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책&(425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로 잡은 건 '쓰레기'다. 최근 몇 년간 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해주는 책들이 여럿 출간돼 주제로 삼았다. 인구 문제와 함께 시한폭탄으로 여겨지는데, 앞으로도 인류가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책&(13년 12월호) 쓰레기의 재구성

 

“궁금해요. 쓰레기가 엄청 많잖아요. 가장 걱정스러운 건 언젠가 이 쓰레기를 쌓아둘 곳이 없어질 게 분명하다는 점이죠.”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이프>(1989)에서 앤디 맥도웰이 의사에게 털어놓는 고민이다. 당시만 해도 관객들은 쓰레기 문제를 한 신경증 환자의 고민으로 치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의 문제가 됐다. 문명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모두가 쓰레기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 일상적으로 배출해내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쓰레기가 우리 시대의 표지라면, 이제 더 쌓아둘 곳도 없어지기 전에 어떤 실천과 결단이 필요한지 생각해보는 건 의무다. 12월에는 이와 관련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책 몇 권을 살펴보자.

 

  


먼저 현황부터 파악해보자. 언론인이자 영화제작자 헤더 로저스의 <사라진 내일>(삼인, 2009)은 쓰레기의 발생에서 처리까지 그 흐름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주에서 지구를 볼 때 중국의 만리장성과 함께 눈에 띄는 문명의 흔적이 뉴욕 시 남서부의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 '프레시킬스'라 한다. 세계 최대 소비국가인 만큼 배출하는 쓰레기양에 있어서도 미국은 단연 세계 최고다. 전체 세계 인구의 4퍼센트가 살고 있을 뿐이지만, 미국인은 지구 자원의 30퍼센트를 소비하고 전체 쓰레기의 30퍼센트를 생산한다. 미국인 1인당 하루에 2킬로그램의 쓰레기를 쏟아낸다.


미국적 삶이 번영을 뜻한다면 쓰레기는 그 지표이자 이면이다. 쓰레기의 역사가 인류 역사만큼 유구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쓰레기는 근대 산업화의 새로운 발명품이다. 미국의 경우, 17세기와 18세기 이민자들은 너무 가난해서 공산품이란 걸 써보지 못했으며 일상에서 버릴 것도 없었다. 깨진 도자기나 음식물 찌꺼기 정도가 그들이 버릴 수 있는 쓰레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쓰레기로 버려진다. 내용물이 비워지자마자 포장재는 곧장 쓰레기로 전락한다. 미국 제품의 약80퍼센트가 딱 한번 사용되고 버려지지만 재활용률은 미미하다. 대량 소비사회가 낳은 환경재앙이 코앞에 있다.


<사라진 내일>이 쓰레기 문제의 개관에 해당한다면, 퓰리처상 수상 경력의 언론인 에드워드 흄즈의 <102톤의 물음>(낮은산, 2013)은 최신판 종합보고서다. ‘쓰레기에 대한 모든 고찰’이란 부제에 걸맞게 쓰레기 문제의 모든 것을 다루고 실천적 제안까지 제시한다. 제목의 ‘102톤’이란 수치가 눈에 띄는데(원제는 ‘쓰레기학’이다) 미국인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만들어내는 쓰레기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실상의 일부일 뿐이다. 개인이 배출하는 쓰레기양이 그렇다는 것이고, 산업 쓰레기를 포함한 미국의 전체 쓰레기 배출량은 매년 100억 톤에 이른다. 이를 환산하면 미국인은 연 평균 35톤, 평생 2700톤의 쓰레기를 남기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에서 미국의 수출품 1위와 2위가 폐지와 고철이라는 점이다. “한때 세계 모든 나라를 위해 물건을 생산하던 미국이 중국의 쓰레기 분쇄압축기로 변모한 것이다.” 하지만 폐기물 수출이 쓰레기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을 기준으로 하자면 우리는 ‘102톤의 유산’이 어떻게 생겨난 것이며 그로부터 벗어날 방도는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저자의 대안은 상식적이게도 ‘낭비 없는 삶’이다. 쓰레기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 즉 기후 변화와 석유 정점, 에너지 비용 상승 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자각과 함께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다. 원치 않는 물건들을 거부하고, 중고품을 사용하며, 생수 구매와 식료품 비닐봉지 사용을 중단하는 것 등이 그가 제안하는 구체적 실천방안이다.

 

 


한편 쓰레기의 역사를 일람해보는 것도 쓰레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줄 것이다. 역사학자 수전 트레이서의 <낭비와 욕망>(이후, 2010)은 마음에 안 들거나 쓰기 싫어졌다는 이유로 물건을 내버리는 일이 현대문명사회의 큰 특징이라고 지적하는데, 너덜너덜해지거나 망가지지 않은 옷이나 가구를 버리는 건 20세기 중반까지도 일반인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령 <알뜰한 미국 가정주부>란 책의 1835년판은 돼지 여물통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기름 모으는 통에 들어가야 할 것이 돼지한테 가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런 태도를 낭비를 줄이기 위한 ‘오래된 지혜’로 삼을 수 있을까.

 

혹은 직접 쓰레기를 수집하는 체험을 해보는 것도 쓰레기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제프 패럴의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시대의창, 2013)는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8개월간 길거리에서 남이 버린 물건을 수집해 재활용한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범죄학자로서 그는 ‘소비와 낭비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큰 파괴행위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런 소비와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물건이 생산되고 소비되어 쓰레기로 버려지기까지 ‘물건의 일생’을 추적한 애니 레너드의 <물건 이야기>(김영사, 2011)도 필독해볼 만하다. 알면 사랑한다는 경구에 빗대자면, 알면 아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1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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