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1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이중톈의 신작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중앙북스, 2013)를 읽은 인상을 적었다. 같이 읽어볼 만한 중국 고전과 그 해설서를 더 골라놓는다.

 

 

 

주간경향(13. 02. 26) 고전에서 찾은 ‘중국의 지혜’

 

중국 고전 해설서가 적지 않게 나와 있고 고전 해설가도 안팎으로 드물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저자는 이중톈이다. 중국 CCTV의 인문강연 프로그램 ‘백가강단’을 통해서 이미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모은 스타급 강사이고 저자인지라 따로 소개를 붙이는 게 불필요하긴 하다. 그럼에도 특별히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 건 중국 선진(先秦)시대 대표적 사상 유파인 유가, 묵가, 도가, 법가의 핵심을 짚어준 <백가쟁명>을 무릎을 치면서 읽었기 때문이다. 이후엔 ‘이중톈의 모든 책’을 읽을 용의를 갖게 됐다.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는 자연스레 손에 들게 된 그의 신작이다. 번역본 제목이 사실 내용에 잘 부합하지는 않는데, 원제는 <중국지혜>이고 <백가쟁명>에 이어지는 책이다. ‘중국의 지혜’를 주제로 한 여섯 차례의 강연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인데, 이중톈은 ‘주역의 계시’, ‘중용의 원칙’, ‘병가의 사고’, ‘노자의 방법’, ‘위진의 풍도’, 그리고 ‘선종의 경계’를 중국을 대표하는 여섯 가지 지혜로 꼽았다. ‘위진의 풍도’ 정도가 생소할까 나머지 주제는 모두 보고 들은 게 없지 않아서 어림해볼 수 있겠다 싶지만 막상 읽어보면 왜 ‘이중톈 현상’이란 말까지 나왔는지 알게 해준다. 몇 가지만 따라가 본다.

 


‘주역의 계시’를 다룬 장에서 저자는 <주역>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우환의식, 이성적 태도, 변혁정신, 중용 원칙, 네 가지라고 요약한다. 주나라 사람들은 농업민족이기에 비가 적게 와도 걱정, 많이 와도 걱정, 우환을 안 가질 수 없었다. 그건 자명하다. 거기에 저자는 주나라가 너무도 빨리, 그리고 쉽게 승리를 쟁취한 승자이기 때문에 우환을 갖게 됐다고 덧붙인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역경>의 마지막 제63괘 기제(旣濟)와 제64괘 미제(未濟)에서 읽어내는 게 이중톈식 해설이다. 만사를 이루었다는 괘 다음에 아직 다 이루지 못했다는 괘가 이어지는 꼴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성공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다시 아직 성공하지 않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주역의 지혜다.

 

 


저자는 ‘중용의 원칙’에 대해서도 많이 접하지 못한 해석을 보탠다. 일단 ‘중(中)’은 극단으로 가지 않음이고 ‘용(庸)’은 현실과 동떨어진 번지르르한 말을 하지 않음이라고 풀이한다.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능히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수의 성인군자만 실행할 수 있는 도덕을 강요한다면 거짓군자만 양산할 뿐이다. 그것을 이중톈은 “직(直)으로 원한을 갚고, 은덕으로 은덕에 보답하라(以直報怨, 以德報德)”는 공자의 가르침을 갖고서 풀이한다. ‘이직보원’에 대해 일부 학계에서는 ‘원한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해석하나 그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정도로 해석한다. 어떤 선택을 할 때 그것이 마땅한지, 그리고 가능한지 살펴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원칙 없이 처리하는 것도 아니고 원칙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공자의 ‘중용지도’란 이런 것이기에 “대단히 실제적이고 탁월할 뿐더러 정확하다”고 이중톈은 평한다.

 

 


<손자병법>을 다룬 ‘병가의 사고’에서도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라고 손자가 말한 대목에 타당한 해석을 제시한다. 일부에서는 손자가 평화주의자라는 주장도 펼치지만 성을 공격하기 전에 적군의 군사능력을 크게 떨어뜨려 저항할 수 없도록 하고 부전승을 얻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요컨대 손자는 결코 평화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전략가로서 그의 주된 관심은 전쟁의 경제학이었다고 저자는 정리한다. 단순해 보일지라도 한 수씩 더 짚어줌으로써 중국 고전을 보는 안목을 한 단계 높여준다고 할까. 저자는 주마간산식으로나 중국 지혜의 정화를 훑어볼 수 있게 했다고 했지만, 두꺼운 책을 통해 자세히 말하지 않고도 핵심을 전달하는 능력이야말로 고수의 미덕이다.

 

13. 02. 20.

 

 

 

P.S. ‘노자의 방법’은 물론 <노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남회근의 강의록 <노자타설>(부키, 2013)이 최근에 나왔다. ‘위진의 풍도’에서 주로 인용하고 있는 책은 <세설신어>인데, 분량이 방대하며 번역본도 여러 종이다. ‘선종의 경계’에서는 육조 혜능까지, 그리고 혜능 이후의 선사들의 지헤를 말하는데, <육조단경>(불광, 2008)이 번역돼 있다. 내가 재밌게 읽었던 건 김용옥의 <헤능과 셰익스피어>(통나무, 199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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