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7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이이화 선생의 <허균의 생각>(교유서가, 2014)을 읽고 적었다. 허균의 '호민론'에 대해서는 정길수 편역의 허균 선집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돌베개, 2012)를 참조했다. <홍길동전>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고픈 생각이 든다. 허경진 교수의 <허균 평전>(돌베개, 2002)도 어디에 두었는지 다시 찾아봐야겠다...

 

 

시사IN(14. 11. 01) 조선을 용인할 수 없었던 한 남자

 

1000만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광해>에서 도승지 역으로 나왔던 허균(류승룡 분)은 가짜 왕 광해에게 이렇게 말한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정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뤄드리리다.” 영화를 흥행으로 이끈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에 대한 관객의 판타지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허균이란 문제적 인물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상기되어 이이화의 <허균의 생각>(교유서가)을 손에 들었다. 1569년에서 1618년까지 살다 간 그의 생애는 명문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고 글 잘 하는 문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반란죄로 처형되어 효시되는 걸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함께 양천 허씨 문중은 쑥대밭이 된다. 총명하고 문장에 능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을 당한 ‘역적의 괴수’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냉담했다. “행실이 가볍고 망령되이 물의를 일으켜 버림을 받은 지 오래였다”고 기록한 <광해군일기>가 대표적이다. 조선사회가 수용할 수 없었던 ‘이단아’였지만, 그것은 거꾸로 허균이 조선사회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허균은 어떤 시대를 살았던가. 1592년의 조일전쟁(임진왜란)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일찍이 유례가 없는 외침을 당한 상황에서 조선 민중은 바깥의 적이 아닌 안의 지배계급에 반기를 들었다. 난리 중에 반란과 도적이 끊이질 않았다는 사실은 조선 내부의 사회적 혼란과 갈등의 골이 이미 깊었다는 걸 방증한다. 당시 영의정이던 유성룡은 온 나라의 힘을 다 모으기 위해서는 서얼과 천민까지도 차별없이 고루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교적 교조주의와 당쟁, 그리고 민생고와 함께 조선사회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가 바로 서얼의 관직 등용을 막은 서얼금고와 천민에 대한 압제였다. 조선사회의 개혁을 꿈꾼 개혁가라면 정면으로 부닥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허균의 시대 진단을 알게 해주는 글 가운데 하나가 ‘소인론’, 곧 ‘못난 사람을 따진다’이다. 그는 그 글에서 조선에는 소인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군자만 있다는 말인가? 정반대다. 소인과 군자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범주여서, 군자가 없기 때문에 소인도 없다는 것이 허균의 일갈이다. 군자와 소인은 어떻게 다른가. 군자는 바르고 소인은 사특하며 군자는 옳고 소인은 그르며 군자는 공평하고 소인은 사사롭다. 한데 조선에서는 같은 패거리나 모두 군자라 하고 다른 패거리면 모두 소인이라며 배척한다. 그런 패거리 정치가 횡행하는 가운데 벼슬자리만 탐하는 자들만 조정에 가득하다는 것이 허균의 한탄이었다.

 


흔히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으로 알려져 있고, 저자도 그런 전제하에 <홍길동전>에 나타난 사회개혁사상을 허균의 사상과 동일시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근에 와서 회의적인 견해가 더 우세한 편이지만, 서얼차별과 부패한 관권에 대한 비판이라는 핵심 주제는 허균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직접 쓰지는 않았더라도 썼을 법한 소설이란 말이다. 유명한 ‘호민론’을 떠올려 보더라도 그렇다(저자는 ‘호민론’을 ‘몽둥이와 쇠스랑을 들고 일어서는 백성들’이라고 옮긴다).


그는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눈다. 먼저 눈앞의 이익에만 얽매여 시키는 대로 따라하며 부림을 받는 자가 항민(恒民)이다. ‘늘 그대로인 백성’이니 별로 두려울 게 없다. 다음으로 자기 것을 빼앗기면서 윗사람을 원망하는 원민(怨民)이 있다. ‘원망을 품은 백성’이지만 이 또한 반드시 두려운 존재는 아니다. 반면에 세상이 돌아가는 틈새를 엿보고 있다가 팔을 흔들며 들판에 올라서서 소리를 한번 크게 지르는 백성이 있다. 바로 ‘호걸스러운 백성’으로서 호민(豪民)이다. 허균에 따르면 당대 백성의 근심과 원망이 고려 말기보다 더 심한데도 불구하고 조선의 지배층이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호민이 없는 탓이다. 허균은 바로 그 호민이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씁쓸하게도 허균의 생각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도 와 닿는다.

 

1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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