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중앙선데이에서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을 옮겨놓는다. 이번에 다룬 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레싱의 시민비극 <에밀리아 갈로티>다. <에밀리아 갈로티>는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고, 레싱 연구서도 참고할 수 있다.

 

  

 

중앙선데이(14. 05. 18) 베르테르를 또 한번 슬프게 한 신분의 차별

 

로테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베르테르의 마지막 선택은 자살이었다. 생의 마지막 날 그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마음속으로 로테에게 안녕을 고한 다음 방아쇠를 당긴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런데 주의 깊은 독자라면 그가 자살하기 직전 어떤 행동을 했을지도 관심을 가질 법하다. 괴테는 두 가지를 알려준다. 옆에 놓인 포도주는 한 잔 정도밖에 마시지 않았다는 것과 책상 위에는 『에밀리아 갈로티』가 펼쳐져 있었다는 것. 정황상 자살을 앞둔 베르테르가 마지막으로 읽었을 책이 레싱의 비극이었던 셈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청년 괴테 자신의 실연 경험을 소재로 한 자전적 작품이다. 스물세 살 때 베츨라의 고등법원에서 견습 생활을 하던 괴테는 샤를로테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에게는 케스트너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괴테는 케스트너와도 우정을 나누지만 샤를로테에 대한 연정 때문에 괴로워한다. 결국 그는 “나는 지금 혼자입니다.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며 떠나니 부디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편지를 샤를로테에게 남기고 떠난다. 파국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베르테르의 자살에는 괴테가 아닌 다른 모델이 필요했다. 비슷한 시기에 괴테와 같은 법학도였던 친구 예루잘렘 또한 다른 남자의 아내를 사랑했는데, 그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되자 케스트너의 권총을 빌려 자살했다. 베르테르도 예루잘렘처럼 로테의 남편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려서 자살한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예루잘렘의 자살 현장에 『에밀리아 갈로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보다 2년 먼저 완성된 『에밀리아 갈로티』(1772년 초연)는 기원전 5세기 로마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권력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평민 계급의 처녀 비르기니아에게 반해 유혹하려고 하나 잘 되지 않자 그녀를 강제로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그러자 비르기니아의 아버지가 딸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칼로 찔러 죽인다. 격분한 민중이 봉기를 일으켜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를 몰아내고 민주적인 법질서를 회복했다는 게 역사가 리비우스의 보고다.

정치적 성격이 매우 강한 ‘비르기니아 전설’을 새롭게 작품화하면서 레싱은 정치적 요소는 제거하고, 대신 아버지에게 살해당하는 딸의 비극적 운명에 초점을 맞췄다. 구아스탈라의 영주 헤토레 곤차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자로서 시민 계급인 오도아르도의 아름다운 딸 에밀리아를 취하려고 한다. 에밀리아는 약혼자 아피아니 백작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영주는 개의치 않고 음모를 꾸며 아피아니를 살해하고 에밀리아는 보호를 명목으로 납치한다. 에밀리아를 찾아간 오도아르도는 딸이 자기 앞에서 단검으로 자결하려고 하자 칼을 빼앗지만, “딸을 수치에서 구하기 위해 가슴에 칼을 꽂을 아버지가 이제는 없는 거냐”는 그녀의 원망을 듣고는 하는 수 없이 에밀리아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오도아르도는 “하나님, 제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라고 탄식하고, 에밀리아는 아버지의 손에 입을 맞추고 쓰러진다. 아버지의 손을 빌린 형식이지만 에밀리아의 죽음은 미덕을 지키기 위한 자살이었다.

베르테르에게 에밀리아 갈로티의 자살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자살을 결행하는 베르테르와 순결을 지키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에밀리아의 처지는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행동을 촉구하며 결연하게 죽음을 맞는 에밀리아의 태도만큼은 베르테르에게도 모범이 되었음 직하다. 덧붙여서 두 죽음이 모두 시민계급의 자살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에밀리아 갈로티』가 ‘시민 비극’으로 불리는 데서도 알 수 있지만, 영주와 에밀리아의 대립은 부도덕성과 도덕성의 대립 못지않게 귀족(지배계급)과 시민(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기도 하다. 그런 해석의 가능성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경우에도 열려 있다.

 



괴테 역시 귀족과 시민계급 간의 차이를 작품의 핵심으로 부각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시민 계급에 대한 차별도 베르테르의 고뇌에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로테의 곁을 떠났던 베르테르가 공직의 길로 나서려다가 결국 궁정에 사직서를 내는 데는 시민 계급에 대한 차별이 중요한 원인이 된다. 베르테르가 백작의 만찬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겪은 모욕이 대표적이다. “나는 여기서 불쾌한 일을 당했기 때문에, 아마도 이곳을 떠나야만 하겠네!” 상류계급의 신사숙녀들이 귀족이 아닌 말단 공무원 베르테르에게 자리를 피해 줄 것을 넌지시 요구했던 것이다. 그들의 수군거림을 나중에야 전해 들은 베르테르는 울화가 치민다. “그러고 보니 식사를 하러 와서 나를 바라보던 놈들은 모조리 그것 때문에 나를 유심히 쳐다본 거구나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고 피가 끓고 있네.” 베르테르의 책상에 놓인 『에밀리아 갈로티』는 이러한 고뇌를 상기시킨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통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훨씬 더 복합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14.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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