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끝나고 나니 다시 책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목록이 업데이트 되고 있다는 뜻인데, 오후 일정에 들어가기 전에 '이주의 발견'을 골라놓는다. 루시 워슬리의 <하우스 스캔들>(을유문화사, 2015)이란 책이 눈에 띄어서다. '은밀하고 달콤 살벌한 집의 역사'가 부제인데, 원제는 '벽이 말할 수 있다면'이다.

 

현관에서 화장실까지 집 안으로 들어온 역사. 영국의 주목받는 역사학자이자 BBC 텔레비전 역사 프로그램 진행자 루시 워슬리가 농가에서 궁전까지를 망라하는 집의 역사를 다룬 BBC 인기 텔레비전 4부작 시리즈 '벽이 말할 수 있다면'에 참여하고 내놓은 책이다. 침대의 역사, 속바지, 질병, 성병, 수면의 역사, 침대 살인, 목욕의 몰락과 부활, 화장과 화장실, 욕실의 탄생, 양치질, 하수 설비의 기적, 화장지의 역사, 잡동사니의 역사, 난방과 조명, 누가 청소를 할 것인가, 공손한 미소와 매너, 죽음과 장례식, 요리에 익숙했던 남자들, 부엌의 정체, 악취의 매서운 위력, 냉장고, 소스의 정치적 결과, 힘겨운 설거지 등 가정생활에 얽힌, 때론 낯 뜨겁지만 그만큼 더 매력적인 인간의 생활사를 그려내고 있다. 

기절할 정도로 새롭진 않지만 주제가 꽤 참신하게 여겨진다. 물론 발상보다는 내용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책이긴 한데, BBC 시리즈였다니 그 또한 어느 정도 보증이 되는 듯싶다. 안심하고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까치, 2011)다. 부제는 '사생활의 간략한 역사'이지만, 원제는 '집에서(At Home)'였다. "집 안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삶의 일상적인 것들을 살펴보며 그것에 숨겨진 역사들을 낱낱이 파헤치는 이 책은 그야말로 사생활의 역사에 관한 거의 모든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담고 있다." <하우스 스캔들>과 자웅을 겨뤄볼 수 있지 않을까.

 

 

 

영국 책들에 견줄 만한 프랑스 책들은 좀더 학구적이고 묵직하다. 미셸 페로의 <방의 역사>(글항아리, 2013)와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 등이 엮은 <사생활의 역사>(전5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이 정도 책들이라면 거실 서가를 장식할 권리가 충분하다. 장서용(심지어 장식용)으로라도 꽂아둘 만하다는 것이다. 벽들에게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15.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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