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문학비평, 그 비판적 대화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
김영건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문고본의 얇은 책이지만, 한국 문학비평 전반에 메스를 대고 있는 저자의 야심은 얄팍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모든 비평가들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명으로 거론되는 비평가들의 글에 대한 예리한 읽기를 통해 저자는 우리 비평의 게으른 글쓰기와 태만한 비판 의식을 고발한다. 요컨대, 철학적 개념들이나 문제의식들을 좀 알고나 갖다 쓰라는 것이다.

가령, 거물 비평가인 김윤식의 경우, 비트겐슈타인을 얘기하면서 국내의 연구논저들은 전혀 참조함이 없이 왜 하필이면 가라타니 고진 같은 '일본' 비평가의 시각을, 그것도 저자가 보기엔 틀린 시각을 아무런 각주도 없이 베껴 쓰느냐는 것. 비트겐슈타인 전공자로서 저자가 서운해 하는 대목이다. 그밖에도 젊은 비평가들의 현학과 곡학, 그리고 막연하게 주장하는 '녹색문학'(생태학적 세계관)과 '게으른' 철학(김영민) 등이 논의되고, 김우창 교수가 얘기하는 심미적 이성의 타당성 여부가 결론적으로 언급된다.

'비판적 대화'라는 제목에 걸맞게 저자는 몇몇 비평가들 뿐만 아니라, 문학 비평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논리의 엄정성과 개념구사의 정확성 등이 떨어지고 주체적인 문제의식이 빈약하다는 이유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제기는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문학작품과 비평을 대할 수 있게 하는 잇점이 있다. 또 제대로 된 인문학과 문학비평을 해보자는 데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저자가 문학비평에 대해 객관성이니 보편성이니 하는 기준들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문학적 상상력의 풍부함을 빈곤한 개념들의 그물로 옥죄는 것이 문학비평의 정도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비약과 유희는 문학뿐만 아니라 비평에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 비평은 크게 이론비평(혹은 비평이론)과 실제비평(작품비평)으로 나뉠 수 있을 텐데, 실제비평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는 점.(분량 때문일까?) 실제 작품을 놓고 어떤 다른 '철학적' 해석과 비판이 가능한지 보여준다면 더 좋을 듯하다. 또 제 5장에서 논의된 김영민 교수는 문학비평가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인문학자인데, 그의 논문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문학비평과는 무슨 관계가 있어서 이 자리에 불려나왔는지 모르겠다. 저자의 계속 이어질(?) 작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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