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1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의 단연 화제작인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 2013)를 읽고 적었다. 저자의 고백에 따르면 앞으로 더 자주 글쟁이 유시민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생각해보니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과 함께 읽는 러시아 이야기>,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청춘의 독서>, <국가란 무엇인가> 등이 그간에 읽은 책이다.

 

 

주간경향(13. 03. 12) 정치인 유시민이 아닌 글쟁이 유시민의 고백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치인 유시민을 성원해주셨던 시민여러분, 고맙습니다. 열에 하나도 보답하지 못한 채 떠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지난 2월 20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유시민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그의 인생론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가 출간됐다. 그의 은퇴가 적어도 책을 준비하는 기간만큼은 숙고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담백하게 말하는 책을 그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나게 된 ‘은퇴 이유서’로도 읽을 수 있는 이유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라고 단서를 단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프롤로그 제목을 따자면 ‘나답게 살기’다. 자신의 생업이 ‘지식소매상’이라고 말하는 유시민은 정치인 시절에도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대한민국 개조론>, <후불제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등이다. 독서편력을 다룬 <청춘의 독서> 정도가 예외일까, 모두 정치인 저자다운 주제의 책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런 이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순전히 ‘글쓰는 사람’으로서 썼다고 고백한다. 그 결과가 “쉰다섯 살 먹은 중년 남자”이면서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쓴 인생론이다


인생론이라면 의당 성공한 인생의 조건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유시민은 일과 놀이가 인생의 절반이며 사랑과 연대가 그 나머지 절반이라고 말한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가 그의 구호다. 일과 사랑에 대한 언급은 유별나지 않지만 놀이와 연대에 대한 강조는 눈에 띈다. “나는 노는 게 좋다. 일도 좋지만 노는 건 더 좋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그래서 일중독으로 유명한 박원순 시장 같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봐야 대단한 놀이꾼은 아니고 낚시와 당구를 즐기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보다 놀이가 좋다는 건 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결정권’이 행사되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억지로 논다면 놀이가 아니라 일일 테니까.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설계하지 않았고, 그래서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오직 남을 위해 산 건 아니더라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은 훌륭한 삶이 아니라는 관념에 눌려서 살아왔다는 게 자기 분석이다.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하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강제로 징집됐던 유시민에게 정치는 운동의 연장이었다. “내게 정치는 스무 살에 야학교사를 한 것과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하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다는 것이다.


정치가 연대의 한 방법이었지만 정치의 일상이 즐겁지 않았다면 그가 이제라도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다. 정치인 유시민보다 글쟁이 유시민을 더 반겼던 독자들에게도 좋은 일이고. 그렇다고 연대의 가치가 포기되는 건 아니다. 그는 글을 써서 자기 생각과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남들과 나누는 행위가 기쁘고 즐겁다고 말한다.  


아이러니가 없는 건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영등포구치소에서 쓴 ‘항소 이유서’로 문명을 떨치게 된 그가 스파르타식 글쓰기 훈련을 한 곳이 학생운동을 하다 체포돼 자술서를 쓰던 경찰청 특수수사대 감옥이었고, 글 쓰는 재능을 발견한 게 계엄사 합수부 조사실에서였다니 말이다. 아무튼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글쟁이 유시민이 기대하는 건 독자가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 그런 쓸모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럴 때 글쓰기는 단순한 생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출간되자마자 일찌감치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것으로 보아 일단 그의 기대는 충족되는 듯 보인다.

 

13.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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