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요즘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자연스레 그의 <페스트>를 다루게 됐다(언젠가 <최초의 인간>도 이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번역본은 책세상판으로 읽었는데, 김화영 선생의 이 번역본은 민음사판으로 나와 있다. 부분적으로 같이 읽은 건 이휘영 선생의 번역이다(주인공의 이름을 '리외'로 옮긴다). 아마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번역본이지 않았을까 싶다. 고등학생 때 제일 처음 읽었던 건 주우 세계문학 시리즈의 <페스트>였다(돌이켜 보면 꽤 괜찮은 리스트의 전집이었다).

 

 

 

한겨레(13. 07. 08) 카뮈의 인간에 대한 ‘야심’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1947)는 애초에 한 가지 감옥살이를 다른 감옥살이로 표현해보려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최대의 걸작’이란 평판을 얻은 이 소설에서 페스트로 인한 오랑 시민들의 ‘감옥살이’는 일차적으로 작가와 동시대인들이 겪은 전쟁의 은유였다. 거기서 더 나아가 카뮈는 그 은유를 삶의 일반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하고 싶어 했다. 페스트는 죽음이란 인간 조건 자체를 비유할 수도 있다. 그 죽음은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의사 리유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 곧 ‘익숙하지 않은 죽음’이다.

 

작품의 또다른 주요 인물인 타루와의 대화에서 리유는 자신이 의사라는 직업을 그냥 한번 해볼 만한 직업 같아서 택했다고 말한다. 소위 ‘추상적인’ 선택이었다. 의사가 된 이상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한번은 어떤 여자가 죽는 순간에 “안 돼!”라고 외치는 걸 듣는다. “그때 나는 절대로 그런 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이 죽음과의 싸움,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세계의 질서와의 싸움은 일시적인 승리를 포함할지라도 언제나 패배할 수밖에 없다. 다만 리유는 불의와 마찬가지로 그런 죽음과는 타협하지 않고자 한다. 그것이 시시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반항’이다.

 

리유와 몇몇 동료가 환자를 치유하고 페스트의 확산을 막기 위해 결사적으로 애쓰는 가운데서도 페스트는 막무가내로 도시를 점령하고 사람들을 쓰러뜨린다. 많은 희생자들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한 어린아이의 죽음이다. 죄 없이 죽어가는 자의 오랜 고통 앞에서 주변은 신음과 흐느낌으로 채워진다. 페스트를 신이 내린 고통으로 수용하려는 파늘루 신부에게 리유는 격렬하게 외친다.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항의에 대한 신부의 대답은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라는 것이었다.

 

리유와 파늘루 신부와의 논쟁 장면은 흡사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 편을 방불케 한다. 이반 카라마조프 역시 신의 섭리가 무고한 어린아이의 고통을 대가로 구현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이반의 논리를 조시마 장로의 가르침과 대비하면서 여전히 인간의 지성을 넘어서는 사랑과 섭리의 편을 들고자 하지만 카뮈의 선택은 단연 파늘루 신부가 아닌 리유 쪽이다. 그렇더라도 어린아이의 무고한 고통과 신의 섭리에 대한 반항만을 주제로 삼았다면 <페스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아류작에 머물렀을 것이다.

 

 

카뮈는 타루와 리유의 대화 장면을 통해 한걸음 더 나아간다. 타루가 자신의 관심사는 신이 없이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라고 말하자, 리유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의식을 느끼며 자신의 관심은 그저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응답한다. 그러자 타루는 “그럼요, 우리는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어요. 다만 내가 야심이 덜할 뿐이죠”라고 정리한다. 만약 두 사람이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타루의 ‘성인’은 리유에게 ‘인간’이 된다. 타루에게 성인이라고 불릴 만한 이가 리유에게는 그저 인간일 뿐이라면 리유가 인간에 대해 훨씬 더 높은 기대와 야심을 가진 셈이 된다. 리유를 작가적 분신으로 내세운 카뮈는 대단한 야심가였다.

 

13.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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