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31호에 실은 '키워드로 읽는 인문학 서재' 꼭지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키워드는 '공유지식'으로 골랐다. 좀 딱딱한 주제이긴 하지만 오늘날 지식의 성격과 그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측면이다. 각기 다른 관점에서 지식 공유와 공유지식의 문제를 다룬 책 두 권을 골랐다. 참고로 <지식의 공유>의 공편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유재 문제를 다룬 연구로 2009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여성 경제학자이다.

 

 

책&(14년 9월호) 지식을 바꾸는 공유지식

 

지식에 대한 가장 흔한 이미지는 습득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지식은 배우고 익혀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더불어 그렇게 습득한 지식을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눠서 함께 가진다. 지식을 전달하고 전수하며 공유한다. 지식이 자원이라면 그것은 가장 대표적인‘ 공유자원’이기도 하다. 이달에는 두 권의 책을 길잡이로 삼아서 이 공유자원으로서 지식이 어떤 문제들을 품고 있으며, 지식 공유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먼저 엘리너 오스트롬과 샬럿 헤스가 엮은 <지식의 공유>(타임북스, 2010)는 ‘공유자원으로서의 학술연구’에 대한 학술회의 발표문을 모은 것으로 지식 공유에 관한 다양한 쟁점들을 망라하고 있다. 편자들은 지식을 공유자원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책의 주된 목적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공유자원으로서 정보와 지식을 연구하려는 시도 자체가 아직 유아 단계에 놓여 있다고 할 정도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1995년경에 ‘정보 공유자원’ 운동이 시작됐다고 하니까 채 20년이 되지 않는다. 갑작스런 시각 변화를 가져온 것은 짐작대로 정보의 디지털화이다.


공유자원이란 말 그대로 사람들이 공유하는 자원을 가리킨다. 공유자원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모델을 제시한 이는 생물학자 개릿 하딘인데, 그의 연구(1968)는 흔히 ‘공유지의 비극’이란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마을의 초지를 공유하는 농부들이 자기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소떼들을 초지에 풀어놓는다고 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초지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결과적으로는 전체의 이익을 침해하여 공멸을 자초하고 마는 것이 공유지의 비극이다. 즉 공유자원은 자유롭게 이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회에서 “파멸은 모든 인간이 달려가는 최종 목적지다.”


하지만 하딘의 주장이 큰 영향을 미치긴 했어도 그의 주장과는 달리 공동체가 자율적인 이용 규칙과 바람직한 분쟁 해결 장치 등을 마련한다면 공유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지속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도 많다. 게다가 지식은 초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자원이다. 토지나 수자원에 대한 ‘오픈 액세스(Open Access)’, 곧 제한 없는 접근은 과잉소비와 고갈을 초래할 수 있지만 지식과 정보는 통상 비경쟁적이다. 정보 생태계에 대한 오픈 액세스는 저작권과 양립가능하다. 오히려 정보에 대한 오픈 액세스는 부정적 결과를 유발하는 대신에 보편적인 공유재를 제공한다.“ 인터넷이 인간에게 공유정신을 형성시키고 함양시켜줌에 따라 공유자원은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었다.”


물론 디지털 정보기술의 세계가 장밋빛 가능성만 제시하는 건 아니다.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방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한편으론 지적재삭권법, 특허의 남발, 과잉가격 책정, 정보 삭제 등의 정보에 대한 접근 차단도 가속화되고 있다. 확실한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아도 문제지만, 공공영역의 지식에 대한 개인의 지배권이 지나치게 커지는 현상도 우려의 대상이다. 따라서 지식 공유자원의 중요성이 점점 더 증대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지식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지식 창조에 기여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다.


공유지 혹은 공유자원이 어째서 중요한가. 왜냐하면 그것이 민주주의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공유, 지식의 공유는 민주주의 사회발전의 기본 토대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지식 공유자원을 보호하는 특별 영역으로서 도서관은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유지되는 데 든든한 성채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당연히 도서관 사서들의 몫이 컸다. 하지만 바야흐로 전면적인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는 지식 공유자원의 보호와 관리가 도서관 사서들의 몫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모든 정보 사용자와 제공자가 이 공유자원의 관리자이자 보호자로 나서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식의 공유>가 ‘공유자원으로서의 지식’이라는 문제 지형의 전체적인 그림을 갖게끔 해준다면, 한국계 미국인 정치학자 마이클 최의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후마니타스, 2014)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공유 지식의 문제를 다룬다.‘ 게임으로 본 조정 문제와 공유지식’이 부제. 저자는 ‘공유 지식’을 좀 더 제한적인 의미로 쓰는데, 그에 따르면 “어떤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고,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음을 알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음을 모든 사람이 안다는 데 대해 모든 사람이 아는 등과 같이 연쇄가 이루어진 경우”가 공유 지식이다. 즉 공유 지식이란 다른 사람이 안다는 데 대한 앎으로서 일종의 ‘메타지식’이다.


이 메타지식으로서 공유 지식은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선택하는 의사소통 방식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저자가 들고 있는 한 가지 예시로 이메일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메일 수신자 외에 참조와 숨은 참조를 덧붙일 수 있는데, 참조일 경우 각각의 수신자는 주소창에서 함께 받는 이들의 이름과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숨은 참조일 경우에는 알 수가 없다. 동일한 메시지가 전달되지만 숨은 참조는 이 메시지가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된다는 공유 지식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차이를 낳는가. 저자는 공유 지식을 각 개인이 서로의 행동을 조정하는 ‘조정 문제’와 연관시킨다. 예를 들어, 반정부 시위에 나선다고 해보자. 개인이 시위대의 수가 충분해서 경찰이 구속하거나 억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만 시위에 참여하려는 경향을 갖는다면, 그러한 참여 결정을 내리는데 참여 권유의 메시지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다른 사람도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는 데 대한 인지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곧 참여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인지에 대한 인지, 다른 사람의 인지에 대한 또 다른 사람의 인지에 대한 인지” 등이 필요하다. 이렇게 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유 지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공유 지식을 창출하는 사회적 과정들이 마련된다. 공식 행사나 집회 같은 ‘공공 의례’는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저자는 이것을 “공유 지식을 산출하는 사회적 실천”이라고 이해한다.


체제에 대한 저항운동이나 공공 의례뿐 아니라 광고 역시 공유 지식을 전제하며 이용한다. 시청률이 높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광고 단가가 더 높은 것은 단지 더 많은 시청자들에게 광고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다른 시청자들도 내가 아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소비자는 자기가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을 구입한다고 하지만, 그 물건을 다른 소비자도 사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온 책들이 더 많이 팔리는 경향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공유 지식의 효과다.


짐작할 수 있지만, 공유 지식이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가령 어느 호텔 객실에 들어갔다가 벌거벗은 여성 투숙객을 본 호텔의 남자 직원이 깜짝 놀라서 (남성에게 쓰는 존칭을 사용해)“ 실례합니다, 고객님”이라고 외쳤다면, 그의 위장은 의도적으로 공유지식을 회피한 사례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유 지식은 비밀의 반대말이다. 저자는 공유 지식이라는 개념이 문화 현상 전반에 걸쳐서 얼마나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으며 이 현상들을 어떻게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공유 지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14.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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