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63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사월의책, 2014)을 읽고 적었다. 가토 슈이치는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일본 문화의 시간과 공간> 등의 저작으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시사IN(14. 08. 30) 책 읽지 않는 법 알려주는 '독서법'

 

독서의 방법 혹은 기술에 관한 책을 종종 읽는 편이다. 독서에 관한 독서가 되는 셈인데, 혹 별다른 게 있을까 궁금해서이기도 하고, 독서법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적당한 대답을 마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사월의책)에 눈길이 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원제는 ‘독서술’이니까 독서 고수인 저자가 말 그대로 독서의 기술을 전수하고자 한 책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임을 확인하게 해줄 만큼 책들이 소개된 건 아니지만 가토 슈이치는 <일본문학사 서설>과 마루야마 마사오와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 근대> 등의 저서를 통해 우리와는 구면인 저자다. 거기에 덧붙여 1962년 첫 출간 이후 저자의 최대 베스트셀러로서 30년이 지난 1992년에 이와나미판으로 재출간되기까지 한, 일본의 대표 독서술이라고 하니까 독서의 동기로는 충분하다. 어떤 ‘노하우’를 일러주는가.


일단 책에 대한 두 가지 핵심 질문에 대한 정리부터.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까’와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저자는 어떤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할 것인가에 대해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듯이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란 문제에도 일반론이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에 프러포즈에 온갖 수단과 방법이 있는 것처럼 어떻게 읽을 것인가란 문제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방법을 제시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온 저자가 독서술에 대해 몇 마디 거들게 된 근거다.


느리게 읽는 ‘정독술’과 빨리 읽는 ‘속독술’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독서법이다. 책에 따라 느리게 읽기와 빨리 읽기를 적절하게 선택하거나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까지는 새로울 게 없다. 저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건 ‘책을 읽지 않는 독서술’과 ‘외국어 책을 읽는 독해술’을 말하는 대목에서다. ‘책을 읽지 않는 법’이 ‘책을 읽는 법’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사실 너무 많은 책이 있는 반면에 읽을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100권 가운데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머지 99권의 책을 읽지 않아야 가능하다. 목적에 맞는 특정한 책을 고른 다음에는 나머지 책을 깨끗이 무시하는 게 ‘책을 읽지 않는 법’의 핵심이다.


물론 안 읽는다고 해서 몰라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서평이나 초록이 책의 내용을 대강 알아보려고 할 때 도움이 된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서평문화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 하는 ‘지적 스노비즘’도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적 스노비즘은 “어차피 나는 바보니까”라는 ‘어차피 바보이즘’의 반대다. 미국에서 위세를 떨쳤던 매카시즘도 ‘어차피 바보이즘’을 정치적으로 동원한 결과라는 저자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는 스노비즘이 아니라 바보이즘이다. 게다가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다 보면 정말로 읽어볼 기회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외국어 책을 어떻게 읽을까’라는 문제를 다루는 시각도 흥미롭다. 외국어를 한두 개 정도 꽤 잘 하면서도 외국어 책을 읽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을 위한 조언이다. 원칙은 간명하다. 필요한 책을 읽으라는 것과 쉬우면 쉬울수록 좋다는 것이다. 가령 핵무기 금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핵무기에 반대하는 러셀의 에세이를 빅토리아 시대 영국소설보다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게 더 흥미로운 건 자신에게 더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어려운 책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도 배워둘 만하다. 그에 따르면 어려운 책 가운데 문장 자체에 문제가 있다거나 저자가 횡설수설하는 책은 ‘읽을 필요가 없는 책’으로 일단 제쳐놓아야 한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은 언어와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되므로 단어의 개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노력과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이 또한 절실한 필요가 뒷받침된다면 넘기 어려운 장애물은 아니다. 독서 고수의 명쾌한 단언은 이렇다. “요컨대 나에게 어려운 책은 불량한 책이거나 불필요한 책이거나 둘 중 하나다.”

 

14.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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