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다뤘다. 알다시피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내가 갖고 있는 것만 해도 6-7종이다), 작중에 나오는 'nice'의 번역을 중심으로 세 가지 번역본을 골랐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위대한 건, 혹은 대단한 건 개츠비, 아니 그의 본명인 개츠의 환상이라는 게 감상의 요지다. 이 환상은 곧 아메리칸 드림 자체이기도 하다.

 

 

 

한겨레(13. 11. 04) 위대한 건 개츠비의 ‘환상’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1925)를 읽고 나면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어째서 ‘위대한’ 개츠비인가. 주인공의 이름대로 ‘제이 개츠비’라고 하거나 ‘개츠비와 데이지’라고 했어도 무방했을 작품이다. 정작 피츠제럴드는 아내와 편집자가 고른 ‘위대한 개츠비’란 제목을 막판까지도 꺼렸다는데, 그래도 그가 마음에 두었다는 ‘황금모자를 쓴 개츠비’나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보다는 훨씬 더 그럴듯한 제목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대신할 뻔했던 제목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에서 웨스트에그는 개츠비의 저택이 있는 지명이고, 트리말키오는 로마시대의 소설 <사티리콘>에 등장하는 벼락부자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화려한 볼거리가 되지만, 소설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건 벼락부자 개츠비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사치스런 파티다. 5인조 편성이 아닌 완벽한 오케스트라가 동원될 정도다.

 

단지 부를 과시하거나 기분을 내보려는 파티가 아니다. 개츠비는 만(灣) 건너편 이스트에그에 사는 첫사랑 데이지가 파티 소문을 듣고 찾아와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데이지와의 재회는 옆집 이웃이자 소설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데이지와 친척뻘인 닉에게 부탁해 마련한 자리였다. 개츠비는 꿈에도 그리던 만남을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당혹스러워한다. “5년에 가까운 세월!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그의 꿈에 미치지 못한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데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환상 때문이었다. 그의 환상은 그녀를 넘어섰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열림원)

 

데이지밖에 모르는 남자가 개츠비이건만 그의 환상은 놀랍게도 데이지를 넘어선다! 여기에 개츠비의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닉에게 들려준 바에 따르면 개츠비의 부모는 실패한 농사꾼이었다. 그는 한번도 그들을 부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열일곱 살에 ‘제임스 개츠’라는 원래 이름을 ‘제이 개츠비’로 개명한다. 말하자면 개츠비는 개츠의 ‘이상적 자아’다. 놀라운 것은 그가 자기 이상 혹은 환상을 현실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비록 우연히 만난 벼락부자와 암흑가 거물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가 어릴 때부터 출세하기로 작정하고 철저하게 자기 계발에 애쓴 결과다. 개츠비판 아메리칸드림인 것이다.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그 아메리칸드림의 대미여야 했다. 그녀는 5년 전 그가 아직 출세하기 전에 처음 만난 ‘멋진’ 여자였다. ‘멋진’은 ‘나이스’(nice)의 번역인데, ‘우아한’(민음사)이나 ‘상류층’(문학동네)으로도 번역된다. 개츠비가 빈털터리라는 이유로 실연당한 걸 고려하면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다. 이제 자신 또한 상류층의 멋진 남자가 돼 돌아온 개츠비는 5년간의 공백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한다. 데이지에게는 톰 뷰캐넌과의 5년간의 결혼생활이다. 톰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해 달라는 개츠비의 요구에 데이지는 이렇게 말한다. “아아, 당신은 너무 많은 걸 바라는군요! 나는 지금 당신을 사랑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는 두 가지 환상에 도전한다. 처음엔 개츠비가 되는 것, 그리고 데이지의 완벽한 사랑을 얻는 것. 그 환상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고 또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진심이건 반어이건 위대한 건 개츠비가 아니라 그의 환상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13.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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