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명사'란 말로 내가 지칭하고자 하는 것은 번역서들에 등장하는 인명과 작품명 등이다. 독자에게 생소한 고유명사라면 역자가 '특권'을 가지고 몇 가지 원칙(가령, 원음 표기나 교육부의 외국어 표기안 등)에 따라 '처음'으로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관례(상식)에 따르거나 그에 준하여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 보며, 그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타당한 이유를 명시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가령, 왜 '베르그송' 대신에 '베르그손'이라 표기하는지 등). 아무런 이유 없이, 역자의 독단에 따라 '임의로' 표기하는 것은, 그리하여 '오역'을 만드는 것은 착오가 아니라면 대개 무지의 결과이거나 오만의 소산이다. 그걸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미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드는 것은 낮에 도서관에서 유진 홀랜드의 <프로이트의 거짓말>(접힘과펼침, 2004)이라는 '괴이한' 책을 잠시 들춰보다가(번역서의 제목 자체가 '거짓말'이다) 찾아보기에서 '루칵스'란 인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루칵스? 눈치빠른 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 텐데, 헝가리 출신의 독일 비평가 'Lukacs(루카치)'를 그렇게 표기한 것. 가뜩이나 역자는 '들뢰즈'를 '들루즈'로 '가타리'를 '과타리'로 표기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성(singularity!)을 과시하고 있는데, '루칵스'란 표기를 보니까 그 독자성이 무지/오만과 먼 거리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겠다. 본문의 내용이야 어떠하든 이 정도면 책을 집어들었다가 다시 놓을 수밖에.

사실 고유명사를 제대로 옮겨주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느 정도 지명도 있는 저자/작가들의 이름을 잘못 표기해주는 것은, 번역의 수준과 무관하더라도, 역자의 '무지'를 에누리 없이 드러내주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그런 '사소한' 오역으로 인상을 구긴다면, 억울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만한 '지명도'의 저자/작가명, 혹은 작품명이라면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든지 쉽게 검색하고 교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러한 무지와 오만을 거드는 것은 불찰과 다소간의 게으름이다. 가령, 리처드 커니의 <이방인, 신, 괴물>(개마고원, 2004)처럼 나름대로 잘 읽히는 번역서에서 프랑스의 비평가 '블랑쇼(Maurice Blanchot)'를 '블랑코'(40쪽)로 읽어주게 되면, 역자가 적어도 문학비평쪽으론 감감하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것이므로 유쾌하지 않은 일이겠다(현대미학사에서 나온 다른 책의 경우지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를 '바데스'로 옮기는 것도 마찬가지의 무지를 폭로한다).

비교적 양호한 번역서인 콜브룩의 <질 들뢰즈>(태학사, 2004)에서도 고유명사 표기에 대한 무신경함은  역자의 체면을 깎아먹는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를 초지일관 '보들리야르'라고 옮겨준 것은 착각에 의한 거라고 쳐도,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을 <위대한 기대>로 옮기게 되면 무지와 함께 무교양이 한꺼번에 드러나버린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혹은 <지하로부터의 수기>로 번역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지하로부터 온 기록들(Notes from Underground)>이라고 영역본 제목을 직역하게 되면, '들뢰즈와 문학'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는 저자 콜브룩과 역자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조금만 검색해 보더라도 그런 정도는 충분히 '아는 체' 할 수는 있는 일인데, 역자가 고집을 부린 것은 (反들뢰즈적이게도) 문학을 너무 무시한 처사가 아닐까?

 

 

 

 

그런 경우에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나오는 단편 <고통스러운 경우(A painful Case)>가 한 부인이 기차에 치여죽은 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참혹한 사건>(김종건 역)이라고 옮겨져야 한다든가, 역자가 '레이몽 카버(Ramond Caver)'의 <짧은 컷들(Short Cuts)>이라고 옮긴 작품이 '레이몬드 카버'의 <숏컷>(집사재, 1996)으로 소설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로버트 알트만의 '걸작' <숏컷>이라는 사실은 '초과적인' 지식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쓴, 노벨상 수상작가 쿳시(J. M. Coetzee)의 <포(Foe)>(책세상, 2003)를 역자가 '코에체의 <적>'으로 옮긴 것도 이해할 만하지만, 좋은 번역서를 내놓고서 굳이 이런 류의 사소한 실수들로 '무식하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는지?

물론 실수라고 하기엔 좀 불성실한 대목도 있긴 한데, 카프카의 <단식 광대(The Hunger Artist>를 '굶주린 예술가'(74쪽)와 '배고픈 예술가'(227쪽)로 다르게 번역해놓고 찾아보기에서도 각기 다른 항목으로 설정한 것은 좀 희극적이다. 이 모두가 피할 수 있었던 오류들이라는 건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참고로, 콜브룩이 164쪽에 '돈 데릴로의 위대한 포스트모던 소설 <하얀 소음>'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작품은 얼마전에 국역본이 나왔다. 돈 드릴로, <화이트 노이즈>(창비))

하여간에 이런 '사소한'(하지만, 무시하면 창피한) 오류들은 거의 모든 번역서들에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동구권이나 동남아 등 우리에게 표기가 생소한 지역 언어들의 표기에서가 아니라면(이런 건 좀 어렵다. 가령, 흔히 '무카로프스키'로 불리는 체코의 미학이론가의 바른 표기는 '무카르좁스키'이며, '벨라 발라즈'로 표기되는 헝가리 출신의 영화이론가는 '벨라 발라슈'이다, 등등).  웬만큼은 상식과 관례에 따라 착오/오류를 피해볼 수 있다. 이젠 피해도 좋을 러시아어 인명표기의 오류를 몇 가지 지적하면서 잔소리 같은 이 글을 마친다(나의 결론은 굳이 쓸데없이/억울하게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자는 것이다. 무릇 아는 체하는 것은 지식인의 도리이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민음사, 2004)에 고골(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등장하는 몇 안되는 러시아인이면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러시아 철학자 '체스토프(L. Chestov)의 바른 표기는 '셰스토프'이다. 그의 책으론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니체: 비극의 철학>(현대사상사, 1987)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불어로 'Chestov'를 '체스토프'라고 읽는가? 그럴 법하지 않으므로, 아마도 '체스토프'는 '상상해본 러시아어'인 듯하다). 물론 <차이와 반복>은 훌륭한 번역서이므로 이런 옥의 티가 개정판에서는 교정되기를 기대한다.

독일의 러시아문학 애호가인 엘스베트 볼프하임 여사의 <마야코프스키와 에이젠슈테인>(아카넷, 2005)은 읽을 만한 저작이자 듀오그라피의 한 전범이다. 이 책을 최근에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역시나 고유명사 표기는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다. 좀 낯선 인명으로 1920년대 연극이론가이자 극작가로 '추츠학(Chuzhak)'이라고 옮겨진 이는 '추작'(니콜라이 추작)이라고 표기해야 옳다('추츠학'은 독어식으로 읽어준 것인가?).

올랜도 파이지스의 훌륭한 러시아 문화사 <나타샤 댄스>(이카루스미디어, 2005)도 양호한 번역서인데, 유감스럽게도 러시아사의 가장 '위대한' 황제 '표트르 대제'를 모두 영어식으로 '피터 대제(Peter the Great)'라고 표기했다(영어의 '알렉산더'는 전부 러시아어로 '알렉산드르'이다). '피터'란 표현이 입에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엔 '예카테리나 2세'도 '캐더린 2세'라고 표기해야 하며, '모스크바'도 '모스코우'라고 읽어줘야 일관적인 것이 된다. 이 또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거나 러시아 전공자의 교정을 거쳤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오류들이다...

05.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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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fire 2005-09-29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더 놀란 건 돈 드릴리오의 [화이트 노이즈]가 번역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이제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를 기대해도 되는 걸까요?) 그래도 현재까지 가장 재미있었던(안타깝다기보다는 그냥 알고 깔깔 웃었던) 고유명사 오기는 보르헤스 전집 중 하나에 실렸던 '두레르'가 아니었을까 싶네요.(화가 중 한 명입니다)
Balasz가 '발라즈'로 표기되고 있는 건 오래도록 떠돌아서 저로서도 사실 약간은 낯섭니다. 이런 사례들이 영화 쪽에도 종종 등장합니다. Jean Epstein의 경우 국내에는 불어식 발음으로 '엡스탱'으로 거의 쓰지만 Epstein 본인은 유태계였고 생전에 자신을의 이름을'엡슈타인'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딸기 2005-09-30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칵스...는 심하군요. 저도 아는 이름을...

딸기 2005-09-30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하면 '조지 루칵스'도 될 수 있겠군요 ^^

로쟈 2005-09-30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palefire님/ 지적하신 대로, 고유명사 표기는 사실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쿳시'만 하더라도 처음 보면 '코에체' 정도 거든요. 역자가 저자에게 문의한 결과 '쿳시'라고 읽어달랬답니다. 물론 '읽는 대로' 표기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철자도 발음만큼 중요합니다), 인명의 경우 존중해줄 필요는 있는 것이죠. 스트롱베리님/ 예, '루칵스'는 좀 심한 경우죠. 제가 이런 글까지 쓰게 만들었으니...

마냐 2005-10-01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칵스. 지하로부터의 노트....모두 기절할 노릇임다. 어이없다 못해 웃음이 나오는.
근데, 로쟈님...국제뉴스 정리하다보면, 고유명사 표기 무지 어려버요. 동구권 이름의 경우도 여전히 어렵구, 포르투갈어도 어렵죠. 음음.

로쟈 2005-10-03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어려운 거 맞습니다. 근데, 우리에게 이미 소개돼 있는 좀 이름있는 작가/작품들 정도는 '알아서' 써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죠. 안 그래도 어려운데...

숨은아이 2005-10-0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서재에는 처음 옵니다. 자료로 간직하고 싶어 퍼갑니다. 꾸벅.

수퍼겜보이 2005-10-08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옷. 루카치 스펠링이 그런 것이었군요. 저도 퍼갑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