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이브라고 해서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므로(혹은 그럴 나이는 지났으므로) 이번주 시사IN(380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이번주에는 '2014 행복한 책꽂이'도 별책부록으로 포함돼 있으므로 정기구독자가 아닌 분들은 가판에서라도 손에 들어보시길 권한다(올해의 책으로 추천된 책들 가운데 나도 몇 권 챙겼다). 리뷰 거리로 고른건 토머스 캐스카트의 <누구를 구할것인가?>(문학동네, 2014)라는 가벼운 책이다. 하지만 제목대로 무거운 문제를 다룬다. 무거운 문제를 가볍게, 읽을 만하게 다루고 있어서 청소년들에게 권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기 위한 워밍업으로도 좋겠다 싶다.

 

 

 

시사IN(14. 12. 27) '기관사 판결' 어떻게 났을까

 

인문서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폭주하는 전차’라고 말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바로 떠올릴지도 모른다. 정의에 대한 세 가지 접근법으로 다루면서 샌델이 가장 먼저 제시하는 사례가 폭주하는 전차였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폭주하고 있는데, 선로 앞에 다섯 명이 서 있다. 그대로 질주하면 다섯 명이 죽게 되고, 선로의 방향을 튼다면 다른 선로에 있던 한 사람이 죽는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샌델은 물음을 던진다. 다섯 명이 죽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 대신에 한명이 죽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고약한’ 질문이지만 윤리적 딜레마를 토론거리로 삼는 데는 꽤 효과적인 물음이다.

 


샌델의 책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이 사고실험적 질문의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데, 영국의 철학자 필리파 풋이다. 토마스 캐스카트의 <누구를 구할 것인가?>(문학동네)는 필리파 풋이 1967년에 처음 고안한 ‘전차 문제’를 다룬 책이다(원제가 <전차 문제>다). 그게 책 한 권 분량의 얘깃거리까지 낳은 것은 처음 학술지에 발표된 이후 철학자를 포함하여 온갖 분야의 전문학자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가세해 이 문제를 다양하고 변주하고 확장해왔기 때문이다. 아예 ‘전차학’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유행했다.

 

필리파 풋은 문제를 이렇게도 변형시켰다. 만약 의사가 한 사람을 죽여서 혈청을 뽑아내면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해보자. 이것은 최초의 전차 문제와 같은 문제인가, 다른 문제인가? 미국 철학자 주디스 톰슨의 변형 문제는 샌델도 언급하고 있는데, 내가 만약 전차 선로 위 육교에 서 있고 옆에 뚱보가 한 명 있는 상황에서 다섯 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옆에 있는 뚱보를 밀어서 철로로 떨어뜨리는 것은 옳은 일일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가 전혀 흥미롭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상의 상황을 가정한 사고실험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반문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제 현실에서 접하는 문제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기에 사고실험은 두뇌를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현실의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는 데는 무용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반론을 고려하여 <누구를 구할 것인가?>의 저자는 실제로 사고실험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 자체를 책에 담고자 했다. 2012년 10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쳇 팔리가 전차에 치여 사망하고 기관사 대프니 존스가 전차의 방향을 틀어 쳇을 죽게 한 혐의로 기소되어 구형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 출발점이다.


검찰 측에서는 이 사건을 한 대학병원의 외과의사였던 로드니 메이프스 박사가 교통사고의 부상자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상을 입은 한 남자의 장기를 모두 적출해 중상을 입은 환자 다섯 명의 목숨을 살린 사건과 같은 사건으로 간주한다. 메이프스 박사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 결정할 권한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기관사 존스도 고의로 방향을 바꾸어 신처럼 행동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존스가 처했던 상황을, 2003년에 전차의 기관사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바람에 역시나 전차가 계속 달리게 놔두어 다섯 명을 치게 하거나 선로를 틀어서 한 명을 죽게 해야 했던 클래라 머피의 경우와 비교한다. 당시 배심원단은 다수가 머피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과 공방에 이어서 교수와 심리학자의 견해, 주교의 의견서, 그리고 재판장의 설명과 배심원단의 결정까지 책은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면서 정확하게 재판 절차를 따라간다. 이러한 설정과 구성이 흥미로운 것은 철학적 사고실험이 고유명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재구성되면서 문학적인 스토리로 탈바꿈했다는 점이다. ‘전차 문제’가 ‘존스 사건’으로 불릴 때 어떤 문제가 벌어지는지 살펴보는 것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최종 평결은 무엇인가? 그걸 확인하는 건 실제로 책을 읽을 독자의 권리로 남겨놓는다.

 

1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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