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란에 실리는 칼럼을 옮겨놓는다. 얼추 매달 첫주에 칼럼이 나가게 됐는데, 닥쳐야 글을 쓰는 습성 때문에 오늘도 낮에 두 시간 고민하고 세 시간 동안 매달려 썼다. 바람직한 건 두 시간 이내에 쓰는 것이다. 칼럼은 두 주쯤 전에 본 영화 <아바타> 이야기로 시작한다.   

경향신문(10. 03. 02) [문화와 세상]판도라 행성의 ‘협조적 문명’

자원 고갈로 황무지가 된 지구는 대체자원이 매장돼 있는 판도라 행성에 기지를 건설하고 무분별한 채굴에 나선다.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화제작 <아바타>의 배경이다. 채굴회사는 최대 매장 지역에서 원주민을 이주시키고자 협상을 시도하는 한편, 여차하면 군사작전을 감행할 태세다. 원주민은 이주를 거부하고 곧 지구인 전투 비행단의 무자비한 폭격이 가해진다. 영화에서는 원주민 편에 선 부대원의 활약과 정당방위에 나선 자연력의 힘으로 공격을 격퇴하지만, 이 미래의 ‘대체역사’가 아닌 현실의 역사에서는 어떠했을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백인의 신대륙 개척신화에 가려진 폭력이다.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 황금과 향신료를 얻기 위해 인도 제국을 찾아 나선 콜럼버스의 원정대는 1492년 카리브해에서 농경생활을 하던 아라와크 인디언의 환대를 받고 돌아간다. 하지만 두번째 원정에서는 황금을 얻는 데 실패하자 대규모 노예사냥을 자행한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잘 팔릴 만한 노예들을 계속해서 공급해주자”는 게 콜럼버스의 생각이었다. 무장한 스페인인들의 학살과 사냥에 대적할 수 없던 원주민들은 집단으로 자살까지 했고, 그들의 수는 곧 절반으로 줄었다. 애초에 아이티섬에는 약 25만명의 아라와크족이 살고 있었지만 한 세기쯤 지나자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정복에 나선 함대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면, 1853년 일본 에도만 앞바다에 나타나 개항을 요구한 미국 함대도 연상해볼 수 있다. 페리 제독은 군함 4척을 끌고 와서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고, 일본 막부는 미국 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막부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천황제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근대 일본’의 서막이었다. 



이 새로운 시대의 정세에 일찍 눈을 뜬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동일한 수준의 문명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명이 앞선 자가 뒤진 자를 지배하고 뒤진 자는 앞선 자에게 지배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본 그는 일본이야말로 유럽문명을 계승할 아시아의 적자라는 주장도 개진하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과 조선을 대할 때에도 그들이 이웃나라라 하여 특별히 고려할 것 없이 서양인이 대하는 방식 그대로 처리해야 할 것”이라는 ‘탈아론(脫亞論)’을 제시했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문명권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구미 열강에 못지않은 패권국가로 행세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패권 다툼에서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귀착된 조선의 운명은 어떤 민족이 압도적인 외부의 힘과 조우한 세번째 유형이 될 듯싶다. 유길준과 함께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면서 미국 유학생활도 경험한 윤치호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선 경제적·문화적·지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근대국가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공덕심과 공통된 대의를 위한 단합심, 진지한 노력, 자립심이 조선인들에겐 부족하다고 봤다. 특히 그는 남의 노고에 얹혀 살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유교의 도덕을 기생주의라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는 유교 사회의 윤리와 공산주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공산주의는 최고 수준의 협조적 문명을 획득한 국민에게나 가능한 것이어서 앵글로색슨인들조차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경지다. 하긴 영화 <아바타>에서 지구인의 공격을 격퇴한 것은 모든 것이 서로 접속돼 있는 판도라 행성의 ‘협조적 문명’이었지만, 영화는 영화니까. 

10. 03. 01.  

P.S. 칼럼을 쓰면서 주로 참고한 책은 하워드 진의 <살아있는 미국역사>(추수밭, 2008), 박규태의 <일본정신의 풍경>(한길사, 2009), 박지향의 <윤치호의 협력일기>(이숲, 2010) 등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해선 임태홍의 <일본 사상을 만나다>(성균관대출판부, 2010)도 읽어봤다. <리얼 진보>(레디앙, 2010)에 실린 박노자 교수의 글 '좌파의 고민' 가운데, '인생의 의미로서의 사회주의'란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다뤄볼까 했다가 삼일절이란 시의성을 고려해 <아바타>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칼럼의 끝은 '공산주의'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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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04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디언 학살의 과거를 S.F로 변형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세계의 메세지는 공산주의였군요. 으음 협조적 문명이라... 비대칭 전쟁을 치룬 게릴라부대가 성공한 사례도 있죠..
그것도 협조적 문명이랄수 있는 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