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서 간혹 예기치않은 책들과 만나곤 하는데, 읽고 있는, 혹은 읽어야 하는 책이 많은 틈에도 '고독'이란 제목에 이끌려 꺼내든 책이 리처드 예이츠(1926-1992)의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오퍼스프레스, 2014)이다. 지난 여름 이사 기간에 손에 넣은 뒤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뒤늦게 작가에 대한 뒷조사까지 마치고 절판된 <레볼루셔너리 로드>(노블마인, 2009)를 중고본으로 주문했다. <부활절 퍼레이드>(오퍼스프레스, 2013)는 장바구니에 넣고.

 

 

연보를 보니 2008년에 영화화되기도 한 <레볼루셔너리 로드>(1961)가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다. 전미도서상 후보로까지 올라 그해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샐린저의 <프래니와 주이> 등과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고. 동시대 많은 작가들에게 칭송받았던 만큼(별칭이 '작가들의 작가'다) 문학사에 한 자리 차지하는 게 마땅하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다고 한다. 어떤 작품이었나.

 

미국 교외 주택가에 사는 중산층의 삶을 통해 혁명 정신이 스러진 1950년대 미국의 분위기를 통렬하게 비판한 작품으로, '타임' 선정 100대 영문소설에 선정되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케이트 윈슬렛 주연,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원작소설이다. 케이트 윈슬렛은 이 작품으로 2009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작가 리처드 예이츠는 미국의 건국이념이었던 꿈과 이상, 미국인의 가장 본질적이고 훌륭한 부분이 발현된 정신이 물질을 숭배하는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스러져가는 파국적인 상황을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사는 한 젊은 부부의 삶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가장 주된 이유는 독자들의 외면인데, 생전에 발표한 8권의 장편소설과 한 권의 단편집(이게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이다) 가운데 초판(하드카바) 12,000부가 다 나간 책이 한권도 없다니까 작가로선 꽤나 불운한 편이었다. 대부분이 절판됐으니 독자들로선 작가의 존재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다 1999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도 7년이 지난 뒤에야 스튜어트 오난이란 비평가가 '리처드 예이츠의 잃어버린 세계'란 글을 발표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됐다(비평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다). '불안의 시대의 한 위대한 작가가 어째서 사라져버렸나'가 부제였다.

 

 

지금은 보급판 클래식으로도 다시 다 나와 있으니, 사후의 화려한 재기라 할 만하다. 그래서 한국어판까지 나온 것이겠고(하지만 한국에서는 별로 재미를 못 보고 있는 듯하다). 나로선 근래 1950-60년대 세계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터라 미국문학의 숨은 작가를 만나게 돼 반갑다. 그래서 뒤늦게 '이주의 발견'으로 그 반가움을 적는다. 그의 '열한 가지 고독'을 이참에 천천히, 하나씩 음미해보려고 한다...

 

15.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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