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2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영장류 학자 다이로 마에스트리피에리의 <영장류 게임>(책읽는수요일, 2013)을 읽고 적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쓰인, 흥미로운 책이라는 게 독후감이다. 저자의 또다른 책으로 <마카키아벨리의 지능>도 번역되면 좋겠다...

 

 

주간경향(13. 04. 09) 엘리베이터에 낯선 두 사람이 거리를 두는 까닭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던질 수 있는 근본물음은 무엇일까? ‘생명이란 무엇인가’도 가능한 후보이지만, 보통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일 것이다. 동물도 아니고 신도 아닌 중간적 존재로서 자신을 규정하는 게 우리의 통상적인 이해, 혹은 지극히 ‘인간적인’ 자기 이해다. 하지만 영장류 학자들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영장류 및 인간행동에 관한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진화생물학자 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의 <영장류 게임>(책읽는수요일)에서 초점은 ‘우리 안의 영장류 본성’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영장류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기에 영장류 본성의 특수한 변형일 따름이다. 우리의 사회적 게임이 영장류 게임인 이유이고, 영장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자기 이해인 이유다.


물론 인간의 사회적 행동, 곧 사회적 게임이 벌어지는 ‘경기장’은 바뀌었다. 영장류가 진화해온 과거의 환경조건과는 너무도 판이하기에 우리는 자신의 영장류 본성에 대해서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이렇게 바뀐 조건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영장류 게임의 플레이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령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타게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엘리베이터는 분명 근래에 발명된 것이지만, 좁은 공간에서 타인과 매우 가까이 있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다. 과거에 서로 모르는 두 원시인이 좁은 동굴에서 조우하는 것은 흔하게 일어날 법한 일이다. 그때 보통은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머리를 몽둥이로 후려치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된다.


하지만 언제나 상황이 만만한 것은 아니며 상대를 공격하는 중에 자신이 입을 수 있는 상해도 고려해야만 한다. 좁은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싸울 것인가, 싸우지 말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우리는 매우 높은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영장류가 싸움을 피하는 동물은 아니지만 갇힌 공간에서의 싸움에서는 양쪽 모두 큰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보통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저자의 실험에 따르면 이런 행동은 원숭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두 마리의 붉은털원숭이가 작은 우리 안에 갇히게 되면 그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싸움을 피하려고 한다. 상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은 위협 신호이기 때문에 이들은 허공이나 땅을 쳐다보기도 하고 우리 밖 가상의 지점을 응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무관심한 척하는 것으로도 긴장이 누그러지지 않으면 이빨을 드러냄으로써 친하게 지내자는 의사를 전달하고 서로의 몸을 손질해준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에 동승한 두 사람이 서로 몸을 손질해주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인간은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몸손질을 대신한다.


엘리베이터 문제에서도 시사를 얻을 수 있지만 영장류의 행동은 언제나 비용이 덜 드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저자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 또한 그러한 적응의 산물로 본다.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둘이 싸우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협상을 통해 타협에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전략 모두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에 서로 지배-복종 관계가 형성되면 의견이 불일치할 때마다 싸우거나 협상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지배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분쟁의 소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연인이나 부부 간의 다툼을 이런 시각에서 보게 되면, 가장 안정적인 커플은 비대칭적인 지배관계가 형성된 커플이다. 즉 둘 중 한 사람이 양보하게 되면 저녁 메뉴나 리모컨을 두고 파국적인 분쟁으로까지 치닫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나 영장류 동물에게서 지배 욕망은 매우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지배가 개입되지 않은 인간관계는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모든 지배에는 책임이 따르며 또한 지배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우리의 영장류 본성에 대해 되짚어보도록 해주는 유익한 책이다.

 

13. 04. 02.

 

 

P.S.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이탈리아 출신인데 로마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시카고대학에서 진화생물학과 행동신경과학 등을 강의한다. 매 장이 흥미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만 저자는 3장 '마파아 본능'에서 자신이 왜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 대학에서 일자리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는지를 털어놓는다. 이탈리아 족벌주의의 생생한 사례와 체험담이 마피아 영화 뺨친다.

 

 

책은 내용뿐만 아니라 번역도 만족스러운데, 옥에 티가 있다면 같은 책명이 다르게 번역돼 있다는 점이다. 로버트 프랭크의 같은 책이 <이성 내의 열정 Passions Within Reason>(221쪽), <이성 속의 열정 Passions Within Reason>(229쪽)이라고 두 가지로 옮겨진 것인데, 제목도 통일하는 게 낫겠고 병기된 원서명도 한 번 제시하는 것으로 족하다. 편집자가 체크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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