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편은 아니지만 이맘 때면 환절기 알레르기로 통과의례를 치른다. 계절옷이 바뀌듯이 몸도 바뀐 계절에 적응하는 과정일 터이다. 몸과 마음이 같이 가는 거라면 마음도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독서의 레퍼토리도 좀 바뀌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1. 문학예술

 

마치 '10월 맞이'라도 하는 것처럼 새롭게 개정판으로 출간된 김연수의 소설 세 권을 우선 고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첫 소설집 <스무살>(문학동네, 2015).

1994년 등단한 이후 21년 동안 8권의 장편소설과 5권의 소설집을 펴낸 이가 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1년 반에 한 권꼴로 작품을 발표해온 셈이다. 이를 더 잘게 쪼갠다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다는 얘기일 테다. 오직 '쓴다'라는 동사로만 자신을 증명해온 작가, 바로 김연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의 소설세계를 갱신해온 작가 김연수, 지금의 그를 예감케 하는 그의 첫 소설집 <스무 살>을 마침내 15년 만에 다시 펴낸다. 이번 개정판은 단순히 초판의 몇몇 오류를 바로잡고 차례를 새로이 정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문예지를 통해 발표했으나 단행본에는 묶이지 않았던 '사랑이여, 영원하라!'와 세상에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미발표작 '두려움의 기원'을 수록해, 김연수의 첫 소설집이 재발간되기를 오래도록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일단은 애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지만, 스무살 젊은 독자들과의 만남도 의미가 있겠다. 젊은 독자들에겐 15년의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궁금하다.  

 

 

예술분야의 책으론 '예술가로 살아가기'를 다룬 책 세 권을 골랐다. <예술가의 항해술>(유어마인드, 2015)는 인터뷰집. "영국의 문예지 <화이트 리뷰(The White Review)>에 수록된 문답을 새롭게 엮은 책이다." 아직 역사가 짧은 잡지의 인터뷰 선집으로 이렇게 묶인 건 세계 최초라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친다>(창비, 2015)의 저자 리베카 솔닛, <시린 아픔>(소담, 2015)의 저자 소피 칼 등과의 인터뷰도 수록돼 있다.

 

에릭 메이젤의 <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심플라이프, 2015)는 '창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민 해결 프로젝트'가 부제인 책. "20년 넘게 전세계 창작자들을 상담, 코칭해온 에릭 메이젤이 작가 지망생, 글작가, 화가, 디자이너, 연출가, 뮤지션 등 창작자 25명과 주고받은 메일함을 과감하게 공개하고 2주간의 상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기록했다." 아드리안 아웃로우가 엮은 <예술가로 살아가기>(블루베리, 2015)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선배 예술가 40인이 자기만의 밥벌이 방식과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방법을 솔직하게 들려주는 에세이다."

 

 

2. 인문학

 

인문분야에서는 '민음 생각'이라는 시리즈에 눈길이 간다. 첫 네 권이 출간됐는데, <설득의 정치><그리스의 위대한 연설><볼온한 철학사전><음악의 시학> 등이 그 타이틀이다. 일단 그리스 수사학의 네 거장의 연설을 담은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과 볼테르의 <불온한 철학사전>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싶다.

 

 

역사 쪽으로는 영화 <사도>와 관련한 책들을 고른다. 정작 영화는 다음주에나 보게 될 듯하지만(아이의 중간시험 때문에 관람이 미뤄졌다) 책으로 만나는 건 언제든 가능하다.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문학동네, 2012)과 이덕일의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역사의아침, 2012)는 이 왕조의 비극이자 부자간 비극을 첨예하게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다. <사도>(휴먼큐브, 2015)는 영화 서플먼트 격의 책. 그밖에도 영화의 흥행과 맞물려 몇 권의 책이 더 출간돼 있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쪽으로는 소셜미디어와 해킹의 양면성을 다룬 책들을 골랐다. 수재나 플로렌스의 <페이스북 심리학>(책세상, 2015)은 "소셜미디어의 심리적 영향을 연구.분석한 디지털 시대를 위한 새로운 심리 치유서". 저자가 "지난 3년 동안 전 연령대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을 인터뷰하고, 수집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페이스북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정보기술 분야의 책을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에이콘출판에서 '해킹의 양날 세트'로 묶은 두 권의 책도 흥미를 끈다. 앤디 그린버그의 <내부 고발자들, 위험한 폭로>(에이콘출판, 2015)와 케빈 폴슨의 <킹핀>(에이콘출판, 2015)이다. <킹핀>은 '거대한 사이버 금융 범죄 조직의 민낯'을 다룬 책이고, <내부 고발자들>은 부제대로 '위키리크스와 사이퍼펑크, 해킹과 암호화 기술로 세상의 정보를 가로챈 이들'을 탐사한 책이다. "사회 투명성의 혁명에 대한 이야기다. 위험 속에서 비밀을 폭로한 이들이 등장한다. 투명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비밀을 지켜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는 추천사가 눈에 띈다.

 

 

4. 과학

 

과학 분야에서는 유전자(게놈) 관련서들을 고른다. 샤론 모알렘의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김영사, 2015)와 네사 캐리의 <유전자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해나무, 2015)는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책이고, 거기에다 스반테 페보의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부키, 2015)를 추가한다. "고대 DNA를 연구해 인간의 본질과 인류의 기원을 탐험하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로 "1980년대 초 이집트 미라의 DNA 해독부터 2010년 네안데르탈인 핵 게놈과 데비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까지 세계적인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의 고대 DNA 연구 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5. 서점/도서관

 

책읽기/글쓰기 분야를 이달에는 '서점/도서관'으로 바꾼다. 동네서점과 동네도서관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넣기 위해서다. 백창화, 김병록의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남해의봄날, 2015)는 동네서점 순례기로 이미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책. 페트라 하르틀리프의 <어느날 서점주인이 되었습니다>(솔빛길, 2015)는 오스트리아 빈의 동네책방 이야기다. 이소이 요시미쓰의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펄북스, 2015)는 "‘동네도서관 운동’으로 일본 전역에 희망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책을 사랑했던 죽은 아내를 위해 자신의 집을 통째로 동네도서관으로 만든 남편 이야기, 오랜 시간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를 위해 병원 일부를 동네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한 의사 이야기, 대지진으로 도서관도 서점도 학교도 사라진 곳에 숲을 만들고 책을 모아 재해를 극복하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숲도서관 이야기, 조용한 공공도서관을 열띤 토론을 벌이는 ‘아고라’로 탈바꿈시킨 이야기, 낡고 노후화 되어 문을 닫게 된 지역도서관을 땀과 눈물로 되살려낸 두 자매 이야기 등 가슴 뭉클한 인간 드라마가 담겨있다.

15. 10. 04.

 

 

P.S. '10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D.H.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유문화사, 2014)을 고른다. 이전에 강의에서 로렌스의 작품들을 다룰 때에는 번역본이 없어서 빼놓았던 작품이었다. <연애하는 여인들>(부북스, 2015)까지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왔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문학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문학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이 이 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어슐라와 구드룬 자매가 보이는 페미니즘적인 시각 때문이다. 소설 속의 두 여인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기대보다는 남자에 대한 불신과 결혼에 대한 불안을 더 크게 보인다. 결혼은 어쩔 수 없이 한번쯤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경험일지도 모르고, 그나마 괜찮은 남자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며 불안한 속내를 웃음으로 감추는 이들 자매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는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소개대로 오스틴의 소설들과 대조해서 읽어봐도 좋겠다(안 그래도 최근에 <이성과 감성>과 <오만과 편견> 두 작품을 강의에서 읽었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10-11월에 진행하는 '문학속의 철학' 강의에서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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