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제주도에서 강의가 있기에 '이주의 저자'를 미리 당겨서 고른다. 국내 저자 3인의 산문집을 선정의 빌미로 삼는다. 먼저 SF작가이자 영화평론가이자 정체불명의 저자, 듀나의 에세이가 나왔다. <가능한 꿈의 공간들>(씨네21북스, 2015). '이영수'란 이름과 병기돼 있는데, 과문한 탓에 듀나의 본명이 이영수라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듀나가 개인이 아니라 둘 이상의 집단이란 설도 있지 않았나?).

 

씨네21북스에서 출간한 <가능한 꿈의 공간들>은 듀나가 2000년대 중반부터 매체에 기고한 글과 책을 위해 새로 쓴 글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사회비평과 영화비평 사이를 오가며 예술, 대중문화, 국내외 이슈, 과학, 장르문학, 쇼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다. 또한 유신 정권하에 보낸 어린 시절과 80년대 군사정권의 일상, PC통신에서 영화로 교감하던 시절의 추억을 통해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 사람이건, 두 사람이건, 혹은 몇 사람이건 간에 듀나는 듀나다. 산문집은 픽션과 달리 아무래도 '세대'를 드러낼 수밖에 없어서 대략 저자의 정체성에 대해 어림해볼 수 있으리라. 2000년대 중반부면 10년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얘기일 텐데, 그건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여행이 될 수 있겠다.

 

 

문학평론가이자 '여행가' 정여울의 신작 산문집도 나왔다. <그림자 여행>(추수밭, 2015). <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 2015) 개정판도 최근에 같이 나왔고. 산문집 혹은 에세이로는 <잘 있지 말아요>(알에치코리아, 2013)에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무엇이 그림자 여행인가.

이 책 <그림자 여행>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삶과 사람,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정여울 저자의 에세이 50편과 그 풍경을 담은 50장의 사진, 그 속에서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우리 모두의 그림자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쇼 비즈니스와 극 예술의 이면에 대한 탐구, 너무 익숙해서 지나쳐버리는 부조리에 대한 고찰, 영화와 영화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사라져가는 가치와 아득한 꿈의 세계에 대한 몽상까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뭐 이런 소개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직접 '여행'에 동참해보는 수밖에.

 

 

그리고 시인 신해욱의 산문집도 나왔다. <일인용 책>(봄날의책, 2015). 시인의 일상을 담았다고 하는데(아니면 무얼 담겠는가), 눈에 띄는 건 특이한 형식이다.

시인은 일상을 '어떻게' 담아낼까. 시인은 자신에게 감지된 그 파동이, 가능하면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산문을 쓴다. 가령 똑같은 피사체를 찍은 사진도 프레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효과가 아주 다르다. 자신이 접한 것의 감흥이 글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서도 그 생동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시인은 문장의 순서와 호흡을 많이 손본다. 특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편편의 용적이 적으니 아무래도 미미한 파동 쪽에 집중한 편이다.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뻔한 것들을 붙잡아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형식, 그것이 700자라는 정해진 형식이었다. 700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이야기가 씌어졌을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창조한 셈이다.

아마도 그런 형식적 제약이 산문임에도 시적 긴장감을 부여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시집 말고 산문집으로는 <비성년 열전>(현대문학, 2012)이란 책도 있었길래 오늘 주문해서 받았다. 잡지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에세이 모음이다.

이 글은 인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게 된 성년과,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으되 이제 곧 그렇게 될 대기 중인 이들인 미성년 사이에서 '이미' 그렇게 되지 않은 이들을 열외의 비성년이라고 명명한다.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 곁의 비성년들로 기억될 바틀비, 홀든 콜필드, 카프카 들이다. 작가는 애정을 갖고 그들을 관찰하고 투시하며 그들의 심중의 못다 한 이야기처럼 심도 있게 그려나간다.

흘든 콜필드나 카프카에 대해선 요즘도 자주 강의를 하고 있어서 시인의 생각도 궁금하다. 비성년은 내가 종종 쓰는 표현으로 말하면 어른-아이라고 해도 될까. 성인과 미성년 사이가 비성년이라면, 어른과 아이 사이가 어른-아이다. 바틀비도 그런 형상으로 읽는다는 건 이외이면서 흥미를 끈다. 정신분석의 용어로 상상계와 상징계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를 가리켜 비성년이라고 부른다면, 타당하게도 여겨진다. 물론 확실한 건 읽어봐야 알겠다. 그다지 부담스런 책들이 아니니 편하게, 아주 편하게...

 

15.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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