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철학서를 관심도서로 올려놓는다. 둘다 일본인 저자의 책이라는 점이 공통적인데, 나카지마 요시미치의 <철학의 교과서>(지식의날개, 2014)와 와시다 키요카즈의 <듣기의 철학>(아카넷, 2014)가 그 두 권이다. 나카지마는 구면이고 와시다는 초면이다.

 

 

나카지마 요시미치의 책은 중복도서까지 포함하면 일곱 권이 번역됐고 <철학의 교과서>만 하더라도 <일하기 싫은 당신을 위한 책>(신원문화사, 2011)과 <인생 반 내려놓기>(21세기북스, 2013)에 이어지는 것이니까 출판계에서 선호하는 저자군에 속한다. '철학의 교과서'란 제목은 오히려 식상해서 눈에 띄는데, 저자의 말로는 "이 책은 철학에 '교과서' 따위가 있을 리 없다는 이야기를 풀어내어 이해시키려는 '철학의 교과서'"라고. 역설이지만 그래서 좀더 미덥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프롤로그를 보니 저자는 대부분의 '철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으로 두 가지만 꼽는다. "하나는, 철학이란 순수한 의미로 볼 때 '학문'의 영역이 아니므로 그 책을 집필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세계관이나 현실적 감각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넘쳐나는 철학 입문서들은 하나같이 철학을 너무도 무해하고 품행방정하며 훌륭한 것으로 과대 포장하고 있다는 점".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철학이란 약간을 병적이고, 흉포하고, 위험천만하며, 반사회적 성향이 강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왜 죄악인가? 인류가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는 결국 죽는다... 등등의 한탄과 독백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질적 물음에 고통받고 끌려다니며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힘겨워하던 사람이, 물귀신처럼 다른 사람을 그 개미지옥에 끌어들이려는 속셈으로 써내려간 이 책이야말로 진짜 철학의 '교과서'가 아닐까요?

그런 생각에 동감하는 독자라면 모처럼 친구 혹은 원군을 얻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

 

 

 

<듣기의 철학>은 <철학의 교과서>에 비하면 조금더 '전문적'이란 인상을 준다. 전공이 논리학이라고 소개되지만 <얼굴의 현상학>, <현상학의 시선>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는 와시다는 현상학 쪽의 전문가로 보인다. '듣기의 철학'이란 문제의식도 '현상학적'이고. 거기에 교육에 대한 관심도 얹어진다. 학생들에게 질문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는 것. 저자의 문제의식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저자는 ‘듣기’가 타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며, 동시에 말하는 이에게 자기이해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그 행위에서 어떤 힘을 느낀다고 덧붙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산파술’, 또는 ‘시중드는 사람’이라 불렀던 그 힘을 말이다. 저자는 ‘듣기’라는 행위가 가진 철학적 힘을 밝히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리고 철학이 복원해야 할 것이 이렇게 귀를 여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고통받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위안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시작과 끝을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듣기의 철학은 이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말을 줄이고 겸허한 마음으로 타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다.

리쾨르 전문가이기도 한 현상학자 돈 아이디의 <소리의 현상학>(예전사, 2010)이 떠오르는데, 맥락은 좀 다르지만 듣기는 청각과 관련되는 만큼 연관성이 없지도 않겠다(아이디의 책은 <테크놀로지의 몸>(텍스트, 2013)도 소개돼 있다. 기술과 신체 등도 현상학 쪽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다). <소리의 현상학>은 벌써 절판됐군... 

 

14. 04. 20.

 

 

 

P.S. 철학분야의 책으로 지난달에 미처 언급하지 못한 관심도서는 로이 브랜드의 <지식애>(책읽은수요일, 2014)다. "소크라테스에서 데리다까지 허무와 냉소를 지식에 대한 사랑, 즉 지식애를 통해 극복해온 철학자 6인의 삶과 철학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담은 책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소크라테스의 변명>(<변론>)과 <향연>, 스피노자의 <윤리학>,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니체의 <도덕의 계보>, 푸코의 <성의 역사>, 그리고 데리다의 <나는 여기에 있다>까지가 저자가 다루는 텍스트들이다. 봄날의 철학적 산책에 가장 어울릴 만한 동반자.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추천사도 참고할 만하다.

격조 높은 책이다. 왜 모든 인간이 결핍을 느끼는지, 왜 지식에 대한 열정을 지녀야 하는지와 같은 오래된 철학적 질문을 우리들의 삶의 문제로 끌어들인다. 당신이 아직 철학을 사랑해본 적이 없다면,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철학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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