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강의를 다녀오면서 한 주의 강의가 마무리됐다. 주말엔 밀린 원고가 잔뜩이지만 한숨 돌리면서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문학이론서와 비평가론, 그리고 시인 평전이다.

 

 

먼저, 이탈리아 출신의 비교문학자이자 영문학자 프랑코 모레티의 책이 오랜만에 나왔다. <공포의 변증법>(새물결, 2014). 부제로 붙은 '경이로움의 징후들'이 원제다. 한때 모레티의 주저들을 긁어모을 때 구했던 책으로 기억에는 모레티의 첫 저작이다. 형식주의와 진화론을 접목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가 흥미로웠는데, 번역서가 나온 김에 완독해봐야겠다(물론 책이사가 끝나야지 가능한 일이다). 어떤 발상의 책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사랑의 학교>, 셜록 홈스와 <율리시즈>, <프랑켄슈타인>과 <황무지>. 세계문학사의 기적들로 불리며 대문문화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지만 난해하고 이해 불가능한 ‘명작’으로 낙인찍힌 작품들이다. 모레티는 이 ‘세계문학의 기적들’인 실은 좀 더 넓은 문화적-정치적 현실의 징표임을 흥미진진하게 밝혀낸다. 예를 들어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를 통해 19세기의 ‘공포의 계보학’을 분석하면서 이 두 괴물이 19세기의 영국 자본주의의 동향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혀내는 모레티의 노련한 솜씨는 발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단지 흉측한 괴물에 그치는 반면 드라큘라가 잔혹함과는 거리가 먼 금욕주의적 흡혈귀인 것은 당시 영국 자본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드라큘라는 독점 자본과 금융 자본주의에의 적응에 실패한 영국의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자기변호론으로 읽어야 한다는 모레티의 선구안은 대중문학이 ‘대중적으로’, 특히 정치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혜안을 제공해준다.

모레티의 다른 책들도 읽거나 다시 읽어볼 만한데, 이번에 보니 <근대의 서사시>(새물결, 2001)은 품절 상태다. 절판이 아니라면 다시 나오길 기대한다.

 

 

더불어 더 소개되면 좋겠다 싶은 모레티의 책들. <부르주아><멀리서 읽기><유럽소설 지도 1800-1900> 등. 나는 모레티가 가장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동시대 문학사회학자라고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 선집(전15권)을 번역중인 독문학자 최성만 교수도 벤야민의 생애와 사상을 갈무리한 책을 펴냈다.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길, 2014). 현재 벤야민 선집은 여덟 권이 나와 있기에 절반은 넘어선 셈인데, <기억의 정치학>은 그 중간보고서적인 의미도 갖겠다. "발터 벤야민 선집을 총괄 기획하고 국내 벤야민 연구의 최고 전공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최성만 교수가 벤야민 사상 전반을 전기적 방식이 아닌 저작의 사유 흐름에 초점을 맞춰 서술한 국내 첫 연구 결실이다."

 

 

동시대 '백석파' 시인으로는 맨앞에 설 만한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다산책방, 2014)이 출간됐다. 시인이 쓴 시인 평전으로는 고은의 <이상 평전>과 최하림의 <김수영 평전> 등이 떠오르는 데 그 계보를 이을 만하다. 백석 평전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기대를 갖는 이유.

당대의 많은 시인들을 매료시켰으며, 해방 이후 후대의 시인들에게도 절대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백석의 생애를 담은 <백석 평전>.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짝사랑하고, 백석의 시가 "내가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였으며 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안도현 시인은 "그동안 백석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그를 직접 만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백석의 생애를 복원했다.

안도현 시인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2004)이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따온 거라는 사실은 한국시 독자라면 상식에 속한다. 평전을 통해서 두 시인의 내밀한 관계도 들여다볼 수 있겠다. 더불어, <백석의 맛>(프로네시스, 2009)의 저자 소래섭 교수의 백석 시 안내서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우리학교, 2014)도 이번에 출간됐다. 청소년용이긴 하지만, 백석에 과문한 독자라면 이 책부터 손에 들어도 괜찮겠다...

 

14.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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