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처럼 일어났지만 자꾸 눈이 감기는 주말 오전이다. 습관처럼 새로 나온 책들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고 몇 권을 주문한 다음에 잠시 침묵하다가 발견한 책이 오늘의 발견이어서 '이주의 발견'으로 분류한다. 패트릭 리 퍼머(1915-2011)의 <침묵을 위한 시간>(봄날의책, 2014). 제목만으로는 어떤 침묵인지 알기 어렵지만, '유럽 수도원 기행'이란 부제는 대번에 어떤 책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영국의 대표적 여행작가의 한 명이라는 저자의 책은 <그리스의 끝, 마니>(봄날의책, 2014)에 이어서 두번째다. 담백한 표지 때문에 여행서임에도 잘 눈에 띄지 않는데, 마치 열화당 책과 같은 느낌을 준다(노란색이 들어갔으면 많이 화려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세계산문선' 시리즈로 나온 첫 두 권이 퍼머(애칭은 '패디'라고)의 책 두 권인데, 어떤 책들이 더 나올지 궁금하다.

'패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영국의 전쟁영웅이자, 독특한 문체와 깊이 있는 관찰이 돋보이는 여행작가 패트릭 리 퍼머의 유럽 수도원 기행.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천주교 수도원 네 곳의 이야기다. 그곳과 그곳 사람들 이야기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저자 퍼머가 보고 느낀 것들은 특정 수도 공동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수도 공동체에 해당할 만한 이야기다. 패트릭 리 퍼머는 수도원에서 묵은 시간 동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어쩌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치유와 환희의 날들을 보낸다. 이방인들이 수도원에 머물 때 제일 먼저 깨닫게 되는 비밀, 느리면서도 점점 커져 가는 침묵이 주는 치유의 마법.

우리에게도 그렇게 침묵을 위해 머물 만한 수도원이 몇 곳이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발걸음을 조용히 따라가보는 시간은 충분히 마음을 끈다.

 

 

수도원 책이라면 일단 떠오르는 게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오픈하우스, 2009)이다. 사진과 함께한 진동선의 <침묵으로의 여행>(문예중앙, 2012)도 수도원의 분위기를 접하게 해주는 책. 이색적인 책은 최근에 다시 나온 <뉴스킷 수도원의 강아지들>(바다출판사, 2014). 수도사들이 쓴 강아지 양육법 책이다. 어쩐지 강아지도 수준이 좀 다를 것 같은 느낌.

 

덧붙여 전에 예고편만 보았던 다큐멘터리로 필립 그뢰닝의 <위대한 침묵>(2005)이 떠오른다(http://vimeo.com/38263988). 침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면 견본으로 삼아도 좋겠다. 러닝타임 168분.

 

 

14.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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