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햇수로는 4년이 된 듯한데, 연재를 마무리지으며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골랐다. 다수의 번역본이 출간돼 있고, 몇 대목은 댓 종의 번역본을 참고했다.

 

 

 

한겨레(14. 10. 06) 예술가의 영혼 ‘대장간’을 살짝 엿보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아일랜드에서 성장한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가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고 유럽 대륙으로 떠나기까지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여느 자전소설과 다른 점은 개인적인 기록 이상의 의미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고향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 혹은 명분을 밝히고 있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스티븐은 이렇게 적는다. “삶이여, 오라, 나는 이제 백만 번씩이라도 경험의 현실과 만나러,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내 종족의 의식을 벼려 내러 간다.”

 

스티븐은 두 가지를 말한다. 삶과 만나겠다는 것과 창작(영혼의 대장간)을 통해 자기 종족의 의식을 벼려내겠다는 것. ‘종족의 의식’은 ‘민족의 양심’으로도 번역된다. 흥미로운 것은 자기 자신의 의식을 벼려내는 게 아니라 종족의 의식을 벼려내는 게 목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조이스가 파리로 건너가서 쓰게 되는 <더블린 사람들> 연작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되지만, ‘젊은 예술가’ 시절 그가 생각한 예술가의 소명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준다.

 

스티븐은 그가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을 섬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게 내 집이든, 조국이든, 교회든.”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부활절 성찬을 받으라는 어머니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조국을 사랑하지만 “제 새끼를 잡아먹는 늙은 암퇘지” 같은 아일랜드는 조국으로 섬길 마음이 없다. 조이스의 아일랜드는 한 사람의 영혼을 가로막는 훼방꾼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떠나고자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장인(匠人) 다이달로스가 날개를 만들어 크레타의 미노스왕의 궁전에서 탈출한 것처럼. 다이달로스는 스티븐 디덜러스란 이름에 새겨진 그의 운명이자 모델이다. 바닷가에서 다이달로스의 이름과 함께 그 형체를 떠올리면서 스티븐은 예술가로 재탄생한다. “삶이 자신의 영혼을 부르는 소리”에 반응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예술가로서 영혼의 자유와 힘을 발견한 스티븐이 자신의 역량을 처음 체험하는 대목이다. 그의 앞에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던 한 소녀가 “이상하고 아름다운 바닷새의 모습”으로 보이고, 그녀의 얼굴에서는 “인간의 아름다움이 가지는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이러한 지각은 물론 그의 예술가적 힘이 빚어낸 것이다. 이 힘은 사소한 장면에서조차 경탄을 이끌어낸다. 소녀가 한쪽 발로 개울물을 휘저으며 찰랑거리게 만드는 모습을 보자 스티븐은 이렇게 외친다. “오, 이런!” 번역본에 따라서는 “오, 이럴 수가!”, “오, 하느님!”, “하늘에 계신 하느님!”으로 옮겨진 경탄이다.

 

독자로서는 스티븐의 이례적인 발견과 경탄이 새로운 발견과 경탄의 대상이다. 이 장면은 예술가가 가진 영혼의 대장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어떻게 멋지게 벼려지는지 살짝 엿보게 해주는 듯싶다. 이제 스티븐은 예술가의 길로 나설 준비가 되었다. “살고, 실수하고, 타락하고, 승리하고, 삶으로부터 삶을 재창조하는 것”이 과제라는 걸 그는 안다. 그는 곧 <율리시스>라는 걸작을 써내게 될 것이다.

 

14.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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