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케이스 젠킨스 지음, 최용찬 옮김 / 혜안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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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학자인 저자 젠킨스는 소위 포스트모던 역사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한다. 몇몇 관련 서적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허언은 아닌 것 같고, 실제로 이 책은 대단히 재미있게 씌어져 있다. 원제는 <역사를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History>. 그것이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란 제목으로 번역된 것은, 다분히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의식해서이다. 카의 책이 소위 모던 역사학 입문의 정수를 요약하고 있다면, 젠킨스의 책은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윤곽을 그려보이고 있다.

책은 서문과 세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역사란 무엇인가'란 주제를 재검토한다. 저자의 시각은 '역사는 이론이고 이론은 이데올로기적이며 이데올로기는 바로 물질적 이해일 뿐이다'(62쪽)란 말로 요약될 수 있을 터이다. 그는 대학제도 안에서 만들어지는 역사만들기(making histories)의 관행에 대해서 의심하며 '공식적' 역사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가 내리는 답은 간단하다. '역사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2장에서는 역사담론의 근본문제들이 다루어진다. 과연 역사는 사실인가 해석인가를 놓고 이런저런이 토론이 벌어진다. 그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이번에도 간단하고 명확하다. '모든 역사는 과거 사람들의 마음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가의 마음의 역사'(121쪽)라는 것. 따라서 역사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근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이에 대한 비근한 예이다).

3장은 포스트모던 세계의 역사연구에 대한 조감이자 저자의 결론이다. 그는 회의주의, 좀더 심하게 말해 허무주의가 우리 시대(=포스트모던)의 지배적인 지적 전제임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다양한 역사만들기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요컨대 그는 역사인식에서의 허무주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아주 간명하지만, 대단히 유익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만듦새는 낙제에 가깝다. 좀더 본때있게 만들어졌다면, 더 많이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책장을 볼 때마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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