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설 합병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먹을 거리가 풍성하고 또 많이 먹게 되는 설 밥상을 염두에 두고 존 앨런의 <미각의 지배>(미디어윌, 2013)를 골랐다. 과학정보가 많이 포함돼 있어서 빨리 읽히지는 않지만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책들도 더 읽어보고픈 욕구를 부추기는 책이다. "인류 진화사와 현대 생물학을 결합하여 ‘먹는 자’와 ‘먹을 것’에 관한 신선한 아이디어의 만찬을 우리에게 융숭히 대접하고 있다! <미각의 지배> 음식에 담긴 심오하고 다양한 의미를 해석한 매력적인 책"이라고 추천한 리처드 랭엄의 <요리 본능>(사이언스북스, 2011)과 출간시 화제가 됐던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2008)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다. 독서가 진화적 본능일 리 없지만 다양한 책을 읽어야만 지적 허기가 충족되는 독서본능은 혹 요리본능이 변형된 게 아닌가란 생각도 문득 든다... 

 

 

 

시사IN(13. 02. 09/16) 인간, 참 이상한 잡식동물

 

인간을 통상 ‘생각하는 동물’로 규정하지만 좀 더 구체화하면 어떻게 될까. 가령 <미각의 지배>(미디어윌)의 저자 존 앨런에 따르면 인간은 ‘생각하는 잡식동물’이다. 혹은 이렇게도 변주된다. ‘음식을 생각하는 동물’. 신경문화인류학자라는 직함의 저자는 신경과학과 문화인류학을 접목하여 “인간이란 종이 어떻게 두뇌를 사용해 음식을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이 분야의 다양한 연구성과를 흥미로운 사실들과 함께 요리해놓았다.

 

 


압축하면 ‘인간은 두뇌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 모든 동물은 먹어야 산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음식에 관해서 인간만큼 높은 수준의 인지능력을 가진 동물은 없다. “인간 외에도 잡식동물은 있지만 인간의 잡식성은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러니 ‘초잡식동물’로서 인간의 식이행동은 동물적인 행동이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행동이다.


인간은 어쩌다가 그토록 다양한 음식을 먹게 됐을까. 진화사의 초기에 최초로 직립보행을 한 유인원이 나타났다. 두발로 걷는 유인원이 수백만 년에 걸쳐 여러 종으로 진화했고 아프리카대륙을 벗어나 세계 각지로 이동했다. 보통 영장류는 포유류와 달리 나무 위에서 서식하는데, 직립보행을 하면서 인류의 조상은 숲에서 나오게 됐고 식물성 음식뿐 아니라 동물성 음식, 즉 고기도 섭취하게 됐다. 즉 어느 시점에선가 초식동물에서 잡식동물로 변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모든 생활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집단적 협력과 함께 노동의 분화가 필요했고, 지능이 높아져야 했기 때문이다.


두뇌 크기 증가는 인간 진화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부피로만 따지면 두뇌는 신체의 2%트에 지나지 않지만 안정시대사율의 20-25퍼센트가 두뇌 때문에 발생한다. 그 비율이 다른 영장류의 경우 8-13%이고, 포유류는 3-5%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에너지 소모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육류와 고칼로리 식물성 음식의 섭취가 해법이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소장은 다른 영장류의 60% 수준이다. 소장이 작기 때문에 절약할 수 있는 열량이 큰 두뇌를 유지하는 데 투입된다.


잡식성으로의 변화와 함께 인간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불을 이용한 조리 기술의 발견이다. 불을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식재료들을 바삭한 음식으로 바꾸어 먹을 수 있게 됐다. 저자의 추정에 따르면 우리가 바삭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원래 영장류가 즐겨 먹던 곤충의 맛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식이행동에는 문화적 선호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가령 왜 미국인들은 간편한 음식을 좋아하고 프랑스인들은 탐미적인 식사문화를 즐길까. 뜻밖에도 서로 다른 음식문화의 이념적 뿌리는 똑같이 평등이다. 구대륙에 비해 식량이 풍부했던 미국은 음식문화의 평등이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것을 의미했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음식의 맛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사회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간주됐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음식을 심미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음악과 미술을 토론하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허용된 주제였다. 그것이 어떻게 평등이란 이념에 부합하는가. 미식가의 세계에서는 돈도 권력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오직 먹는 사람의 입과 음식의 관계에서만 결정된다는 것.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한국식 통념과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13. 02. 09.

 

 

 

P.S. 영어 단어 'food'를 '음식'이 아니라 '식량'으로 옮길 경우에는 문제의 지평이 달라진다. 당연히 읽을 책의 종류도 달라지는데, 식량 문제를 다룬 책들도 드물지 않게 출간되고 있다. 톰 스탠디지의 <식량의 세계사>(웅진지식하우스, 2012), 제니퍼 클랩의 <식량의 제국>(이상북스, 2013), 에릭 밀스톤, 팀 랭의 <풍성한 먹거리 비정한 식탁>(낮은산, 2013) 등을 꼽아볼 수 있다. 마지막 책은 식량 문제를 총체적으로 일람하게 해주는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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