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니시카와 나가오의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역사비평사, 2009)을 다루고 있는데, <국민이라는 괴물>(소명출판사, 2002)의 내용도 일부 포함됐다. 니시카와의 책은 <신식민지주의론>(일조작, 2009)도 출간됐는데(언제부턴가 '식민주의'란 말 대신에 '식민지주의'란 말이 쓰이고 있는데, 짐작엔 일본어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주저의 대부분이 소개된 게 아닌가 한다. 일본 학자의 책이 이렇듯 한꺼번에 소개되는 건 드문 일이어서 눈길을 끈다.  

한겨레21(09. 12. 21) 문화로는 국가에 대항할 수 없다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 이런 제목에 눈이 번쩍 뜨이는 독자도 있을 법하다. 게다가 “당신은 계속 ‘국민’이고 싶은가, 아니면 ‘국민’을 그만두고 다른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가?”라는 둔중한 물음까지 표지에는 붙어 있다. 어떤 ‘노하우’일까 궁금해서 책을 손에 들었다. 미리 말해두자면, 잘못 골랐다! 저자의 물음은 책의 첫 문장이 아니라 맨 마지막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다. ‘국민’을 그만두려면 ‘국민문화’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요지 정도는 감지할 수 있으니까. 사실 책의 초점은 국민이 아니라 바로 그 국민문화에 두어진다.  

‘국민국가론’의 권위자로 알려진 니시카와 나가오의 저작은 이미 여러 권 소개돼 있는데, 쓰인 순서에 따르면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역사비평사)은 <국경을 넘는 방법>(일조각, 2006)과 <국민이라는 괴물>(소명출판사, 2002) 사이에 위치한다. 연작으로 읽어도 좋을 만한 이 저작들의 토대가 되는 건 ‘문명(civilisation)’과 ‘문화(culture)’에 대한 개념사적 통찰이다.  

저자가 잘 정리해놓은 걸 다시 정리하자면, 일단 문명과 문화 모두 유럽에 기원을 둔 개념이다. ‘고대문명’나 ‘고대문화’란 말도 쓰지만, 두 용어는 모두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문명은 아예 신조어이고 원래 ‘경작’을 뜻하던 문화는 현재와 같은 의미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라틴어 어원(civitas)에서 알 수 있듯이 문명은 고대 도시국가와 연결된 말로서 도시생활을 모델로 하고, 문화는 농촌생활을 모델로 한다. 농작물과 가축을 기른다는 어원적 의미 덕분에 문화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기른다는 의미의 교양도 뜻하게 됐다. 더불어 문명은 인류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물질적인 진보를 예찬하는 반면에, 문화는 생활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강조한다. 물질적 진보를 중요시하는 문명이 미래 지향적이라면, 정신의 우월성을 앞세우는 문화는 과거의 전통을 중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개념의 전파 양상이 다르다는 점. 문명은 프랑스 및 영국과 미국 등 주로 선진국으로 전파됐고, 문화는 독일을 중심으로 폴란드, 러시아 등 후진국으로 퍼져나갔다. 곧 ‘문명=선진국 모델’, ‘문화=후발국가 모델’이었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프랑스에서는 문명이 국민적 이데올로기로 정착된다. 프랑스 혁명이 곧 인류의 해방이고 프랑스인은 그러한 진보의 선두에 있다는 자각이 거기엔 반영돼 있다. 반면에 프랑스에 대항하여 성장한 독일의 국민사는 기본적으로 문화사다. 독일의 지식인과 시민계급은 자신들의 독자적 가치관을 문화라는 말을 통해서 표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근대 이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반복된 전쟁은 한편으론 문명과 문화 사이의 투쟁이란 양상도 갖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문명과 문화 사이에 차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개념은 각각 유럽의 선진국과 후발국의 국익과 가치관에 부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근대 국민국가 형성과정이라는 동일한 모태에서 샴쌍둥이처럼 태어난 둘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다. 한 문화가 자기의 우월성을 확신하게 되면 문명적 보편주의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보이고, 반대로 패권을 잃어버릴 경우에는 문화주의로 전환하는 양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이 패전 이후에 ‘문화국가’라는 슬로건을 내건 것은 기묘한 일이었다고 니시카와는 지적한다. 야마토 다마시(大禾魂)라는 일본의 정신문화가 미·영의 물질문명에 패했음에도 국가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문화’가 문책받기는커녕 오히려 평화의 동의어로 유행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가이데올로기로서 ‘문화’ 개념은 ‘민족’이나 ‘국체’ 개념과 일체였기 때문에 문화로는 국가에 대항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비록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사고가 특정한 방향성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한국문화’는 사정이 다를 수 있을까?  

09. 12. 14.  

P.S. 지난봄 방한하기도 했던 니시카와 교수의 인터뷰기사는 http://news.khan.co.kr/kh_thema/khan_art_view.html?artid=200903311748355&code=96010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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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1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문명은 다를 수 있을까?"로 대입 해봅니다.

로쟈 2009-12-14 23:36   좋아요 0 | URL
'한국문명'까지는 갈길이 멀어보이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