 책으로 출간됐다. <위험한 생각>(갤리온, 2007)이 그것이다).

Q. 당신이 생각하는 위험한 생각이 있다면?  

브라이언 그린(이론물리학, <엘리건트 유니버스>·<우주의 구조>(승산))=여러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생각, 우리는 ‘우주들’(multiverse)이라 불리는, 광대한 우주(universe)의 집합 가운데 하나일 뿐일지 모른다는 생각.

 

 

 

 

리처드 도킨스(생물학,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조상 이야기>(까치))=차가 고장나면 차를 탓하는 것처럼 잘못된 비난과 책임 덮어씌우기는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더 진실에 가깝게 분석하는 일을 그만두고 지름길로 가는 수단으로 만들어낸 의도적 허구라는 게 나의 위험한 생각이다.

 

 

 

로드니 브룩스(로봇공학, <로봇 만들기>(바다출판사))=내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비생명체가 생명체로 바뀌는 자발적 변형이 극히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것이 (지구에서) 단 한번 일어났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수십년 안에 그것이 매우 희귀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여러 증거들을 얻는다면 어찌될까. 우리는 우주에서 완전히 외톨이 생명체일까.

 

 

 

 

다니엘 데넷(과학철학, <다윈의 위험한 생각>)=우리는 정보 홍수 속에서 익사하거나 익사하지 않을 것이다. 익사한다면, 우리는 정보 과식에 의해 심리적으로 압도돼 희생될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정보 과잉 앞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익사하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선조들과는 아주 아주 다른 존재가 돼 있을 것이다.

 

 

 

 

로렌스 크라우스(물리학, <외로운 산소 원자의 여행>(이지북))=세계는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제레미 번스타인(물리학, ·<오펜하이머>(모티브북))=가장 위험한 생각은 우리가 플루토늄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왜 작용하며 얼마나 안정적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무한한 미래에 안전하게 저장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셰리 터클(심리학, <스크린 위의 삶>(민음사))=컴퓨터 문화 안에서 살며 몇 세대 지나고 나면 시뮬레이션은 완전히 자연스런 일이 될 것이다. 전통적 의미의 진정성은 가치를 잃어 한 시대의 흔적으로 남는다.

 

 

 

 

하워드 가드너(심리학, <체인징 마인드>(재인) <다중지능>(김영사))=나의 위험한 생각은 (인간의) 도덕 정신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 즉 권력욕이나 즉흥적 만족, 적의 절멸 같은 다른 동기들에 의해 도덕정신이 동원되거나 압도될 수 있다는 것.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심리학, <몰입의 즐거움>(해냄) <플로>(한울림))=정치경제가 다른 어떤 가치에 앞서 자유시장을 만능해결책으로 지니고 있다는 생각. 그게 위험한 것은 자유시장이 일부엔 해택을 주지만 대다수엔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하는 지성적이고 정치적인 사기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핀커(심리학, <빈 서판-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사이언스북스))=평균 능력과 기질이라는 측면에서 인간마다 집단마다 유전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다음 십년 동안 위험한 생각이 될 것이다.

 

 

 

 

리처드 리스벳(심리학, <생각의 지도>(김영사))=우리가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존 앨런 파울로스(수학, <수학자, 증권시장에 가다>(까치)·<수학 그리고 유머>(경문사))=‘초자연적 존재는 있을까’ 하는 의문은 진부하다. 더 근본적인 의문은 ‘우리는 존재할까’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지닌 약간 통일적 실체, 그 이상의 어떤 존재일까.

 

 

 

 

린 마굴리스(생물학, <생명이란 무엇인가>(지호))=섬모를 이용해 박테리아는 먹이를 향해 헤엄치고 유해한 가스를 피해 헤엄친다. 뜨거움을 피하고 불빛을 좇는다. 그래서 우리 감수성은 박테리아 조상의 감각 섬모에서 직접 진화했다는 생각, 그래서 박테리아는 우리의 친구나 적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생각.

 

 

 

 

다니엘 힐리스(물리학, <사이언스 북>(공저, 사이언스북스))=우리 모두가 가장 위험한 생각들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

 

 

 

여기에 나의 가장 위험한 생각을 덧붙이자면, 끔찍한 일이지만 이런 소개를 올해도 계속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06. 01. 05 - 06.

 

 

 

 

P.S. 연말에 나온 '고전'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재출간된 <아미엘 인생일기>(동서문화사, 2005)이다. "19세기 스위스의 문학자이자, 철학자인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이 40년동안 쓴 일기를 엮은 책"으로 "수양서 성격을 띠고 있는 일종의 사적인 에세이"이며 "인간과 역사에 대한 고민, 개인과 사회에 대한 통찰, 인간 내면에 대한 반성과 고뇌를 받아들이는 한 개인의 치열한 모습을 담고 있다."

"1883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며, 1923년 프랑스에서 다시 발간되어 식민지 쟁탈과 영토분쟁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인간과 생명, 윤리와 도덕에 대한 존엄성이 퇴색되어 가던 혼란기의 유럽에 큰 반향과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완역되어 선보인다"니까 관심을 두어봄 직하다. 1,000쪽이 넘는 분량이기 때문에, 대충 1월부터 슬슬 읽기 시작하면 연말쯤 다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이의 인생 40년을 1년 동안 압축해서 살아보는 한 가지 방식이겠다.

그게 좀 지겨우신 분이라면, 새로 나온 입문서 <사드>( 김영사, 2005)로 워밍업을 하신 다음에 <소둠 120일>(고도, 2000)로 빠지시거나 '규방'(<규방철학>)에 묻히시면 되겠다. 요컨대, '맑고 순수한 영혼' 아미엘과 함께 '타락한 영혼' 사드를! 이게 내가 특별히 알려드리는바, 2006년을 또 '갉아먹는' 두 가지 비법이다. 아미엘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사드에 대해서는 간간이 '보고'를 드릴지도 모르겠다. 소돔에서?..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itty 2006-01-06 01:20   좋아요 0 | URL
건축은 잘 아는 분야라고 할 수 없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건축가에요. 스타.라는 말이 어울리는 건축가라고 할까요.
좋은 책 소개받고 갑니다 ^^

로즈마리 2006-01-06 02:15   좋아요 0 | URL
퍼갈게요..^^

Tamino 2006-01-06 03:29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책을 좋아한다면 로자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로그인 2006-01-06 08:2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잘 읽고 갑니다.

이네파벨 2006-01-06 18:54   좋아요 0 | URL
멋집니다.

로쟈 2006-01-07 19:18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