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은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다루고 있다. 문득 20년전 대학시절이 떠올라 기사를 옮겨놓고 몇 자 적는다. 아마도 그해 여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와 함께 민음사의 세계시인선으로 읽었던 이 시집은 <비가>와 함께 비의적인 매혹을 품고 있어서(사실 시보다도 발레리의 '정신'이 더 매혹적이었다) 이후에 발레리의 책들이나 그에 관한 책들을 주섬주섬 사모았던 기억이 있다. 젊은 날 시를 쓰고 한 20년 절필을 해야지, 하고 마음 먹은 것도 내 딴엔 발레리 흉내쯤 된다(그 20년이 다 돼 간다!)...

Поль Валери Об искусстве

내가 아끼는 책은 러시아어판 <예술론>(1993). 3년전 모스크바대학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책이다.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한국어 발레리는 몇 권 되지 않는다. <나르시스는 말한다>(태학당, 2000)나 <발레리 선집>(을유문화사, 1999), <젊은 운명의 여신>(혜원출판사, 1987) 등이 문학평론가 김현이 젊은 시절 옮긴 <해변의 묘지>(민음사, 1973)와 함께 한국어로 나온 시집들이고 산문집으론 <드가-춤-데생>(열화당, 1977), <발레리 산문선>(인폴리오, 1997), <신체의 미학>(현대미학사, 1997) 정도가 나와 있는 듯하다(그밖에 두어 권의 연구서가 있다). 개인적으론 영역본 산문집들을 몇 권의 한국어본에 보태어 갖고 있다. 여하튼 여유가 없어서인지 그간에 모아놓기만 한 책들을 미처 읽지 못했는데, 삶의 의욕이 수시로 저하되는 요즘인지라 한번쯤 뒤적여보고 싶기도 하다. 아래 사진은 릴케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발레리의 모습.  

한국일보(07. 10. 30) [오늘의 책<10월 30일>] 해변의 묘지

1871년 10월 30일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정점에 올려놓은 시인이자 20세기 최대의 산문가로 꼽히는 폴 발레리가 태어났다. 1945년 74세로 몰. 가장 잘 알려진 발레리의 시는 <해변의 묘지>다. 남불 항구도시의 수부(水夫)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지중해는 언제나 정신의 고향이었다. 죽어서 그는 고향 해변의 묘지에 묻혔다.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김현(1942~1990)은 <해변의 묘지>의 마지막 연 첫 구를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로 번역했지만, 개인적으로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는 번역이 우리말로는 더 매력있게 느껴진다. 20세기말 한국의 한 시인은 이 구절을 이렇게 변주하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남진우의 시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에서).

“언어의 한쪽 끝에는 음악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대수학이 있다.” 시에서 모든 불순물을 제거한 순수시를 지향했던 발레리의 엄밀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발레리에 감동한 릴케가 발레리의 평생의 지기였던 앙드레 지드에게 보낸 편지에 쓴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모든 작품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발레리를 읽었다. 그리고 내 기다림이 끝이 난 줄 알았다”는 구절은 유명하다. 경구처럼 쓰이는 문장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도 발레리의 시구다.(하종오기자)

07. 10. 29.

P.S. 그래, 내게 그만한 호사가 허락된다면 죽어 해변의 묘지에 묻히고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술 2007-10-3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닷가 풍경이 이쁩니다.

로쟈 2007-11-01 21: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래도 고른 사진입니다...

필라멘트 2007-10-3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 선생이 번역한 프랑시들을 읽으면서 자주 느끼는 거지만 교수나 비평가가 번역한 시는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시번역 만큼은 외국어에 능통한 시인이 번역하는 게 좋을 듯 한데요. 물론 외국어에 능통한 시인이 그리 흔하지는 않겠지만요. 황동규 시인이 번역한 엘리어트 시나 강은교 시인이 번역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번역자들이 시인들이어선지 번역이 무난하더라구요.

로쟈 2007-11-01 21:21   좋아요 0 | URL
가장 좋은 번역은 역시 전문학자나 번역자가 시인과 공역을 하는 것이죠. 러시아의 경우 한국시(조)선 번역에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아흐마토바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초역은 번역자가 하고 그걸 '시'로 만드는 것이죠...

뭉실이 2007-10-3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추워진날씨에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는
싯구가 확 땡긴다는...*^^*

로쟈 2007-11-01 21:22   좋아요 0 | URL
콧등이 때리는 북서풍이 불면 사정은 또 다르죠.^^;