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한국에 실린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지난주에 전화로 길게 인터뷰한 내용이 간추려져 있다. 기사에 쓰인 사진은 <책을 읽을 자유>에 실린 다른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예전에 출판저널과의 인터뷰 때 찍은 것이다.  

주간한국(10. 10. 07) 이현우 작가, '리뷰'와 '비평' 사이 새로운 글쓰기 

1. 이현우, 본명보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알려졌다. 그는 서평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으로 알려졌다. 이후 언론이 붙여준 '인터넷 서평꾼'이란 말은 로쟈처럼 그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다.

2. 여기서 '로쟈'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로자가 아니라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에서 따온 말이다.

3. <죄와 벌>에서 눈치 챌 수 있듯, 그의 본령은 문학이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그는 한림대에서 연구교수를 하며 몇몇 대학에 강의를 나간다. 그는 이 전공지식을 발판 삼아 국내 출간된 인문·사회·예술 서적 중 가장 '핫'한 아이템을 소개하고 있다.

이현우 씨를 소개하는 몇 가지 팩트다.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비롯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카페 '비평고원'에 필진으로 활동하는 그는 이미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믿을 만한 정보통으로 꼽힌다.

책을 고르는 취향이나 책을 읽기 전, 가치판단을 내릴 때 바로미터로 삼을 수 있는 필자라는 말이다. 그는 인터넷 공간에 쓴 글들을 모아 지난해 첫 번째 서평집<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냈고, 이 책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저술-교양- 부문). 그러니 '대중지성'이란 말을 허울 좋은 수사로 치부할 일만은 아닌 게다. 



책과 자유

최근 그는 두 번째 서평집 <책을 읽을 자유>를 냈다. 이 책은 첫 번째 책의 연장선이다.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에서 발표한 글이 대부분을 차지한 첫 번째 책에 비해 신간은 잡지 등 기성 매체에 발표한 글이 주를 이룬다. 첫 번째 책이 에세이 형식이 강했다면, 이 책은 책에 방점이 찍혀 있다. 언어의 힘과 번역 가능성(6~8장), 문학에 대한 이야기(9~13장) 등147편의 책 리뷰를 30개의 주제로 묶었다.

책에 관한 책. 그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책이다. 책의 서두, 책 읽기 기술과 방법론(1~5장)에서는 '생활의 달인'의 면모가 느껴진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에서.

'나도 당장 책상 주변에 있는 책들을 꼽아 보았다. 읽고 있거나 당장 이번 주에 읽어야 하는 책들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와 몇 권의 관련서+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과 푸코에 관한 책 몇 권+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몇 권의 관련서+후카사와 나오토 등의 <슈퍼노멀>+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와 지젝의 책 몇 권+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20세기 러시아소설>(영어본)+오이겐 핑크의 <니체 철학>과 니체 관련서 몇 권+대니얼 데닛의 <자유는 진화다>+ 박홍규의 <그리스 귀신 죽이기> 등.' (<책을 읽을 자유> 49페이지)

나루케 마코토의 '초병렬 독서법'(10권의 책을 동시에 읽으며 자신만의 새로운 사고를 만드는 독서 방법)을 소개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이게 일주일 읽을 책 분량인가?'싶었다.

"계획대로 다 읽지 않는다. 초병렬 독서법은 10권을 완독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읽는 것에 방점이 있다. 저자는 그런 독서법에서 새로운 발상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나는 직업적으로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읽는 것이다. 강의 관련 도서를 항상 읽어야 하고, 신간을 좋아해서 새로 나온 책을 맛보기라고 읽어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읽게 된 것이다."

<미토콘드리아>서평을 보면 발췌독(책 전체를 읽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읽는 것)의 대가 같은 생각이 든다. '달인의 독서 방법'을 말해준다면?

"발췌독은 필요에 따라서 읽는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고 있을 게 아니라 자기에게 자극과 통찰을 주는 부분을 읽고, 다른 사고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매뉴얼처럼 말하기는 애매하다. 경험적인 측면이 강해서 각자 발췌독하는 방법이 다르다. 문학을 전공하는 동안 자세히 읽기를 훈련받았고, 그런 독서를 좋아하지만, 현실에서 너무 많은 책이 나오기 때문에 여러 독서법이 필요하다."

애독가인 동시에 애서가이기도 하다. 지금 가진 장서는 몇 권정도 인가?

"1만 권이 넘을 것 같다. 책이 너무 많아 첫 서평집을 낸 후 이사를 했다. 절반씩 나눠 절반은 이사한 집 서재에, 나머지 절반은 아는 분의 집에 맡겼다."

내가 이런 자격 있습니까? 

별 할 말이 없는 어색한 사이에서, 그럼에도 무언가는 말해야 하는 자리에서, 대화를 끌어내는 관건은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 일이다. 사람들이 <제빵왕 김탁구>나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는 건 단순히 재미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다.

애독가와 애독가가 만나면 이런 대화는 책으로 이어진다. 이들에게도 핫한 책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이 <1Q84>를 읽는 것 또한 단순히 '내가 하루키 취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까? 책을 읽지 않고도 대화를 재미있게 이어나갈 수는 없을까? 이때 찾는 것이 로쟈의 서평이다.

그의 서평은 신문의 '리뷰'와 평론가들의 '비평' 사이에 있다. 저널도 학술지도 아닌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 흔히 인문학을 '읽기'에서 시작해 '쓰기'로 끝나는 학문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에 비춰 본다면 그는 온몸으로 인문학을 실천하는 사람인 셈이다.

'사랑스러운 여러분, 소중한 여러분, 무엇 때문에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는 겁니까,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라도 있습니까?/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의 형 마르켈의 말이다. 새로운 책들이 나올 때마다 나는 "사랑스러운 여러분"을 되뇌게 된다.' (같은 책, 9페이지)

서평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인상적이다.

"서평은 매체 청탁으로 쓰기 시작했다. 서평을 본격적으로 쓰면서 서평에 대한 자의식을 갖게 됐다. 서평은 그것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인가를 식별해 줌으로써 아직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준다. 그것은 일종의 길잡이다. "이건 읽어봐야겠군"이라거나 "이건 안 읽어도 되겠어"가 서평이 염두에 두는 반응이다. 물론 소개-서평-비평은 일종의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것이어서 경계를 확정지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책에 관한 담화는 이 세 요소들을 약간씩이라도 모두 포함하기 마련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를 비롯해 로쟈의 책을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로 말하는 이들도 있다. ('글쓰기에서도 새로운 장르가 나온다. 로쟈나 지승호가 이런 작가들이다. 로쟈의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걸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할지 몰라 상당히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모양새는 서평집이지만, 읽어보면 에세이집이나 인문학개론서 같기도 하다. 지승호 역시 그렇다. 인터뷰집인데, 책장을 열어보면 무슨 평전이나 르포물 같다.' - 이택광 블로그 8월 24일자, 장르의 탄생 중에서) 동의하나? 



"이전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보고 하신 말씀 같다. 학술적인 담론도 아니고 저널리즘적인 글도 아닌 형식을 특이하게 본 듯하다. 이번 책은 잡지 등 지면에 발표한 글을 주로 묶어서 이전 책보다 얌전하다."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있다고 책에서 여러 차례 썼다. 출간 계획은?

"학위 논문이 올해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러시아 문학 강의와 '아트앤스터디' 강의 내용이 책으로 묶인다. 그 밖에 번역서 등 계약한 책이 2, 3권 더 있다. 내년까지는 5권이 나와야 하는데, 게으른 편이라 다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윤주기자) 

10. 1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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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7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7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7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7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7 2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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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ing 2010-10-0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흠... 책꽂이 미리 비우고 대기해야할 듯^^... 미리 축하드려요!!ㅎㅎ
아트앤 스터디에서 무료수강권도 주길래 오늘 러시아 문학강의 전편?들었어요(아직 7개 더 들어야함^^)
지금이 훨 편히 강의하시는게 보이지만 진지함이 돋보여서 그것도 좋네요^^

로쟈 2010-10-07 23:43   좋아요 0 | URL
흠, 대단한 열공 모드이신데요.^^ 조만간 제가 거덜날 거 같습니다.^^;

비로그인 2010-10-08 0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게으른 편이라 다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로쟈님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니십니까.. 게으르다뇨..;;

로쟈 2010-10-08 08:44   좋아요 0 | URL
학부 졸업하면서 낸 자작문집 제목이 '게으른 저공비행'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게으름이에요. 내일 할일을 오늘 미리 하지 말라, 가 제 원칙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할일은 내일로 많이 미루지만...

단무지 2010-10-12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몇 장 읽다가 못 읽고 모셔두고 있는데, 책을 읽을 자유는 좀 더 편안한 문체라고 할까요? 따뜻하다고 할까요? 책에 손이 자꾸 가더라구요. 한장 한장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로쟈 2010-10-13 08:11   좋아요 0 | URL
네,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