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다른 분야의 강의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내게 가장 친숙한 건 문학이다. 문학을 읽고 음미하다 보니 문학이론 공부를 하게 됐고, '이론'이란 것이 거의 문어발 수준이어서 여러 분야로 관심이 확장돼 간 것이니 결국 모든 일의 시작은 문학이었다. 문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새삼스런 얘기를 꺼낸 건 이번주에 '그래, 문학이었지!'란 사실을 상기하게 해준 책들이 여럿 출간됐기 때문이다. <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자음과모음, 2012)에서 따오자면 이번주는 '문학 읽는 시간'으로 충만하다(철학 전공자라면 이번주에 나온 칸트의 <윤리형이상학>(아카넷, 2012)이나 <들뢰즈 개념어 사전>(갈무리, 2012)을 손에 들고 가벼운 흥분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문학 안에서라면 모두가 '친구'라고 할 만한 이들의 책이다. <정여울의 문학멘토링>(이순, 2012)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를 변함없이 매혹시키는 문학의 힘을 '문학과 담을 쌓고 살고 싶은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 문학이 좋긴 하지만 왠지 부담스러운 독자들에게, 문학이 좋진 않지만 왠지 모른 척할 수 없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문학과 친구가 되는 법, 문학과 연애하는 법을 알려주는 다정한 멘토가 되기를 바란다.    

문학에 매혹된 자, 여전히 그 매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자의 바람을 적은 말이다. 그 매혹의 힘에 나도 기꺼이 한 표를 던지는 자이니 '문학과의 연애'는 나의 연애이기도 하다.

 

 

 

때로 그 연애는 나이 먹은 연애이기도 하다. 중견평론가 황종연의 <탕아를 위한 비평>(문학동네, 2012)은 실로 아주 오랜만에 나온 저자의 두번째 평론집이다. <비루한 것의 카니발>(문학동네, 2001) 이후 우리는 모두 10년 이상씩 나이를 더 먹었다. 그 10년의 공백 끝에 돌아온 탕아? 그 '변명'의 자리에 저자는 '비평'을 갖다놓았다. 그 비평엔 어떤 만감과 회의가 진하게 배어 있다.

사실,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실천으로서의 문학은 진작에 효력을 상실했다. 오늘날의 문학에 뭔가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역사 이후에 남아도는 인간 특유의 욕망, 바타이유가 말한 의미에서 쓸데없는 부정성을 포용하기 시작한 덕분일지 모른다.

거기에 "문학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비평을 시작한 이후 나의 뇌리를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는 고백까지 저자는 보태고 있지만, 그의 회의가 문학에 대한, 문학이라는 역어에 대한, 민주화 이후의 정치와 문학에 대한, 국민문학과 세계문학에 대한 일급의 성찰이 갖는 무게감을 지우지는 못한다. '무엇이 문학인가, 어째서 문학인가라는 쓸데없는 물음'조차도 이런 담론의 성찬을 가능하게 하니, 역설적으로 문학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문학의 성찰적 힘은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어서 로버트 콜스의 <하버드 문학 강의: 문학의 사회적 성찰>(이순, 2012)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영문학을 전공했다지만 하버드 의대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데, 현 직함은 '하버드 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인문의학과 명예교수'다. 그는 강의에서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가.

빌리(빌리 홀리데이)는 이 책에서 살펴보게 될 작가와 시인, 사진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학문과 문학과 예술적인 열정을 도덕적 관심과 질문들 -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과 조화시키려고 애쓴 사람이다.(...) 글과 그림 속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안내자 삼아, 우리는 사회적 성찰과 특별한 종류의 관찰을 통해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의 취지는 각자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을 벗어나 우리가 서로 손잡을 수 있도록 해줄 통찰을 찾아 함께 방황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손잡을 수 있도록 해줄 통찰'을 저자는 찰스 디킨스와 조지 오웰, 레이먼드 카버,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플래너리 오커너 등 거장들의 문학 속에서 찾는다. 한 리뷰의 말을 빌리면 저자는 "위대한 작가들에 대한 지성적 관찰, 그리고 좀더 사려깊은 존재로 사는 것에 관한 가치 있는 성찰"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우리에게 내미는 손이다. 기꺼이 그 손을 잡을 관심과 열정이 당신에게도 있는가?

 

 

 

혹은 이상 문학의 비밀에 대한 관심은? <이상 전집>(뿔, 2009)을 새로 펴냈던 권영민 교수의 <이상 문학의 비밀 13>(민음사, 2012)은 <오감도>의 트레이드마크인 '13'이란 숫자만큼 흥미를 끈다(책은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개인적으론 아주 오래전, 대학생활 첫 학기에 권영민 교수의 문학개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젊은 국문학 교수'가 어느덧 정년을 맞을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문학은 여전히 문학이다. 우리 곁에서 여전히 살아숨쉬는 청년 이상처럼.  

 

 

<이상 문학의 비밀 13>이 나온 김에 관련서들을 찾아보다가 이상문학회에서 엮은 '작품론' 시리즈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마도 중3 때쯤 이상의 시와 소설을 접했을 듯싶으니 이상과의 만남도 거의 30년이다(이젠 그보다 나이도 훨씬 더 많다!). 그 이상이 곧 문학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만한 사랑, 혹은 우정을 나는 더 갖고 있지 않다. 혹자들의 말대로 문학은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면 인간도, 인간의 삶도 별로 대수롭지 않다...

 

12.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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