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시사IN(355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문해교육>(학이시습, 2014)을 골라서 읽고 적었다. 문해교육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아처와 패트릭 코스텔로의 <문해교육의 힘>(학이시습, 2014)도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끈다.

 

 

시사IN(14. 07. 05) 읽고 쓰면서 세상 밖으로

 

<페다고지><희망의 교육학> 등 교육학 고전으로 잘 알려진 파울로 프레이리의 <문해교육>을 읽었다. 브라질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인 것도 브라질의 세계적인 교육사상가에게 주목하게 만든 이유이지만 문해교육 프로그램이 프레이리의 대표적 교육개혁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갔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글 읽기와 세계 읽기’가 부제인데, ‘읽기와 쓰기 교육’으로서 문해교육에 대한 강조는 새삼스럽지 않지만 ‘글 읽기’와 ‘세계 읽기’를 같이 묶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프레이리 문해교육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글 읽기와 세계 읽기는 어떤 관계인가. “세계 읽기는 항상 글 읽기에 선행한다. 그리고 글 읽기는 계속해서 세계 읽기를 내포한다”는 구절에 압축돼 있다. 세계 읽기가 글 읽기에 선행한다는 말은 학습자가 글을 깨치기 전에 이미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프레이리는 몬테마리오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의 경험을 들려주는데, 그는 보니투(bonito)라는 물고기 이름과 함께 채소, 전통가옥, 고깃배, 어부의 그림을 먼저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주민들이 “아 여기는 몬테마리오예요. 맞아, 이 그림은 몬테마리오야. 정말 몰랐네”라고 말하며 놀라워했다. 그림(상징)을 통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인식하고 재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뜸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그들이 존재하는 작은 마을을 대상화함으로써 ‘세계의 주인’으로 마주 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기심 어리고 비판적인 주체’가 바로 문해교육 과정의 출발점이라고 프레이리는 말한다. 그래서 그의 문해교육의 첫 단계는 학습자들에게 글자보다 그림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학습자가 글자를 기계적으로 암기하기보다는 자기 경험에 근거해 그 글자 자체를 이해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제시된 상황을 해석하고 읽어내는 과정에서 학습자는 자신의 경험세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다. 그 학습자가 가난한 민중이라면 “세계에 대한 비판적 독해가 깊어질수록 민중들은 숙명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난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급진적 교육학을 주창한 <페다고지>의 부제가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되듯이 프레이리의 주안점은 민중의 해방을 위한 교육이다. 그에게 교육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수단이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게끔 하는 사회변혁의 수단이다. 교육은 억압받는 계급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무기이며, 문해교육은 그러한 무기의 하나다. 그런데 세계 읽기가 글 읽기에 앞선다는 전제를 염두에 두면 해방적 문해교육에 앞서야 하는 것은 사회 변혁이다.

 

문해교육의 의의를 절대적으로 것으로 과대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 또한 프레이리 사상의 특징이다. 그는 문해교육을 사회변혁의 유일한 기폭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니카라과 민중이 혁명을 통해 역사를 장악하자 곧바로 문해교육이 실시되었다. 문해과정은 역사를 장악하는 과정보다는 쉽기 때문인데, 니카라과 민중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시 써나갈 수 있었다. 사회변혁이 문해교육에도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니카라과와 대조되는 사례가 미국이다. 1980년대 중반의 통계이지만 당시 미국 민중의 6000만 명 이상이 글을 모르거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기능적 비문해 상태에 있었다. 유엔의 128개국 가운데 미국의 문해율은 49번째였다. 이러한 대규모의 비문해 인구가 방치되고 있는 것이 제1세계의 대표국가 미국의 현실이라면 미국은 프레이리의 문해교육이 제3세계 국가 이상으로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곳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문해율을 자랑하는 만큼 사정이 좀 다르다. 월드컵 축구팀의 성적이 브라질이나 미국에 비해 좋지 않더라도 다소간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14.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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