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프레시안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과학 수다 1,2>(사이언스북스, 2015)에 대한 서평을 제안받고 쓴 것인데, 놓쳤으면 아까울 뻔했던 책이다. '수다'의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결코 만만한 수준의 책이 아니어서 반갑고 다행스럽다.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프레시안(15. 07. 23) "아뿔싸! 이런 경이로운 수다를 놓칠 뻔했다"

 

서평가라는 직함으로 주로 서평을 써오고 있지만 오늘은 예외다. <과학수다 1, 2>(사이언스북스 펴냄)를 다루게 됐으니 이건 서평이 아니라 '수다평'이라고 해야 할 듯싶어서다.

여느 주부들과 달리 수다가 '주특기' 혹은 '주요 관심사'가 아니어서 무심코 지나쳤던 책인데, <프레시안>의 서평 제안을 받고서야 손에 들었다. 그것도 중학생인 딸아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다시 들고 와서. 사실은 아이의 과학 공부에 도움이 되겠거니 하고 넘겼던 책이다.

하지만, 아뿔싸! 첫 수다를 읽으면서부터 바로 오판을 자인해야 했다. 시작부터 우주의 '암흑 에너지'를 다루는데, 이걸 아이에게 읽히려고 했다는 말인가! (물론 아이가 이 책을 손에 든 흔적은 전혀 없기에 그렇게 염려할 일은 아니었다.) 자세를 바로 하고 '경청 모드'로 '하이 레벨'의 과학 수다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과학 담당 기자가 한 명 합석하기는 했지만 이 과학 수다는 '과학자들의 수다'다. 전공 칸막이가 중요한 건 아니더라도 인문학 전공자인 나 같은 독자가 읽기에는 어려운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교양 과학서를 좀 읽은 축에 들더라도 말이다). 아니 책을 읽기 전 지레 짐작이 그랬다. 

하지만 두 가지를 미리 알고 책을 읽으면 부담을 덜 수 있을 듯싶다. 한 가지는 '수다'에 값할 만큼 편하면서 기대 밖으로 재미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당사자인 과학자들도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맞먹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점에서 무얼 모르는지도 모르는 일반 독자와는 무지의 레벨이 다르니까. "물리학자이긴 하지만 저도 우주론은 깊이 있게 알지 못해요"라는 발언을 책의 서두에서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그러면,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재밌는가.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까지도 까발려주고 있어서다. 우주론에 관한 수다가 좋은 사례다. 현재까지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이렇게 정리된다고 한다. 

"우주의 나이는 약 137억 년이다.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 가속 팽창의 원인은 암흑 에너지 때문이다. 암흑 에너지는 우주 전체의 72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원자로 이루어진 보통의 물질은 4.6퍼센트이다. 그리고 우주의 약 23.3퍼센트는 원자가 아닌, 그 정체를 아직 모르는 무거운 암흑 물질이다." (28쪽)

이른바 빅뱅 이후에 우주가 계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고, 그것도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는 표준 모델이다. 이것이 현재 우주를 이해하는 주류의 방식인데, 이를 달리 '조화 우주론' 내지 '정밀 우주론'이라고 부른단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도 어디서 들어본 바는 있으니 우주론에 대한 상식으로는 나쁘지 않다. 한데 중요한 것은 이 정도 아는 걸로 충분한가라는 점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수다에 참석한 천문학자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암흑 에너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암흑 물질의 정체는 또 무엇인지 우리가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정밀 우주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속 시원하게 일갈한다. "심지어 우주 전체를 통틀어서 우리가 관찰이 가능한 빛을 내는 물질도 0.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덧붙인다. 원자로 이루어진 보통의 물질 4.6퍼센트 중에서 0.5퍼센트만 알고 나머지 99.5퍼센트는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현 수준이다. 

이것만으로도 한 수 배웠다는 느낌인데, '과학 수다'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암흑 에너지나 암흑 물질에 대한 믿음을 갖게끔 한 기본적인 가정에 대해서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중력에 대한 가정이다. "중력이 첫째, 과거·현재·미래에 상관없이, 둘째, 우주 전체에 작용한다"는 것이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다. 

이 중력 이론을 계속 유지하려다 보니 은하 규모에서도 강한 중력의 원인으로서 암흑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는 가정을 추가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은하 규모의 우주에서 중력 이론이 맞는지 한 번도 검증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중력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믿어왔는데, 그것이 검증된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믿음'이라고 하니까 상당히 충격적이다(독서에서는 이런 충격이 곧 재미를 뜻한다). 

물론 현재까지도 암흑 물질은 그 정체를 찾기만 하면 노벨상 감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규명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낙관적인 견해가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우주 가속의 팽창 주역으로 지목되는 암흑 에너지는 과학자들 사이의 상당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수께끼다. 다시 천문학자의 견해다.

"정밀 우주론이라는 모형에서조차 우주 구성 요소의 99.5퍼센트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에요. 우리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라는 거대한 수수께끼가 앞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고요.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요?" (37쪽) 

최근 뉴스로 지난 2006년 1월에 발사된 미국의 태양계 경계 탐사선 뉴호라이즌 호가 9년 6개월의 비행 끝에 명왕성의 최근 접점을 통과하고 현재는 얼음과 소행성들로 구성된 태양계의 끝자락 '카이퍼 벨트'와 '오르트 구름대'를 탐사하기 위해 전진 중이라 한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주 탐사선이 태양계 끝에 도달한다는 건 그 자체로 과학계를 흥분시킬 만한 사건이지만 동시에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거대 이론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손길은 이제 겨우 태양계를 더듬더듬 만져본 수준이기 때문이다. 

태양계 끝자락이라는 오르트 구름대만 하더라도 <과학 수다>에 따르면 "지름이 5만 광년 혹은 그 이상 되는 거대한 구"이다. 근지구 혜성들의 상당수가 이 오르트 구름대에서 온다고 하는데, 지름만 5만 광년이라고 하면 그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구절의 순서를 바꿔서 읽고 싶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과학의 많은 발견과 성과는 생각하는 갈대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지만, 그렇게 팽창한 지식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이 또한 <과학 수다>의 독후감이다. 무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얼 모르는지 아는 것이다. 

'암흑 에너지'란 한 가지 주제만으로 <과학 수다> 전체의 재미를 다 전달하기엔 부족하지만, 이 수다의 수준과 유익함에 대한 맛보기로서는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이런 수다가 15가지 주제에 걸쳐서 펼쳐진다는 사실이 얼마나 흥미로우면서 다행스러울지 짐작하는 데도. 

바라건대 과학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성장하여 아이가 <과학 수다>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그러자면 <과학 콘서트>를 먼저 읽게 해야 할까?). 어쩌면 <과학 수다>의 독서율이 우리 과학 교양의 지표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15.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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