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가장 예기치 않은 책은 엘레인 페인스테인의 <뿌쉬낀 평전>(소명출판, 2014)이다. 국문학 전공서적을 주로 내는 출판사에서 영문학 전공자가 러시아 시인의 평전을 번역해서 펴낸 것(저자는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면서 전기 작가다). 원저는 1998년에 나왔으니까 1999년 푸슈킨 탄생 200주년을 겨냥하여 나온 것이었겠다. 여하튼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대 시인의 평전이 희소했던 터여서 출간 사실 자체가 반갑다.

 

 

어느 정도 규모의 평전이라면 미하일 로트만의 <푸시킨>(고려대출판부, 2013)과 현재로선 유일하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로로로 시리즈로 구드룬 치글러의 <푸슈킨>(한길사, 1999)이 번역됐었지만 이미 절판된 지 오래 되었기에(각각 영어, 러시아어, 독어 평전인 셈이군). 각각의 제목은 현재 통용되는 세 가지 방식의 음역을 보여준다. 뿌쉬낀, 푸시킨, 푸슈킨. 내가 주로 쓰는 건 '푸슈킨'이어서 여기서도 푸슈킨으로 통칭한다.

 

 

페인스테인의 책 번역본이 눈에 띄자 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원서를 검색하는 것이었는데(아흐마토바 평전과 츠베타예바 번역 시집도 눈에 띈다), 유감스럽게도 품절된 상태다. 아흐마토바의 평전도 구입한 걸로 봐서 구입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구매리스트에는 포함돼 있지 않아서 나로서도 내가 갖고 있는 책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대학도서관을 이용해보려고 했지만 전국에서 두세 곳밖에 소장하고 있지 않다). 아마존에서 직구하지 않는 이상 현재로선 번역본에 만족하는 수밖에.

 

하지만 통상 그렇듯이 이런 종류의 책이 만족스럽게 번역돼 나오기는 어려운 일이다. 일단 원저의 미주가 다 빠졌다. 가령 "필자가 이 전기를 쓸 당시에는 서구에서 쓰인 뿌쉬낀에 관한 모든 고전적 전기들이 영어권에서는 절판된 상태였다."(4쪽) 같은 문장에 달린 미주를 따라가면 그 고전적 전기들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을 텐데, 번역본은 '냉무'다. 만족스러운 번역이 아니라 말끔한 번역. 사실 출간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어서 이런 트집을 잡는 게 미안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 대로 적을 수밖에 없는 것.

 

 

번역도 마찬가지다. "그가 만일 미하일롭스꼬예로 추방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도 1825년에 '12월 당원들' 친구들과 더불어 상원의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8쪽)는 엉뚱한 번역이 걸려서 원문을 찾아보니(아마존에서 앞부분의 몇 페이지만 미리보기가 된다) "He might well have been on Senate Square with his Decembrisrt friends in 1825 if he had not been exiled to Mikhaylovskoe."를 옮긴 것이다. "그는 만약 미하일롭스코예로 유배당하지 않았다면 1825년에 12월당 친구들과 함께 원로원 광장에 있었을 것이다."로 옮길 수 있다. '원로원 광장'은 데카브리스트(12월당) 봉기가 일어났던 장소이니 푸슈킨도 거사에 가담했을 거란 뜻이다(상원의원이 된다니!).

 

 

한 가지 사례이지만 아주 기본적인 사실에서 오역을 범하고 있기에 역자가 푸슈킨에 관해서 나온 국내 저작들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이 또한 몇 권 되지 않는다. 열린책들판 푸슈킨 전집의 역자 해설에도 간략한 전기가 소개돼 있다). 그러니 충분히 노고를 평가할 만함에도 불구하고 원저를 같이 참고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듯싶다. 그런 반가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적는다... 

 

14. 12.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