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컬렉션'이란 카테고리를 얼마전에 만들어놓고 따로 페이퍼를 쓰지 못했다. 이게 '컬렉션'이니만큼 남들이 안 갖고 있을 법한 책을 구해놓고 '자랑질'을 해보겠다는 심사 혹은 계산으로 하나 더해놓은 것인데, 파리만 날리는 걸 보면 자랑할 일이 꽤나 드물다는 반증이다. 사실 없는 건 아니었다. 처음엔 보부아르의 자서전 얘기를 적어놓으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치면서 흐지부지됐을 뿐이다. 너무 적조하다 싶어서, 억지로 하나 끼워넣는다. 어제 구입한 빅토리아 알렉산더의 <예술사회학>(살림, 2010) 얘기다.   

저자의 머리말과 역자의 말('옮기고 나서')를 읽다 보니, 소프트카바의 책으론 비교적 '고가'인 이유가 '교재용'이어서 그런가 보단 생각이 들었다(독자가 한정돼 있을 경우 책값은 올라간다). 머리말의 첫머리가 이렇다. 

나는 지금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예술사회학에 대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학생들은 매번 내가 수업에서 다룰 내용을 개략적으로 한 권에 담은 교재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요청에 부응하여 하나 써주신 것. 하버드대학 교수를 거쳐 지금은 서리(Surrey) 대학교 부교수로 재직중이라는 저자는 아직은 이 분야의 소장학자로 보인다. 다만 이 분야의 연구성과나 최신 동향, 소위 '최전선'에 대해 알려주지 않을까라는 게 나의 기대다. 특이사항은 저자가 조직사회학자이기도 하다는 것. 학부 때 내가 들은 사회학 강의의 담당교수는 '범죄사회학'과 '종교사회학'을 번갈아가면서 강의하던 분이었는데(그래서 나는 '종교=범죄'라고 서로 통하는 게 있구나 싶었다. 아니면 범죄자들을 종교로 구원한다는 뜻이었을까?), 알렉산더의 경우는 '예술사회학'과 '조직사회학'을 동시에 혹은 교대로 강의하는 모양이다.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저자는 나름대로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나는 조직사회학도 강의해왔는데, 이때 배운 한 가지는 학생들이 추상적인 이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도록 이끄는 사례 연구의 중요한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 효과적인 교수법이라는 점이다. 사례 연구는 일이나 직업, 그리고 조직 행위를 가르치는 데 필수적이지만 사회학의 다른 하위 분야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조직사회학 강의를 하면서 사례 연구의 유용성을 확신하여 이를 예술사회학 수업에도 적용했는데 역시 사례 연구는 효과적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이 책에는 장마다 사례 연구가 덧붙여졌다는 얘기. 최근의 화제작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다양한 사례의 제시는 강의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면서 학생들의 집중도도 높일 수 있다. 저술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해봄직하지 않은가. 국내에서도 인문서 저자들이 적극 고려해볼 문제다.   

한편, 옮긴이의 말에선 이런 대목을 읽을 수 있다. 공역자의 한 사람인 이대 사회학과의 최샛별 교수가 적은 것이다(문화론과 문화사회학 분야의 역서들이 몇 권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수업 '예술사회학'에서 사용했는데 주교재로도 손색이 없었다. 학부 교양과목으로 '예술의 사회학적 읽기' 수업을 개발하고 담당하면서 내용의 일부를 다루었더니 다양한 전공을 지닌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매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이 책의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얘기. 부제대로 '순수예술에서 대중예술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책의 장점인데, 역자는 사회학자로서의 바람도 덧붙인다.  

그동안 예술은 미학에서 주로 작가와 작품에 주목하여 그 심미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다루어 왔다. 역자들은 사회학이 예수을 사랑하고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유용한 시각을 제공하기를 소망한다.

사실 원론적인 바람이긴 하나 소개되는 책이 적으니 여러 몫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튼 예술사회학 교재 하나는 확실히 마련된 걸로 쳐도 좋겠다... 

10. 07. 16.     

P.S. 사소한 교정사항 하나를 덤으로 적어둔다. 속표지 저자 소개에 빅토리아 D. 알렉산더 교수의 저작이 <미술관과 자본>(2005)과 공저 <예술과 국가>(1996)라고 소개되는데, 두 저작의 출판년도가 바뀌었다. <미술관과 자본>(1996), <예술과 국가>(2005)라고 해야 맞다. <예술사회학>(2003)의 후속작으로 메릴린 루시마이어와의 공저인 <예술과 국가>는 흥미를 끄는 책이다. 이걸 구했다면 제법 '자랑질'이 됐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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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7-16 01:30   좋아요 0 | URL
오늘 랑시에르의 <미학 안의 불편함>을 '잠깐' 열어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역자 소개로는, 랑시에르가 기존의 예술이 정치적 위계화-감성의 분할에 묶여 있음을 비판했다고 하던데요... 긴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얘기였는데요, 로쟈님 페이퍼를 읽으니 낮의 잠깐이 떠오릅니다. 저도 엄청 땡기는데요... <예술과 국가>도요...^^ 사례의 풍부함은 태도들의 풍부함, 유머 감각의 함양으로부터 가능한 거라서... 그야말로 '문화적 여유'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엄청 콤플렉스 느끼는 부분입니다. 아마 샌델의 '정의'가 호소력 있었던 것은 그런 여유로운 화법에 대한 갈증, 부러움 등등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로쟈 2010-07-16 09:04   좋아요 0 | URL
샌델의 책만 유독 그런 건 아니고 철학서들이 기발한 사고실험이나 사례들을 많이 동원하지요. 그쪽 '문화' 같기도 해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고리타분한 책이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