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스에 관한 시에 이어서 20대에 쓴 시 한 편을 더 옮겨놓는다. 실상은 이 서재의 문턱을 조금 낮춰보자는 '계산'을 담고 있지만 달리 페이퍼를 쓸 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밀린 일들을 다 제쳐두고 무얼 할 만한 여건이 아니기에 떠올려본 시이다...

내게 밀밭을 그려줘

밀밭을 그려줘, 나의 밀들이 자라게
주말에 나는 밀린 일들을 다 제쳐두고 저
밀밭으로 달려갈 거야
가서 볼 거야
밀밭이야, 물결치는 밀밭이야
내 손에 쥐어진 한줌의 밀들이 자라게
나는 가슴으로 너를 끌어안을 거야
이 향긋한 흙속에 코를 묻을 거야
밀밭이야
밀밭을 그려줘, 나의 밀들이 어서 자라게
나는 맨발로 너를 끌어안을 거야
나는 밀밭을 일굴 거야
밀밭이야, 물결치는 밀밭이야
거기 황혼이 내리면
나는 종소리를 구하러 읍내에 나가야지
때앵
때앵
때앵
나는 밀들을 거둬들여야지
나의 사랑하는 밀들을 빻고 또 빻아서
남김없이 빻아서

전부 밀가루 반죽을 만들 거야
두고볼 거야

밀밭을 어서 그려줘, 나의 밀들이 자라게
이 말라가는 한줌의 밀들이……

 

07.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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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7-11-06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빤스' 만큼은 아니지만, 아 웃겨 ㅋㅋㅋ

로쟈 2007-11-0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제가 쓴 시의 팔할은 코믹시였나 봅니다. 웃기다고들 하시니.^^;

섬나무 2007-11-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밭만 그려줘도 밀을 키우시겠다니 놀랍네요. 그런데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서 두고 보면 안되잖아요. 수제비라도 만들던가 해야잖아요.^^ 음...너무 귀한 밀이라 차마 먹어치우진 못하는 건가요 아님 애초에 먹을 수 없는 밀인가요?

로쟈 2007-11-06 12:35   좋아요 0 | URL
'전부 밀가루 반죽을 만들 거야/ 두고볼 거야'는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것으로 읽어주시면 제 의도에 더 잘 맞겠습니다.^^

마노아 2007-11-0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종소리를 구하러 읍내에 나가야지
//요 구절이 좋아요. 그림과 꼭 함께 보아야 더 맛있는 시가 되는 것 같아요^^

로쟈 2007-11-06 12:36   좋아요 0 | URL
'시화전 시'가 돼버렸네요.^^;

호민관 2007-11-0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시의 모티브는 다른 이들의 글이나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전혀 다른 시들도 많겠지만)
관계와 교류를 중시하는 님은 경제학을 전공하셔도 좋을뻔했을까요?^^

로쟈 2007-11-07 21:28   좋아요 0 | URL
잘 보셨습니다. 고전적인 시나 상투어들에 대해 쓴 시들이 좀 되구요, 영화의 제목을 차용한 시들도 있습니다(직접 관련되는 건 없지만). 저대로의 유희이면서 윤리입니다. 경제학과는 전혀 무관한(제가 계산엔 소질이 없어서요).^^


영남자파 2011-09-28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인형이십니다. 다 빻아버릴 결심을 하시다니 ㅋ(책도 모조리 다 모둣코^^)
언젠가 시집 꼭 내시면 좋겠어요.((한 권 갖고있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