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1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제목에 이끌려 <왜 학교는 예술이 필요한가>(열린책들, 2013)를 읽고 쓴 것이다. 교육 관련서로는 리처드 거버의 <오늘 만드는 내일의 학교>(열린책들, 2013)과 함께 같이 읽어볼 만하다. 특히 교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리뷰 말미에 언급된 하버드 대학의 교육학자 셰플러의 책으론 <하버드 대학의 학자들>(민음사, 2009)이 번역돼 있다. <왜 학교는 예술이 필요한가>에서는 '이즈리얼 셰플러'로, <하버드 대학의 학자들>에서는 '이스라엘 셰플러'로 표기돼 그냥 '셰플러'라고만 적었다.

 

 

 

주간경향(13. 03. 26) 예술을 통한 실패의 경험은 황홀하다

 

학교에서 예술 교육은 어떤 위상과 의미를 갖는가?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예술은 즐거운 교과활동이지만 필수 교육과정에는 속하지 않는다거나 재능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의견이 나올 법하다. 우리만의 특별한 반응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예술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다수의 견해는 그렇다고 하니까. 인지발달 심리학자이자 교육자인 제시카 호프만 데이비스의 <왜 학교는 예술이 필요한가>(열린책들, 2013)는 제목 그대로 예술 교육에 대한 강력한 옹호를 담은 일종의 ‘선언문’이다. 예술 교육을 소극적으로 옹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예술이 교육의 전면과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부모나 교사들도 대개는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교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교육일정을 짜면서 우선순위가 문제될 경우 가장 먼저 배제되기 십상인 과목이 바로 예술 교과다. 가치는 인정하지만 더 중요한 학과 공부는 따로 있지 않느냐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그래서 예술 교육의 옹호자들조차도 예술 학습이 수학, 읽기와 쓰기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입증하려고 한다. 하지만 수학 공부가 목탄 드로잉을 하는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게 저자의 반문이다. 그의 입장으론 ‘교육 내 예술’의 가치는 더 잘, 그리고 더 강력하게 옹호되어야 한다. 과학이 중요하다면 예술도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위에 세우고 상상하는 것, 그것은 과학이다. 그 주어진 것을 넘어서 상상하는 것, 세우는 것, 보는 것, 그것은 예술이다.”


저자는 예술작품이 갖는 독특한 특성, 곧 구체적 생산물을 수반하며 감정에 주목하고 모호성의 세계를 보여주며 과정 지향적이고 예술 활동을 둘러싼 연관성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특별하기 때문에 예술 교과 역시 독특하고 다른 과목으로 대체될 수 없다고 본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실패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예술의 필요성을 옹호하는 부분이다. 예술이 여러 다른 영역에서 성공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성공할 기회를 준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여러 다른 영역에서 성공한 아이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 예술의 의의다! 인간이 실수를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는 존재라면 예술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교육활동이다. 완전무결한 성공에 집착하는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서는 “위험하고 신랄하고 생산적이고 중요한 실패와의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왜 실패가 중요한가? 그것은 물론 실패를 통해서 우리가 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바로 그런 긍정적인 실패의 경험을 제공한다. 예술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다. 잘못 색칠한 그림을 통해서 아이는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틀린 음정을 인지함으로써 아이는 다음에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배운다. 가능한 여러 동작을 시험해봄으로써 아이는 어떻게 춤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체득한다. 예술은 아이가 ‘새로 시작할 지점’을 알려준다. 무수한 실패의 고비가 아이의 인생길에 놓여있다면, 그리고 그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면 예술이야말로 핵심 교과가 아닐 수 없다.


 

하버드대학의 교수였던 저명한 교육철학자 셰플러는 어릴 때 바이올린을 배웠고 자신이 꽤 잘하는 걸로 생각했다. 직업연주자도 꿈꾸었던 그였지만 열두 살 때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야사 하이페츠의 연주를 라디오에서 듣고 꿈을 접었다. 명연주자의 천재성에 압도돼서다. 하지만 그에게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나는 그 순간에 내가 바이올린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는 그렇게 해서 내가 야사 하이페츠의 연주를 진정으로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패의 경험마저도 우리를 황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예술은 특별하다. 아이들은 실패할 권리가 있다.

 

13.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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