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93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슬라보예 지젝의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글항아리, 2015)을 읽고 적은 것이다. 서구의 이슬람 만평 때문에 불거진 사태는 지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처음이 아닌데, 이에 대해서는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도 참고할 수 있다. 또한 시사적 이슈에 대한 개입과 분석으로는 <멈춰라 생각하라>(와이즈베리, 2012)에 이어지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시사IN(15. 03. 28) 테러가 아닌 '반응'을 겨누다

 

이슬람을 조롱한 만평을 실은 프랑스의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사건과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의 연이은 만행으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출판계에 높다. 중동의 근현대사와 IS의 정체를 다룬 책들이 부쩍 늘어났는데, 그 가운데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글항아리)을 손에 들었다. 수월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이슬람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은데다 이슬람교에 대한 지젝 특유의 정신분석적 해석이 만만한 독서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떤 문제를 생각하게끔 자극하는 것이 철학의 한 역할이라면 제 몫은 해주는 책이다(분량으로는 팸플릿이라고 해야겠지만).


원제가 ‘이슬람과 모더니티’이고 두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슬람교는 생활이다’가 제목인 1장은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계기로 쓰인 것이고, ‘이슬람교의 기록보관소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2장은 사건 이전에 쓰인 글로 이슬람교가 같은 유일신교인 유대교나 기독교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비교해서 분석한다. 일단 그의 반응은 탄식이다. “어떻게 하다 이 지경이 되었나?”


그의 탄식이 겨냥하는 것은 테러라기보다는 테러에 대한 반응이다.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정죄해야 하지만, ‘나도 샤를리 에브도다’라고 외치며 테러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또 다른 구호는 지젝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나도 경찰이다’. 즉 “테러의 여파로 프랑스 경찰은 이제 칭찬을 듣고 시민을 엄마처럼 보호한다며 환대받는다.” 프랑스만큼 경찰이 욕설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도 없건만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된 것이다. 이렇듯 프랑스 국민과 군대가 하나가 된 ‘환상적인 장면’이 “결국 이데올로기가 승리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젝은 일갈한다. 이슬람 테러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게 되자 프랑스 사회 내부의 모든 적대관계는 단번에 중단되고 은폐되었다. 이데올로기의 전형적인 기능이다.


하지만 지젝은 서구 자유주의와 이슬람의 근본주의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대립적인지 의심한다. 근본주의를 신봉한다지만 테러리스트들은 정말로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을까? 진짜 근본주의자들은 다른 불신자들이 사는 방식에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에 견주면 의문스럽다. 불신자들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는 근본주의자라면 정작 그 자신에게 진정한 확신이 없다는 걸 말해줄 따름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괴롭히는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확신이 그들에겐 부족하다.


한편 자유주의는 어떤가. 지젝은 자유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지만 그것을 근본주의자들의 공격에 맞서 지켜낼 만큼 강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본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의 이러한 결함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잘못된 반응이긴 하지만 자유주의의 결함이 갱신되지 않는다면 근본주의는 끊임없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서구 자유주의의 결함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낳는 온상이라면, 이 둘 사이의 대립은 가짜 대립이다. 서로 견제하고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서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해법은 무엇일까. 지젝의 제안은 급진 좌파의 수혈이다. 자유주의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핵심 유산을 유지하려면 갱신된 좌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테러 사건 이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샤를리 에브도의 칼럼니스트 파트릭 펠루를 위로하며 껴안았을 때, 올랑드의 오른쪽 소매에 새똥이 떨어졌다고 한다. 샤를리 에브도가 자기들의 풍자정신에 충실했다면 바로 이런 쇼를 비웃는 커다란 풍자화를 1면에 실었을 거라고 지젝은 말한다. 그런 것이야말로 자유주의적 풍자를 구제할 수 있는 급진 좌파적 풍자가 아니었을까.

 

15. 03. 27.

 

P.S. 번역에서는 지젝이 겨냥하는 말이 지젝의 말처럼 옮겨져 있기도 한데, 13쪽에서 괄호에 묶인 "물론 샤를리 에브도는 은밀하게 비꼰다고 했지만 지나치게 화를 돋구었고 이슬람교를 무시했다"는 말은 지젝의 견해가 아니라 지젝이 비판하는 견해다. 눈에 띄는 오타도 지적하자면, 87쪽 "오히려 근동에서 여자는 어머니 여신으로 높아지며"에서 '근동'은 '극동'이 오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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