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오전에 방한중인 마이클 샌델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한겨레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고, 비교적 많은 분량이 지면에 실리게 됐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와이즈베리, 2012) 출간이 이번 방한과 인터뷰의 계기가 됐지만 개인적으론 '공공철학자로서 샌델'이란 모습이 드러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동행했던 최원형 기자의 정리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2. 06. 04) 마이클 샌델 “내 철학은 민주적 시민정신…”

 

‘인터넷 서평꾼’ 이현우, 마이클 샌델을 만나다

2010년 국내 출간된 마이클 샌델(59)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치철학서로는 드물게 100만부 넘게 팔리는 등 ‘공정사회’ 담론과 맞물려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샌델로부터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즉각적인 대답을 얻어내려 하거나, 샌델을 보수적인 ‘공동체주의자’로 규정하는 등 그의 입장을 곡해하거나 비판하는 흐름도 적지 않았다. 지난 1일 서울 한 호텔에서 최근 새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들고 방한한 샌델을 ‘인터넷 서평꾼’인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가 만났다. 이번 만남은 샌델의 정체성이 더 좋은 사회를 위한 공적 토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공철학자’임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샌델은 이날 저녁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강연에도 나와 ‘팝가수 레이디 가가 공연에 암표는 허용될 수 있는가’ ‘가수 비나 축구선수 박주영이 군 복무를 면제받아야 하는가’ 등 일상생활 속의 도덕적 딜레마들을 특유의 화법으로 제시하며 1만4000여명의 청중들과 토론하기도 했다.

 

 

 

이현우(이하 이) 당신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반향이 일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또 책이 한국 사회에서 수용되는 과정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은 혹시 없는가? 한국 지식인층에서는 당신의 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꽤 나오기도 했다. 특히 당신의 철학적 입장을 ‘공동체주의’로 생각하고 자민족중심주의나 공동체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이클 샌델(이하 샌델) 오래전부터 있었던 오해다.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국내에선 <정의의 한계>로 소개됐다) 2판 서문을 통해 똑같이 공동체주의라고 불리더라도 내가 동의하지 않는 공동체주의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최근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가 국내에 소개돼 여태까지 한국에서 빚어진 오해는 조금 불식되리라 본다. 이 책에서 당신의 입장을 공동체주의와 구분짓기 위해 ‘공화주의’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당신을 ‘공화주의자’로 이해해도 좋은가?

 

샌델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공화주의는 시민 생활과 민주주의적 시민정신의 미덕 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자유주의·공동체주의와 다른, 그 사이에 있는 제3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철학’을 강조하는 입장을 드러낸 <왜 도덕인가?>(책의 원제는 ‘공공철학’)를 쓰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익숙지 않은 개념인데, 공공철학이 무엇인지, 그 필요성이나 의의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샌델 공공철학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포함해 나의 전체 저술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주제다. 철학적인 생각들을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삶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취지다. 사생활에서나 시민적 삶에서나 철학적 문제를 포함한 중요한 문제들, 곧 정의가 무엇이고 공동선이란 무엇인지, 시민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시장에서 돈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책을 관통하는 관심은 (삶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을 활성화하고 논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대학의 학자들만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우리 모두가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 공공철학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공공철학에 대한 열정은 어떤 계기로 생겼나? 철학을 처음 공부할 때부터 있었던 것인가?

 

샌델 고등학교 시절부터 토론을 좋아했다. 언제나 정치와 정치적 논의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철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고, 대학에 와서도 철학보다는 정치, 역사, 경제 등의 영역에 관심을 가졌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부터 철학에 매혹됐고, 학위를 딴 뒤에도 정치적인 토론과 철학을 연결시키는 데 관심을 갖고 지금까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당신은 시장경제를 도구로서 갖고 있던 사회가 시장이 삶의 모든 영역을 잠식하게 하는 ‘시장사회’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하면서 ‘불평등’과 ‘부패’의 문제를 다뤘다. 두 가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또 최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점거하라’(오큐파이) 시위 운동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샌델 돈과 시장이 건강, 교육, 가족 생활, 시민 생활 등과 같은 영역에까지 확대되는 것에 대해 ‘불평등’과 ‘부패’ 두 가지 관점에 근거한 우려가 있다. 예컨대 돈을 써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면, 돈으로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없는 부모들에게는 불공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또한 대학 진학의 원래 의미와 목적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부패’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은 학문적 우수성을 추구함으로써 명예를 얻고자 하는곳이지, 경제적 수익을 추구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공정성에 근거한 반대와, 부패에 근거한 반대를 구분해야 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우리는 고등교육에 있어 공정성뿐만 아니라 재화의 존엄성까지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거하라’ 시위 운동은 불평등에 관한 문제제기다. 대중들은 ‘긴급구제’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들의 세금으로 월가와 은행을 구제하는 것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월가와 은행들은 경기가 좋을 때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경제 위기를 자초했는데, 그들이 일으킨 손실은 국민 세금으로 메우게 됐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가 일어난 뒤로 이런 불공평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고, 이 문제는 아직 풀리지 못한 상태다.

 

새 책에서 경제학자들이 옹호하는 ‘인센티브’에 비판을 가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샌델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효율성을 근거로 들며 내 비판에 반대한다. 그들은 시장은 중립적이어서 재화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경제적 효율성만이 유일한 가치는 아니며, 비시장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같은 물질적 재화는 누군가 나에게 팔든, 선물로 주든 그 가치가 변하지 않고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선생님과 학생, 민주적 시민들 사이의 관계, 교육이나 건강 등의 영역에는 비시장적인 가치가 있고, 여기에 시장 메커니즘을 적용하면 시장적 가치가 비시장적 가치를 밀어내게 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당신은 책 속에서 “미국의 경우 시장경제를 가진 사회에서 시장사회로 이행하는 데 30년이 걸렸고, 그건 공적토론이 약화됐던 시기와 일치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또 다시 30년 이상이 걸릴까?

 

샌델 좋은 질문이지만 답은 모르겠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의 어린이집 사례가 있다. 아이를 찾으러 늦게 오는 부모들을 일찍 오게 하려는 생각으로 벌금을 매겼더니, 벌금을 ‘요금’이라 생각하고 오히려 늦게 온 부모들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시장적인 가치가 비시장적인 가치를 몰아낸 대표적인 경우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일을 겪은 뒤 벌금 제도를 폐지했지만 그 뒤로 더 많은 부모가 더 늦게 오게 됐다는 점이다. 의무감, 책임감 같은 비시장적 가치가 인센티브에 근거한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해체·잠식·변질되면, 다시 복원시키기가 어렵다. 물론 대중은 지난 30년 동안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런 변화를 반영한 정치적인 논의도 최근 시작한 듯하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오직 시간만이 알 수 있다.

 

당신은 ‘시장 대 도덕’의 프레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현재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시장을 도덕화하려는 시도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덕적인 시장과 자본주의, 박애적 자본주의 등 ‘착한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다. 당신은 ‘시장은 도덕적일 수 없다’는 전제를 갖고 있어 이와는 입장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샌델 그런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견해에도 동의한다. ‘도덕적 시장’이란 말을 무슨 뜻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그것이 교육, 건강, 시민·가족 생활 등의 영역에 시장이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제한되어야 한다는 의미라면 나의 견해와 일치한다.

 

나는 ‘도덕적 시장’이라는 것이 하나의 형용모순으로서,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샌델 나는 시장이 어디에 속하고 어디에 속하지 않은지에 대한 공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시장이 어떤 때에 ‘공공선’(public good)에 도움이 되며, 또 어떤 때에는 비시장적인 가치를 해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토스터, 텔레비전과 같은 물질적 재화에 대한 수요가 있을 때에 시장은 효과적인 도구다. 그러나 건강, 교육, 인간관계, 시민·가족 생활 등의 영역에서 시장적 가치와 돈은 비시장적인 가치를 해친다. 따라서 인간 활동의 어떤 영역이 시장에 의해 바람직하게 지배되고, 어떤 영역이 시장 대신 다른 가치에 의해 지배되어야 하는 것인가 등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센티브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인센티브가 사람을 도덕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는가?

 

샌델 인센티브 자체로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인센티브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일들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마다 보상으로 돈을 주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돈을 받기 위해 책을 읽지만, 점점 재미를 붙이면 나중엔 돈을 받지 않아도 독서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줄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읽는 잘못된 습관만을 주게 될 수도 있다. 이게 내가 걱정하는 바다.

 

당신이 말하는 공적인 토론은 강의실 바깥에서도 유효한가? 미국이나 한국이나 현실 속 공론장은 왜곡되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결혼을 지지했다가 보수파들로부터 정치적 공격을 받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에서는 최근 진보정당이 내부 경선 과정의 부정·부실 의혹 때문에 많은 도덕적 비난을 사고 있다. 현실 정치에서 도덕적 가치를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

 

샌델 공적인 토론은 강의실 바깥에서도 물론 유효하다. 당신의 말대로 현실 정치에서는 왜곡도 생겨난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행위들은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다. 그걸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적 담론을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생각을 진지하게 견지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설득의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설사 그것이 왜곡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더라도 말이다.

 

한국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그 (민주적) 시스템을 남용할 위험을 안고 있다. 돈의 위력이 정치와 정치운동에서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은 그런 남용의 한 사례다. 이는 미국 사회도 늘 갖고 있는 문제다. 돈의 위력이 커질수록 부패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는 민주주의적 평등의 이상과 시민들의 평등한 목소리를 왜곡시킨다.

 

공적 토론을 위한 역량을 쌓기 위해선 ‘독서’가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마침 올해는 한국 정부가 정한 ‘독서의 해’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은 한 달에 한 권 정도로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원활한 공적 토론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독서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샌델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독서는 시민으로 하여금 역사와 경제, 현재 세계적인 이슈, 다른 사회 등에 대해 알게 해준다. 그런데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무엇을 읽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교육, 역사, 경제, 철학 등을 아는 것이다. (독서는) 양보다 질이다.(정리 최원형 기자)

 

12. 06. 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