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30호)에 실은 '키워드로 읽는 인문학 서재'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있어서 '교황'으로 잡았다. 이미 교황 관련서는 수십 종이 나와 있는 성싶은데, 몇 권만 추려서 볼 수밖에 없었다. '교황의 역사'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었지만 분량상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생각에 관해서만 적었다(교황의 이름은 베를골료, 베르골리오, 베르고글리오가 통일되지 않은 채 혼용되고 있다).  

 

 

책&(14년 8월호)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황의 여정

 

8월 방한을 앞두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3월 제266대 교황으로 취임한 이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선도하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복음의 회복을 강조함으로써 불과 1년 만에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에 미국 ‘타임’지는 교황을 ‘201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무엇이 전 세계 12억 가톨릭신자뿐 아니라 타종교인과 비종교인에게까지 새 교황에 대한 관심과 존경을 불러 모으게 하는가. 몇 권의 책을 통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생각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교황의 삶을 들여다 보는 데 기본서가 될 만한 책으로 위르겐 에어바허의 <프란치스코 교황>(가톨릭출판사)을 꼽을 수 있다. 독일 출신의 바티칸 전문기자가 쓴 책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과정과 성직자로서의 여정, 그리고 교회 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가톨릭교회 내부의 평가 등을 담고 있다. 모든 일은 2013년 3월 13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고 공표됨으로써 시작되었다(한국천주교회에서는 ‘베르골리오’ 대신에 ‘베르골료’라는 표기를 권장하지만, 출간된 다수의 책에서 베르골리오라고 표기하고 있기에 그에 따른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사임하면서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되었다는 전언이었다.

 

 

베르골리오는 선임 교황들이 선택하지 않은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선택했는데, 이로써 몇 가지 기록을 세우게 된다. 즉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한 최초의 교황이며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고 최초의 예수회 소속 교황이다.


호르헤 베르골리오는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이탈리아 피에몬테 출신으로 세계 대공황이 닥치자 당시 유럽과 달리 경제 호황을 누리던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왔다.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호르헤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3살이 되자 아버지의 권유로 양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17살에 공업학교에 진학해서는 제약공장에서 일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공장에서 일한 다음에 한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 추기경이 된 뒤 그는 이 시기의 노동 경험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제게 일을 시키셨던 아버지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인간의 선한 모습뿐만 아니라 잔인하고 악한 모습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으니까요.”


십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며 다니던 성당에서 젊은 사제를 만나 영적인 체험을 한 호르헤는 스무 살이 되자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한다. 예수회 입회자로서 수련기를 거치는 동안 그는 인문학 전반에 대한 기초를 다졌고 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횔덜린의 시를 좋아했고 보르헤스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도 정통했다. 단테의 <신곡>과 알렉산드로 만초니의 <약혼자들>이 그가 특히 아끼는 작품이며 톨킨의 <반지의 제왕>도 관심을 갖고 읽었다. 예수회 신부로 사목하던 베르골리오는 1992년 주교로 서품되고, 2001년 2월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된다.


바티칸에서 열린 서임식에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직접 참석하려고 했지만 그는 서임식 참석 비용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도록 직접 서신까지 썼다. 서임식 예복도 전임 추기경이 입던 옷을 자신의 치수에 맞게 고쳐 입으려고 했을 정도로 그는 청빈하고 소탈했다. 그의 검소함은 교황이 된 이후에도 이어져서 여전히 은으로 된 주교 십자가를 걸고 다니며 고향의 작은 구둣방에서 맞춘 검은 구두를 신는다고 한다. 교황의 이러한 인품은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에도 새겨져 있다. 교황에 따르면,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는 “청빈과 평화의 수도자이자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보호하신 분”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계승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회문제와 복음 전파에 큰 관심을 쏟는다.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사의 굴곡을 몸으로 겪은 그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큰 고통에 빠질 수 있는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큰 위협에 처할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황이기도 하다.  

 


예수회 신부 안토니오 스파다로와의 대담집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솔)는 교회의 역할과 성직자의 사명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가 예수회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교황은 예수회가 가진 선교성, 공동체, 규율이라는 세 가지가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태생적으로 규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지만 예수회원들의 엄격한 규율 준수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혼자 사는 사제가 아니라 공동체 속의 사제이고자 했다. 더불어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예수회란 언제나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둔다는 것을 가리킨다.


진리에 대한 교황에 생각도 음미해볼 만한데, 그는 결코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절대적이란 말은 모든 관계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함축하는데, 그가 보기에 진리란 다른 무엇보다도 ‘관계’를 지칭한다. “진리란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결국 진리란 관계인 것이지요!”라고 교황은 강조한다. 그렇기에 진리는 항상 하나의 여정이며 하나의 삶으로서만 우리에게 자신을 내준다고 그는 덧붙인다. 교회에 대한 생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교황에게 교회란 어머니의 따뜻함을 의미한다. 그는 어떤 교회를 꿈꾸는가. “내가 분명히 보는 바로는 오늘날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상처를 치료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능력과, 가까이 머물기, 곁에 있기입니다. 나는 교회를 전투가 끝난 후의 야전병원으로 봅니다.” 이 야전병원에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직무자들은 무엇보다도 자비의 직무자여야 한다고 교황은 말한다. 


남미에서 직접 해방신학을 공부한 신학자 김근수의 <교황과 나>(메디치)는 ‘개혁 교황’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탄생과정과 그 의의,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과 행동이 한국사회에 교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짚어본 책이다.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읽는 세 가지 코드로 예수회와 성 프란치스코, 그리고 조국 아르헨티나의 현실 세 가지를 들면서 교황이 ‘온건 해방신학자’의 입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교회개혁을 통해 사회개혁에까지 이르고자 하는 게 교황의 지향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교황의 꿈은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교회다. 한국사회와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교황의 방한이 그러한 반성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14. 08. 08.

 

 

P.S. 참고로 교황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의 <교황들>(동화출판사, 2009), 호르스트 푸어만의 <교황의 역사>(길, 2013), P.G. 맥스웰의 <교황의 역사>(갑인공방, 2005) 등을 참고할 수 있다.

 

 

간략한 문고본으로는 프란치스코 키오바로의 <교황의 역사>(시공사, 1998), 두툼한 책으로는 <옥스퍼드 교황 사전>(분도출판사, 2014), 그리고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교황 연대기>(바다출판사, 2014)를 더 참고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의 방한인지라 출판계의 반응도 사뭇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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