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건네받은 책은 장동석의 <살아있는 도서관>(현암사, 2012)이다. '천천히 오래도록 책과 공부를 탐한 한국의 지성 23인, 그 앎과 삶의 여정'이 다소 긴 부제이고, 저자가 <기독교사상>에 연재한 인터뷰 코너 '이 사람의 서가 그리고 삶'을 단행본으로 다듬어서 펴낸 책이다. 기억엔 그 코너의 거의 마지막 인터뷰이가 나였다. 그래서 '23인'의 말석에 자리하게 됐는데, 저자는 인터뷰의 제목을 "신은 인간에게 책을 읽을 자유를 주셨다"로 잡았다.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터뷰도 그 책의 출간을 계기로 이루어졌었다. 기념삼아 책의 일부를 발췌해놓는다(인터뷰 내용을 저자가 재구성한 것이다).  

 

 

(...)

 

『형이상학 입문』이 던져준 숙제

이현우 교수는 스스로를 “문학전체주의자, 문학우월주의자, 문학극대주의자”라고 소개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세상사 돌아가는 모든 일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능력이 닿는 한 모든 학문과 지식을 흡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인문학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문학 역시 인간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해야 한다. 결국 문학은 다양한 영역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문학주의’를 이현우 교수는 경계한다. 문학이 사회적 책임과는 무관한, 아울러 우리 생활과도 거리를 둔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이는 “러시아 문학이 대체로 그런 편인데, 그래서인지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영혼 구원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그래서 “문학 전공자인데도 책은 다양하게 읽으시네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어떤 때는 정색을 하고 “문학이 전부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현우 교수는 1994년 즈음에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입문』을 자극적으로 읽었다. 투박하게 이야기하면 “왜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있는가”라는 질문 하나로 한 권의 책을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인간이 그런 질문을 던지는 존재구나”라는 인식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것은 인간만이 묻는 고유한 질문으로, 인간은 특권적 물음을 갖는 존재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없는 듯하다”며 이 교수는 미소 지었다. 단지 답을 찾지 못해 시름시름 앓거나, 질문 자체에 고양되는 삶을 살 뿐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존재의 물음이 언어와 관계있다는 사실에 이현우 교수는 놀랐다. 여기서 언어는 그리스 기원의 언어로 인도유럽어족만이 갖는 ‘존재동사삼인칭단수형’에 관한 질문인데 우리말은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이다. 그래서 우리 철학에서 존재의 질문, 존재의 사유는 언어의 구속성과 제약성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 교수는 “형이상학적 질문이 언어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면서도 “하이데거 철학에서 언어 구속성 문제에 국내에선 사유가 부족한 듯해 아쉽다”고 했다.

 

사실 존재의 문제와 언어와의 관계성에 천착하는 책은 국내에 드물다. 하이데거 전공자들도 “하이데거가 얼마나 대단한가”라는 이야기만 할 뿐이며, 보편적 하이데거만을 이야기한다. 하이데거 철학의 힘과 깊이는 인정하지만 언어 문제가 극복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유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물음임에도 간과되고 있는 현실이 이현우 교수로서는 아쉽다.

 

 

 

책이 인간보다 위대하다

러시아 문학 전공자로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비중은 그이에게 남다르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도 기회 있는 대로 사람들에게 읽어볼 것을 권하는 목록 가운데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이면서 당시 최대 비평가였던 벨린스키로부터 극찬을 받아 작가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작품. 이현우 교수는 한 인터넷 서점의 추천도서 코너에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세상 모든 고민을 다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이어지는 추천사가 재미나다. 

책을 가방에 넣는 순간, 당신은 그 고민들과 동행하는 것이 되고, 책을 펼쳐드는 순간 그 고민에 머리를 맞대는 것이 된다. 고민하지 않으려는 인간이라면 제일 먼저 내다버려야 할 책.

고민하는 인간, 다시 말하면 진정한 삶의 방향성을 묻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책을 읽을 자유』에서는 이 대목을 이렇게 확장시키고 있다. 음미할수록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책을 읽을 자유였다. 그리고 분명 책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나는 가끔 책이 인간보다 위대해 보인다. 

(...)

 

12. 02. 15.

 

 

 

P.S.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입문>(문예출판사, 1994)은 현재 절판된 상태다. 다른 장소에 보관해오던 책인데, 오늘 몇몇 책들을 챙기러 갔다가 눈에 띄기에 가져다 지금 책상 위에 놓았다. 감회가 없지 않다. 하이데거 전집 제40권에 해당하는 책으로 최근에 나온 책으론 <근본개념들>(길, 2012)과 성격이 비슷하다. 이 책은 전집 제51권을 옮긴 것이다. 흠, 갑자기 <존재와 시간>을 완독하고 싶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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