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에서 발간하는 '다솜이 친구'(176호)에 실은 '감각의 도서관' 꼭지를 옮겨놓는다. 같은 테마를 다루는 신간과 고전을 한 권씩 묶어서 다루는 꼭지인데, 8월호에서는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한겨레출판, 2015)와 백두현의 <음식디미방 주해>(글누림, 2006)를 비교했다. 찾아보니 안동 장씨의 <음식디미방>은 다른 판본으로도 나와 있다.

 

 

 

다솜이 친구(15년 8월호) 애정을 담은 음식 이야기

 

각종 요리 프로그램이 TV에 범람하고 있다. 유명 셰프가 연예인만큼 인기를 끌고, 새로운 레시피가 뉴스거리가 되는 시대다. 아마도 먹는 일에 대한 우리의 관심만큼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듯싶다. 이달에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두 권의 요리책을 읽어보기로 한다. 공통적인 건 어머니가 딸에게 주는 레시피라는 점이다. 


먼저 공지영 작가의 에세이 <딸에게 주는 레시피>(한겨레출판)는 딸에게 건네는 엄마의 조언을 스물일곱 가지 레시피에 함께 담았다. ‘자존심이 깎이는 날 먹는 안심 스테이크’나 ‘세상이 개떡같이 보일 대 먹는 콩나물해장국’ 같은 사례가 보여주듯 상황별 레시피도 겸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날’에 해보자고 저자가 제안하는 레시피는 시금치 샐러드다. 필요한 재료는 싱싱하고 예쁜 시금치 한 단과 약간의 올리브유, 그리고 파르메산 치즈 가루가 전부다.


조리법도 간단하다. 시금치를 깨끗이 씻어 약간 큰 접시에 담고서는 한 입에 먹기 좋을 만큼 뜯어서 편다. 올리브유를 그 위에 살살 뿌린다. 그리고 치즈 가루를 ‘성질대로’ 뿌린다. 끝. 너무 간단해서 5분도 걸리지 않을 요리인데, 그냥 먹어도 좋고 손님 초대용 전채 요리로도 좋다고. 거기에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더 좋다. 한결 기분이 나아질 거라는 게 엄마의 장담이다. “예쁘게 올려놓은 자연의 산물인 샐러드의 고운 빛이 결코 너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그냥 출출한 휴일 낮이나 잠 안 오는 밤에는 김치비빔국수가 제격이다. 작가가 국숫집을 차릴까 궁리하게도 만들었다는 이 요리의 레시피도 간단하다. 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담가 씻은 다음에 2인분 기준으로, 송송 썰어놓은 김치와 간장 두 숟가락, 설탕 한두 숟가락, 참기름과 깨를 대충 부어 섞으면 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약간 더 달달하게 무쳐서 먹으면 된다. 비빔국수를 먹고서 엄마와 딸이 마주앉아 나누는 대화는 변하지 않는 남자들에 대한 험담이어도 좋겠다. “남자는 변하지 않으며 변할 생각도 없다. 더더군다나 여자에 의해 변하고 싶은 마음을 먹느니 고릴라들과 동거하는 것을 배우러 정글로 들어갈 거라는 거다.”


뜻밖이지만 우리 고전 가운데서도 이런 레시피가 있다. 17세기 중엽 안동 장씨가 말년에 저술한 음식 조리서 <음식디미방>이 그것이다. 백두현의 <음식디미방 주해>(글누림)에 따르면, 연대가 확실한 한글조리서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17세기 중엽에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먹었는지 식생활의 실상을 잘 알려주는 문헌”이다. ‘디미’란 한자로 ‘지미(知味)’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에 따라 풀면 ‘음식디미방’은 ‘좋은 음식을 내는 방문(方文)’이란 뜻이다. 좋은 음식을 만들고 좋은 맛을 내게 하는 총 146가지의 조리법이 설명돼 있다.


이 조리법은 크게 세 부류로 분류돼 있는데, 첫째가 면병류(麪餠類), 둘째가 어육류(魚肉類), 그리고 셋째가 주류(酒類) 및 초류(醋類)이다. 이 가운데 몇 가지 레시피를 따라가 보면, 먼저 메밀로 군만두를 만드는 ‘만두법’ 항목의 기술은 이렇다. 메밀가루를 율무죽까지 쑤어서 반죽한 다음에 개암알 크기만큼씩 떼어서 빚으면 되는데, 거기에 들어갈 만두소는 무를 무르게 삶아 다지고, 말리거나 익히지 않은 꿩고기의 연한 살을 다져 기름간장에 볶은 다음에 잣과 후주 가루를 양념하여 만든다. 꿩고기가 없을 때는 쇠고기의 힘줄 없는 살을 간장물에 넣은 기름에 익혀서 다져 넣어도 좋다고 한다. 생선전을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하게 돼 있는데, 살집 많은 숭어나 아무 고기라도 가시 없게 저민 다음에 이것을 기름장에 밀가루를 입혀서 기름에 지져서 쓰라는 게 저자의 방문, 곧 레시피다.


책의 말미에는 장씨 부인이 딸들에게 이르는 당부의 말이 붙어 있다. “이 책을 이렇게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여라.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 가되 이 책을 가져 갈 생각이랑 절대로 내지 말아라.” 그렇게 귀한 책이 잘 보존돼 오늘날의 독자도 편하게 읽어볼 수 있게 되었으니 저자가 크게 기뻐할 일이다.

 

15. 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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