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관심에다 필요까지 겹쳐서 앤 애플바움의 <굴락>(드림박스, 2004)을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오늘은 아예 원서까지.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굴락)에 대한 이 방대한 저작은 지난 2003년에 출간됐고 이듬해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국역본이 나온 게 2004년 12월이니까 분량을 고려하면 초스피드로 나온 셈이다. 역자가 'GAGA 통번역센터'라는 건 그래서 이해할 만하다. 이른바 '집단번역'인 것. 하지만 동시에 '강제번역'이었는지 번역의 수준이 '수용소'만큼이나 열악하다(이미 절판된 책이니 이런 흠을 잡는다고 해서 매출에 지장을 초래하진 않겠군. 혹은 이런 평도 명예훼손감일까?).

 

 

 

 

'당신에 없는 사이에' 나온 책이어서 기억에 내가 국역본의 존재를 안 건 마냐님의 리뷰를 읽고서이다(http://blog.aladin.co.kr/goodmom/601472). 너무도 허술하게 번역됐다는 지적을 읽었기 때문에 따로 구입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출간된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조해보니 원서와 같이 읽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누가 그렇게 읽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책의 헌사에서부터 번역은 '번역'이 필요하다.

저자인 애플바움은 "이 책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신 분들께 바칩니다."라고 헌사에 적었다. "This Book is Dedicated to Those Who Described What Happened." '알려주신'이라고 옮긴 단어는 'Described'이다. 이 경우엔 '기록한' 혹은 '기록으로 남긴'이란 뜻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저자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수용소 체험자들의 기록과 증언 덕분이었을 테고 그에 대해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는 것(노벨문학상 수장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수용소군도, 1918-1956>라는 방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애플바움은 영역판의 서문을 썼다). 그런데 이 헌사는, 특히 'Described'란 단어는 러시아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1889-1966)의 한 서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런 사실이 국역본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데 옮겨보면 이렇다.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 이후 끔찍했던 몇 년 후 나는 레닌그라드의 수용소 밖에서 줄을 서며 17개월을 보냈다. 어느 날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았다. 내 뒤에 서 있던 여자는, 추위로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었으며, 물론 이전에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은 없었다. 이제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닥친 마비상태에서 벗어나서 나에게 속삭이며 물었다(그곳에서는 모두가 속삭이며 말했다). "이걸 설명할 수 있나요?" 나는 말했다. "할 수 있어요." 그러자 미소 비슷한 것이 그녀의 얼굴 위를 스쳐갔다."

인용문의 출처는 아흐마토바의 연작시 '레퀴엠 1935-1940'의 서문이다. 국역본에는 "서두 해설 대신 진혼곡 1935-1940"이라고 돼 있는데, "Instead of a Preface: Requiem 1935-1940"을 옮긴 것이고, '서문을 대신하여'는 이 연작시의 서문격으로 1957년에 붙인 에피소드다(시의 전문은 http://www.wikilivres.info/wiki/index.php/Requiem_%28Akhmatova%29 참조, 영역으로는 http://www.poemhunter.com/poem/requiem/).

그런데, 이 인용문 번역의 첫문장, 첫단어부터 국역본은 잘못 옮겨놓았다.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 이후 끔찍했던 몇 년 후 나는 레닌그라드의 수용소 밖에서 줄을 서며 17개월을 보냈다."의 원문은 이렇다. "In the terrible years of the Yezhov terror I spent seventeen months waiting in the outside the prison in Leningrad." 

여기서 'Yezhov terror'를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라고 옮겼는데, '예조프'는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다(설사 인명인 줄 모른다고 쳐도 단 몇 초만 검색해보면 알 수 있건만!). 니콜라이 예조프(1895-1940)로 KGB의 전신 내무인민위원회(NKVD)의 총수였고 악명 높았던 1937-8년의 대숙청 작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물론 이후에 그 자신도 숙청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쓰는 스탈린 시대'란 페이퍼 참조(http://blog.aladin.co.kr/mramor/1745168). 그러니 'Yezhov terror'는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가 아니라 '예조프의 테러'를 가리킨다. 거기에 '몇 년 후'란 번역은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지 알기 어렵다. 첫문장을 다시 옮기면, "예조프의 테러가 판을 치던 끔찍한 시절 나는 17개월을 레닌그라드 감옥 바깥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보냈다." 

 

누굴 기다리며? 짐작엔 아들 레프 구밀료프를 기다리며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레프는 남편인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의 사이에서 낳은 외아들이다. 그는 나중에 부모 이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가 된다). 스탈린은 유명시인이었던 어머니를 직접 핍박하는 대신에 아들을 체포하여 '볼모'로 삼았고 때문에 아흐마토바는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까지 써서 바치기도 했다.

여하튼 그런 곡절 때문에 수용소 밖에서 기다리던 아흐마토바를 어느 날은 한 사람이 알아봤다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 아흐마토바의 이름을 부른 것이겠다. 그리고 그걸 들은 뒤의 여자가 굳었던 입을 열고 이 '시인'에게 속삭였을 터이다. "이걸 기록하실 수 있겠어요?(Can you describe this?)" 물론 '이것'이 가리키는 건 이 '말도 안되는 사태'이겠다. 그에 대해서 아흐마토바는 이렇게 답한다. "할 수 있어요.(I can.)" 그때 스쳐간 희미한 미소라는 건 이 터무니없는 역사적 수난이 그래도 기록(의미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작은 위안의 표시겠다. 아흐마토바의 '레퀴엠(진혼곡)'은 바로 그 '기록'인 것이고.

해서 나는 애플바움의 헌사 "This Book is Dedicated to Those Who Described What Happened."를 "이 책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기록해준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앤이 쓴 건 '히스토리'이고 안나가 쓴 건 '레퀴엠'이지만 두 여자는 현대사의 한 비극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서로 교신하고 있다...

08. 04. 01.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4-02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4-03 22:37   좋아요 0 | URL
아흐마토바의 책들이 좀 소개되면 좋을 텐데요...

수유 2008-04-04 09:26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녀의 저 우아한 프로필과 더불어 그녀의 시를 올려놓고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08-04-0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제니친이 사실상 지금은 러시아 민족주의자가 되어버린 지금 자신의 저작인 수용소 군도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요.그 책이 서방진영에서 소련을 씹을 때 많이 이용되었잖아요.서방진영에서 나온 30년대 소련의 대숙청을 다룬 로버트 콘케스트의 책은 이제 오래되어 아펠바움의 책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아펠바움이나 콘케스트나 강경한 보수주의자들인데...솔제니친은 이 책은 또 어떻게 생각할지.
소련 수용소를 직접 체험한 이들의 회고록 풍 글은 우리나라에도 꽤 많이 번역되었더라구요.

로쟈 2008-04-07 00:47   좋아요 0 | URL
'서재 투어'를 하시는군요.^^ 솔제니친은 요즘도 책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자이면서 (러시아식) 공산주의자의 포지션은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펠바움의 책은 시각보다는 자료 집성에 의의가 있는 것 같고요...

Sati 2011-08-08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에 조예가 없다보니, 저는 다른 것보다 prison을 수용소라고 번역한 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