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기내지인 모닝캄 5월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에 관한 짦은 소개글이다(초고가 약간 축약됐다). 애초에는 '쿤데라와 프라하'에 초점을 맞춰달라는 주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론 그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이 주제가 됐다. 이 글은 영문으로도 번역돼 있는데(물론 나의 번역은 아니다), 'Being Milan Kundera'가 그 타이틀이다.    

Morning Carm(09년 5월호) 체코의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

“내게 있어 미래가 아무런 가치도 표상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에 집착해 있는 것인가? 신? 조국? 민족? 개인?” 스스로가 던진 이러한 질문에 체코의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답한다. “내 답은 우스꽝스러운 만큼이나 진지한 것이다. 나는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 말고는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해 있지 않다.”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이란 세르반테스 이후의 서구 근대 소설을 가리킨다. 바로 그 ‘소설’이 자신의 유일한 집착대상이라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그는 ‘소설가’ 외에 다른 ‘소속’을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이런 소속감은 쿤데라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에게 ‘조국’ 혹은 ‘국적’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쿤데라는 단편집 <우스꽝스러운 사랑>과 장편소설 <농담> 등을 1960년대에 발표하여 체코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1975년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다. 체코 국적을 상실하지만 1981년 미테랑 정부 시절 프랑스 국적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프랑스’ 작가인가? 사실 <불멸>(1990) 이후의 작품들은 체코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써서 발표하고 있으므로 엄연히 ‘프랑스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우는 좀 모호하다. 이 이중언어 작가는 1981년 이후부터 ‘프랑스인’이고 ‘프랑스어’ 작품을 발표하고 있지만 프랑스 서점에서 그의 소설은 ‘프랑스소설’이 아닌 ‘외국소설’로 분류된다고 한다. ‘동시대 프랑스 소설’이 아니라 ‘프랑스어로 표현된 외국소설’이라는 것이 프랑스 독자들의 판단이다. 반면, 체코에서 쿤데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많이 번역된 체코 출신 작가”로 소개된다. ‘체코 출신 작가’란 말에서 망명작가인 쿤데라와 체코 정부 간의 불편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쿤데라는 체코 작가이기도 하지만 체코 작가가 아니고 프랑스 작가이지만 프랑스 작가가 아니다. ‘동유럽 작가’가 아닌 ‘중부 유럽 작가’를 자처하는 쿤데라는 ‘체코’라는 국명이 지시하는 정치적 정체성보다는 ‘보헤미아’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더 선호한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기원전에 살았던 켈트족이 프라하의 정착민들을 ‘보헤미아’라고 불렀다. ‘보헤미아인’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은 거기에서 생겨났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위와 사건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나지만, 그는 ‘체코슬로바키아’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18년에서야 생겨난 말이며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국가로 분리됐으니 ‘체코’에 대한 그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역사적 뿌리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이 쿤데라의 생각이다. 대신에 그는 ‘보헤미아’를 인물들의 국적으로 사용한다. 쿤데라에게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가 아니라 그 보헤미아의 수도다.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은 프라하라는 도시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1968년의 ‘프라하의 봄’을 다룬다(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국내에는 <프라하의 봄>으로 소개되었다). 그는 한 정치적․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한 세대의 삶을 좌절과 파멸로 이끌었으며 개개인의 인생행로를 뒤바꾸어 놓았는가에 대한 소설적 명상을 시도한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그리고 프란츠다. 많은 여자와 자유분방한 관계를 갖던 이혼남 토마스는 어느 날 보헤미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카페의 여급 테레사를 만나며 그녀는 다시 프라하로 그를 찾아온다. 토마스는 자신의 애인인 사비나에게 부탁하여 테레사가 사진작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두 사람은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터진 것이 ‘프라하의 봄’이라는 체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짓밟는 구 소련의 침공 사태가 벌어졌다. 토마스와 테레사는 스위스 취리히로 떠났고, 제네바로 간 사비나는 그곳에서 만난 프란츠와 잠시 사랑을 나누고 파리로 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마스의 끊임없는 바람기를 견디지 못한 테레사는 프라하로 돌아가고 그는 다시 그녀의 뒤를 따른다는 줄거리. 동시대 네 인물의 사랑과 성을 따라가면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해나가는 작품은 토마스와 테레사가 시골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하며 죽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사실 이러한 마무리 자체가 제목에서 시사하는 ‘존재의 가벼움’을 한 번 더 강조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쿤데라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성찰로 작품을 시작하는데, 이는 모든 일들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하는 ‘우스꽝스러운 신화’에 대한 분석이기도 하다. 쿤데라는 이 영원회귀 사상을 삶의 일회성에 대비하면서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되묻는다. 만약에 정말로 한번뿐이라면, 인생이란 하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아무런 무게도 없고 처음부터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불멸을 꿈꾸고 또다른 시도를 하지만, 이런 노력은 대부분 부질없고 우스꽝스러운 결과만을 낳았다.  

쿤데라에게 소설은 그렇듯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며, 그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탐구하는 형식이다. 너무도 가벼운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신과, 조국, 민족은 너무도 무거운 존재이고 가치임을 그는 폭로한다. 쿤데라에게 삶의 자연스런 모습이란 어쩌면 세속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분방한 삶, 바로 ‘보헤미안’의 삶일는지도 모른다.  

09. 0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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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7 2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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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 0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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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 1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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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9 0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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