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장인들의 문화혁명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 2010)을 다루고 있다. 이미 일간지 리뷰들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책이지만, 초점을 조금 달리하여 한번 더 언급하게 됐다. 대단한 역작이어서 제쳐놓기가 어려웠다. 

 

한겨레21(10. 03. 22) 16세기 직인, 지식사회에 도전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16세기에 세계무역과 세계시장이 형성된 때로부터 자본의 근대사가 시작된다”고 적었다. 세계체계론자인 월러스틴도 근대세계체계는 16세기(1450-1640년대)에 형성돼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기원을 16세기로 잡는 것이다. 그런 것이 경제사에서 ‘16세기’가 갖는 의의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사적으로 16세기는 보카치오나 라파엘로가 활동한 14-15세기의 르네상스와, 갈릴레오나 뉴턴으로 대표되는 17세기 과학혁명 사이의 계곡처럼 간주돼온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를테면 들러리다.   

대학과 성직자 VS 미술가와 장인
‘자력과 중력의 발견’을 다룬 <과학의 탄생>의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또 다른 역작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 펴냄)을 통해서 이러한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17세기를 준비하는 지식세계의 ‘지각변동’으로 16세기를 재평가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들이 대륙판들의 충돌로 인한 대규모 지각변동의 결과인 것처럼, 17세기 과학 천재들의 혁혁한 업적도 16세기 문화혁명이 밀어올린 지반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16세기가 과소평가돼왔다면, 그것은 16세기 문화혁명을 주도한 직인이나 기술자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절하와 무관하지 않다.   

중세 서유럽의 대학에서 육체노동은 멸시 대상이었으며, ‘기계적’이란 말은 ‘손으로 하는’ 혹은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의 의미였다. ‘기계적 기예’는 자유인이 익혀야 할 학예를 뜻하는 ‘자유학예’와 대비됐다. 그것은 육체와 정신의 대비였으며, 라틴어를 사용하는 엘리트 지식인과 직인 사이의 대비였다. 저자는 중세의 지식이 특정한 구성원들에게만 전수되었던 데 반해서 16세기는 이러한 비밀들이 벗겨지기 시작한 시대로 지목한다. 대학과 성직자가 독점하던 문자문화에 대해 선진적인 미술가나 장인이 도전장이 내민 형국이었고, 이로써 지식의 분단 상황은 와해돼간다.  

저자가 16세기 문화혁명의 지표로 내세우는 것은 대학과 인연이 없던 직인, 예술가, 외과의들이 속어(각국의 언어)로 과학서와 기술서를 쓰기 시작한 점이다. 알다시피 로마제국의 유산인 라틴어는 통치를 위한 공용어였고 문명어였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의 권력자들에겐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자 수단이었다. 민중의 생활과는 단절된 소수 지적 엘리트의 전유물로서 라틴어는 비록 지역 간 언어의 장벽을 없애긴 했지만, 소수 엘리트와 민중의 사이에는 높은 장벽을 쌓았다. 그럼으로써 민중을 학문세계로부터 배제했다. 수도원 내부에서조차도 라틴어를 해독할지 못하는 사람은 ‘노무 수사’로 불리며 육체노동과 잡일에 종사했을 정도다. 라틴어 구사 능력의 유무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했던 셈이다(그것은 오늘날 ‘영어 시대’에도 얼추 들어맞지 않을까).   

'과학혁명'이 누락한 것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도 중세 스콜라학에 이의를 제기한 건 맞지만 학문 세계의 배타성까지 타파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속어는 물론이고 속어가 섞인 라틴어조차도 저급한 것으로 경멸했다. 자연에 대한 비밀도 민중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레 숨겨놓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 지식계급이 생각한 ‘도덕적 책무’였다. 이러한 사정은 갈릴레오에 대한 종교재판에도 적용되었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지동설을 그냥 주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천문대화>를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로 저술함으로써 누구라도 알 수 있게끔 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애초에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95개 논제’를 라틴어로 썼을 때에도 파문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을 독일어로 번역․요약해 인쇄하자 그의 주장은 순식간에 독일 전역의 대중에게 전파되었다. 이런 것이 16세기 문화혁명에 수반된 언어혁명의 양상이었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고 성장한 ‘국어’는 국민국가 형성으로까지 이어진다.  

16세기 문화혁명의 성과는 17세기에 들어서 엘리트 지식인들이 계승하게 된다지만, 그사이의 ‘단절’도 간과하긴 어렵다. 지식과 과학기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란 질문을 과학혁명의 ‘승리의 진군’은 누락한 듯싶어서다.   

10. 03. 15.

 

P.S. 분량상 발췌독을 했지만 <16세기 문화혁명>은 서평거리로 읽은 책들 가운데 발군이다. 힐베르크의 역작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8)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그래서 그의 전작 <과학의 탄생>(동아시아, 2005)도 긴급하게 구했다. 제2부의 한 장 제목이 '과학혁명의 여명 - 16세기 문화혁명과 자력의 이해'다. <16세기 문화혁명>은 그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후속작인 셈. 두 권은 과학사와 문화사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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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orin 2010-03-1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마모토씨의 저작이 또 나왔군요. 전공투의 힘이 느껴집니다...

로쟈 2010-03-19 10:46   좋아요 0 | URL
대단한 역량의 저자인 건 맞습니다...

괄호밖 2010-12-1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저공비행]을 읽고 접속하게 되었고, 지금껏 이 서재의 글과 댓글을 탐독하며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매일 늘어만 갑니다. 읽을 책이 늘지만 오히려 기분은 짜릿하네요. 고맙습니다.

P.S. 잘못된 부분이 있기에 씁니다.

"수도원 내부에서조차도 라틴어를 해독할지 못하는 사람은 ‘노무 수사’로 불리며"를

"수도원 내부에서조차도 라틴어를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은 ‘노무 수사’로 불리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