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김삼웅 선생의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현암사, 2012)을 골랐다. 물론 대선을 염두에 둔 선택이기도 했다. 엊그제 영화 <남영동 1985>도 봤는데, 고인이 겪은 시대의 어둠이 이 땅에서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멀리 갈 것도 없이 MB시대가 재탕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지가 기필코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투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간경향(12. 12. 25) '민주화 운동의 대부'가 걸어온 길

 

김삼웅의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은 제목 그대로 김근태 평전이다. 지난 연말 우리 곁을 떠난 김근태의 삶은 어떤 것이었나. 1947년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근태는 고등학교 때까지 ‘범생’이었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하느라 사회문제에는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 김근태는 1965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진학한다. 상대를 선택한 것도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박정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대한 대규모 반대시위가 번져가던 대학가의 분위기 속에서 김근태는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진보적인 사회과학 서적을 통해 현실과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그는 운동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한다. 그가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대학에서 제적돼 강제징집을 당한 게 1967년 10월이다. 1970년 가을 대학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시국은 악화일로였다. 김근태는 1971년 11월 마지막 학기에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수배자 신세가 된다.

 



피신 중에 김근태는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상담과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에서 “그는 70년대에는 물 위에 떠오르지 않았다/ 인천 어딘가/ 후텁지근한 이 공장 저 공장에 스며들어가/ 자격증 네 개 다섯 개 땄다/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장 따위는 던져도 좋았다/ 공장에서/ 떳떳한 호모 파베르였다”고 노래했다. ‘하얀 양초 같은 얼굴’의 김근태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은 1983년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하고 의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민청련 의장을 맡으면서 김근태는 청년민주화운동의 리더로서 본격적인 정치투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처음 이슈화한 민청련은 전두환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간부 전원에게 수배령이 떨어지면서 김근태는 체포된다. 1985년 9월 그는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로 이송돼 그곳에서 22일간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영화 <남영동 1985>의 소재가 된 사건이다. 권력 유지에 급급했던 전두환 정권은 인권과 법질서를 무시했다

정권의 하수인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한 김근태는 거짓 자백을 하고 수감되지만 다행스럽게도 고문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주화운동은 더욱 강렬하게 불붙었다. 1986년 6월 부천서 성고문에 이어서 1987년 1월에 터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결국 6월 항쟁을 불러왔다. 김근태는 1988년 6월 가석방됐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결성과 활동으로 1990년 다시 구속된 그는 1992년 8월에야 자유의 몸이 된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가 걸어온 삶의 이력이다.

민주화 이후 그의 일차적인 관심은 민주대연합론을 통한 정권교체였다. 그 핵심은 ‘재야와 제도야권의 결합’인데, 그는 “의회를 통해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를 위해 재야운동에서 간디의 길(사회운동)과 네루의 길(정치운동)이 결합돼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그는 간디의 길에서 네루의 길로 접어든다. 가장 성실한 의원이자 장관이었으며 언론에서도 그를 차세대 지도자감으로 꼽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대중정치인’이 아니었다. 시대를 조금 앞선 탓인지도 모른다. ‘비정치적인’ 정치인이 새로운 정치의 희망으로 주목받는 2012년에 그의 빈 자리는 크게 느껴진다. 그 빈 자리는 ‘2012년을 점령하라’는 그의 유언을 지킴으로써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1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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